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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 ‘115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10개 혁신도시 건설’의 비효율성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아니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꾸준히 몰려왔다. 더 많은 일자리,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사람들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계속 이주해 왔다.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늙어가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 텅 빈 공간이 돼 가고 있다. 반대로 수도권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끊임없이 주택을 건설하고, 도로와 지하철을 만들어도 교통정체는 계속되며, 주택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간의 양극화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천억원,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교통망을 확충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대해 ‘차라리 그 비용을 지방에 투자하면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오지 않아도 잘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74년 9월3일 경향신문의 ‘공룡은 왜 사멸했는가?’라는 사설은 이런 생각의 원형쯤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는 대규모 시설투자를 극도로 억제하는 정책이 수반돼 농촌의 인구가 더 이상 도시로 쏠리지 않게 하고 도시민이 새 삶을 찾아 농촌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중략) 서울의 10% 내외 교통인구를 나르기 위해 316억원의 지하철 투자를 하는 것에 못지않게, 그만한 돈을 전국 138개 구에 2억3000만원씩 생산·문화·복지 시설 등에 투자하는 방법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2018년 일간지 사설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44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을 발표 후 기념촬영을 했다. 박형우 인천 계양구청장,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 조광찬 남양주시장, 김상호 하남시장, 김종천 과천시장(왼쪽부터). ⓒ 연합뉴스

 

억제와 관리의 대상이 돼 온 수도권

1970년대 정부가 수도권 인구집중정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수도권은 억제와 관리의 대상이 돼 왔다. 수도권에 여러 가지 불리함을 줌으로써 수도권의 과도한 성장을 억제하고, 지방에는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해 투자를 촉진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구상은 정권이 여러 차례 교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SOC) 투자가 지방을 대상으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곧 개통 예정인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10.8km의 천사대교는 이러한 사업 중 하나다. 이미 목포와 연결된 압해대교와 연결하면 섬 주민들이 편하게 육지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천사대교 건설에 5600억원, 기존에 건설된 압해대교에 210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정작 압해도 인구는 압해대교가 개통되던 2008년 7256명에서 2011년에는 6893명으로 감소했다. 천사대교가 개통되면 2000명쯤 되는 암태도 인구는 늘어날 수 있을까?

정부는 SOC 투자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자 서울과 수도권의 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가 ‘좋은 일자리’라면 그것을 지방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이주 수요를 줄이고 지방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정책과 결과물이 ‘115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10개 혁신도시 건설’ 사업이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최근에는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공기업의 지방 이전을 추가로 추진하겠다는 언급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수도권 성장억제와 국토균형발전정책이 40년 넘게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한쪽으로 몰리고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지방의 각종 물리적 시설들이 서울과 수도권보다 못하고, 서울에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발생한다고 생각해 왔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사람들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몰려들까? 처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도시가 제공하는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소득, 더 좋은 학교 등을 위해 이주했다. 그래서 그런 일자리, 학교 등을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도시는 그런 개별적 요소의 단순한 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도시가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다. 복잡성은 혼잡과 다르다. 아니, 심지어 혼잡한 곳이라도 사람이 없어 텅 빈 곳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변화가 발생하고, 여러 가지 수준의 혁신이 나타난다. 복잡한 곳에 살기 때문에 많은 정보 습득과 경험을 쉽게 할 수 있고, 이것이 다시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지식, 판단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만원인 도시는 정신없고 빠르게 움직인다. 단순히 더 많은 주거 공간, 소수의 좋은 직장을 이전한다고 새로운 도시가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이주하는 이유는 단순한 물적 조건에만 있지 않다. 물리적 조건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사람을 도시로 이끈다. 중세에도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표현이 있었듯이 도시에는 사람을 이끄는 또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

대도시는 조금이라도 더 공정하고 공평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제공해 준다. 사업을 하거나 구직을 해야 하는 입장, 심지어 중고차를 사는 입장에서 보면 지방은 공정의 수준이 떨어진다. 인맥과 연고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런 것을 누릴 수 있는 입장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이 그나마 ‘내 능력’으로 한번 붙어볼 만한 동네인 셈이다.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여성 친화적이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권리의식은 남성 못지않게 된 지 오래다. 그렇지만 여성을 둘러싼 사회환경의 수준은 여전히 낮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서울과 수도권이 상대적으로 나은 수준이기에 여성들은 농촌이 아닌 도시로, 대도시로, 그리고 다시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은 ‘남초도시’가 돼 가고, 결혼 상대자를 찾아야 하는 남자도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다. 지방 소멸 추세를 되돌리려면 공단을 만들고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보다 더 합리적인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공정하며, 여성친화적인 사회구조와 의사결정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서울과 수도권을 눌러놓는다고 다른 지역이 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40여 년 동안 체험해 왔다. 서울과 수도권이 더 발전하도록 하고, 그러한 변화를 통해 얻어지는 부를 잘 나누어 다른 지역이 서울과 수도권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의 변화와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틀린 답을 계속 써내는 것은 일관성이 아니다. 효과가 불투명한 대형 SOC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그 예산을 바로 지방 거주민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포함한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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