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멘토’ ‘방통대군’ 불리며 권력 최고 실세로 군림
이명박(MB) 전 대통령에게는 두 명의 ‘형님’이 있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이 전 의원과 최 전 위원장은 오랜 친구 사이로 포항 인맥을 뜻하는 ‘영포라인’의 핵심이었다. 두 형님은 MB 정권 시절 최고의 실세로 군림했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상왕’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이상득 전 의원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표현이지만, 상왕의 친구이자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전 위원장 역시 ‘형’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두 원로의 ‘힘’이 MB 정권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천헌금’에서 ‘인사특혜’ 의혹까지
2008년 2월 MB 정권 출범 전후로 단행된 각종 인사에서부터 두 형님의 ‘입김’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형님 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과 가까운 사람들이 대거 등용됐다. 캠프에서 고생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해 4월에 치러진 18대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차로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라 한나라당 간판으로 총선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들이 대거 몰려 공천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공천헌금’ 의혹이 일었고 그 중심에 ‘두 형님’이 있었다.
서울의 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A씨의 경우 최 전 위원장 측에 수차례에 걸쳐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최 전 위원장 측이 받은 돈 중에서 9억여원을 이 전 의원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그렇게 큰돈을 내고 공천을 못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실제 A씨는 공천을 받지 못했고, ‘금배지’의 꿈은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한 관변단체의 회장으로 임명돼 주변을 놀라게 했다. A씨는 “돈이 전혀 안 되는 명예직이었다”고 밝혔지만, 이 단체는 보수진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곳이다.
당시 공천 과정에서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A씨는 공천을 받기에 부적절한 인사여서 배제됐는데 나중에 위에서 ‘왜 A씨가 공천을 못 받았느냐’는 질책이 내려왔다”며 이후 그가 관변단체 회장으로 임명된 게 공천헌금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외에도 수도권에 공천 신청을 한 B씨와 C씨, 충청권에 출마를 준비하던 D씨도 각각 5억여원을 최 전 위원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천헌금’과 관련해 답변을 거부했다. 한 보수진영 인사는 “정계 진출을 노리며 수억원을 최 전 위원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E씨의 경우 공천을 받지 못한 대신 정권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 대기업의 고문으로 갔다. 자격 요건이 안 되는 인사라 상당히 의아했다”고 밝혔다.
MB 정권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해 그 수장으로 자신의 멘토를 임명했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후 2012년 1월 사퇴할 때까지 2대에 걸쳐 4년여 동안 ‘방통대군’으로 불리며 방송통신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최 전 위원장 시절 방통위는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 선정, OBS 역외재전송 허용,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등 방송통신업계의 굵직굵직한 과제를 다뤘다. 그런 만큼 당시 최 전 위원장이 가진 힘은 업계를 쥐고 흔들 정도로 막강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자연스럽게 최 전 위원장을 둘러싼 ‘이권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정보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한 방송사 오너 측이 수십억원을 주기로 했다가 5억원만 전달한 후 나머지 돈을 주지 않아 뒷말이 나오는가 하면, 한 통신업체가 수십억원을 줬는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자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 전 위원장은 이와 별개로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용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의 출처가 기업으로부터 받은 일종의 ‘모금’일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방통대군’으로 막강한 영향력 발휘
최 전 위원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밝혀질 경우 재판 중인 MB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2012년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이 거론된다. 파이시티 사건은 서울 강남구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부지에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개발사업과 관련해 당시 이정배 전 대표와 브로커 이동율씨가 최 전 위원장, 박영준 전 차관 등 MB 정권 핵심 실세에게 인·허가 청탁과 함께 뇌물을 준 사건이다.
수감 중인 이 전 대표는 2018년 8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1월과 2월 최 전 위원장의 주선으로 서울역사박물관 길목의 첫 번째 한정식집에서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한테 고맙다는 인사까지 들었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전언이다.
이 전 대표는 최 전 위원장에게 2006년 7월부터 매달 6000만원씩 모두 6억원을 보냈고 최 전 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잘 지원해 주고 있는데 인사라도 시켜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고 이 전 대표는 진술했다. 만약 파이시티 사건에 이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MB 항소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MB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한 정치권 인사는 “이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최 전 위원장을 사면해 줬는데 사면해 주지 않을 경우 어떤 리스크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최 전 위원장을 무리해서라도 배려해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일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최 전 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들은 바도 없고 사실도 아닌 것 같다”며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송사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내가 언론인에게 돈을 받았단 말이냐”고 되물으며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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