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記事) 쓰려다 기사(技士) 돼버린 기자…말 많고 탈 많은 ‘카카오 카풀’, 사흘 동안의 운전자 체험기
‘목적지나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 한 대의 승용차에 같이 타고 다니는 것.’ 위키백과에 나온 카풀(carpool)의 뜻이다. 카카오는 12월7일부터 ‘카카오 T 카풀’이란 이름으로 카풀 시범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가 지난 3일 동안 운전자로 참여해 본 카카오 카풀은 ‘카풀’이라고 하기엔 그 운영방식이 달랐다. 탑승자의 동선에 맞춰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만큼은 기존 택시기사와 다를 바 없었다.
카카오 카풀에선 운전자를 ‘크루’라고 부른다. 기자는 미리 크루로 등록을 하고 12월21일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이날 오전 11시, 집 근처인 서울 마포구청(마포구 성산동)에서 직장이 있는 용산구 한강로동을 목적지로 찍었다. 이후 1시간 남짓 기다렸지만 대여섯 콜밖에 뜨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가 가려는 길에서 벗어나는 콜이 뜨곤 했다. 양천구 목동에서 서대문구 홍제동으로 가자는 식이다. 진짜 출근길이었다면 십중팔구 지각을 각오해야 하는 경로다. 심지어 목적지가 인천 연수구 연수동인 콜도 검색됐다. 기자의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카풀 크루 3일 체험…기사? 운전자?
그런데 이마저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콜이 뜨자마자 5초도 채 안 돼 ‘배차가 완료됐습니다’란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다. 수요(탑승자)에 비해 공급(크루)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추측된다. 구글 앱스토어 기준 카카오 카풀 크루용 앱 다운로드 수는 10월에 이미 50만 건이 넘었다.
서울에서 택시 수요가 많다고 알려진 홍대입구역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혜화역(종로구 이화동)으로 가는 콜이 떴다. 가까스로 ‘수락’ 버튼을 누르고 탑승자의 출발지로 이동했다. 오후 0시26분, 첫 탑승자를 태웠다. 남자 고등학생 전아무개군(17)이었다. 카카오 카풀 탑승은 처음이라는 전군은 기자만큼이나 호기심을 보였다.
42분 동안 약 15km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군이 낸 요금은 1만4500포인트. 포인트는 1대1 비율로 환전할 수 있다. 운행료는 콜을 잡기 전에 크루가 확인할 수 있다. 전군은 “택시를 탔으면 2만원은 넘게 나올 거리였을 것”이라며 카카오 카풀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단 크루는 탑승자가 낸 포인트를 그대로 가져갈 수 없다. 카카오가 수수료 20%를 걷어가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실수입은 1만1600원이었다.
혜화역 근처에 차를 대고 또 콜을 기다렸다. 간간이 콜이 떴다. 하지만 ‘동대문구 답십리동→성동구 용답동’ 등의 부름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답십리동까지 8km를 달려서 용답동까지 1km를 가야 하는데, 수입은 3000포인트에 불과해서다. 기름값과 시간을 고려하면 다분히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카풀 운전자가 아니라 돈을 버는 운전기사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앱만 들여다보다 오후 4시쯤 용산역(용산구 한강로동)으로 가는 콜을 잡았다. 이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콜이다. 카카오 카풀은 운행횟수를 하루 2번으로 제한하고 있다. 출퇴근 때만 유상 카풀을 허용한 여객자동차법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탑승자는 앞서 태웠던 전군이었다. 1시간23분 동안 약 10km를 달렸고, 수수료를 뺀 8800원을 손에 쥐었다. 이날 총 수입은 2만400원이었다.
들어간 기름값은 얼마일까. 집에 돌아와 총 주행거리를 계산해보니 44km였다. 대표적인 국산 중형세단 소나타 가솔린의 복합연비(12.0km/L)를 기준으로 하면 쓴 휘발유는 약 3.6리터. 같은 날 서울 휘발유 평균가(1523원/L)로 따져봤을 때 5482원어치다. 기름값을 빼면 순수입은 1만5000원 정도인 셈이다.
44km 운행하고 순수입은 1만5000원
탑승자를 태우러 가고 데려다 준 시간, 집에 돌아온 시간 등을 고려하면 최저시급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앞으로 카풀 수요가 늘고 운행횟수마저 늘어나면 여윳돈을 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일단 카카오는 서비스 이용시간은 제한하지 않되 운행횟수는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뒀다.
이후 기자는 12월24일 탑승자 한 명, 25일 두 명을 더 태웠다. 모두 원하는 목적지 방향은 매번 기자와 달랐다. 여전히 운전기사 체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탑승자 중 한명인 박아무개씨(남·34)의 말도 비슷했다. 그는 “나도 크루 신청을 했다”라며 “출퇴근길이 같은 사람들만 태워야 하는데 탑승자들 출발지나 목적지가 너무 광범위하게 뜨더라”고 했다. 카풀의 원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성 탑승자 이아무개씨(32)는 “편하긴 한데 밤에는 이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신변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평소 택시를 굉장히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택시기사는 자격증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카풀 운전자들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조금 불안하다”고 했다.
카카오 카풀 크루로 등록하려면 △본인 사진 △운전면허증 △7년 이하 차량 등록증(경·소형차 및 렌터카는 제외) △대인배상2 가입 사실이 적힌 차량 보험증 등을 내면 된다. 이 과정에서 범죄 이력은 확인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범죄경력 조회는 수사, 병역, 공무원 임용 등 특정한 목적에 한해서만 허락된다.
편하지만 아직 불안한 카풀
이처럼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일각에선 “카카오가 전국 모든 차량 소지자를 카풀 크루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곧 택시기사와 일반 운전자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나아가 유상운송 자격에 제한을 둔 법의 취지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다. 자격시험을 치르고 정기교육을 받는 택시기사와의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 카페에선 “대리기사를 고용해 자동차 명의를 이전해주고 하루 종일 카풀 크루를 시키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카풀을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꼼수다.
사고가 났을 때 보험처리 기준도 애매하다. 카카오가 ‘대인배상2 보험’을 크루 가입요건으로 내세운 건 동승자를 보상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카풀과 같은 유상운송의 경우 보험사가 보상을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차를 탄 모든 탑승자들은 ‘카풀이 택시보다 싸고 편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전군은 “카풀의 최대 장점은 저렴한 요금”이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택시는 난폭운전 때문에 탈 때마다 멀미가 날 지경”이라며 “기사님들 연령대가 높은 점도 불안하다”고 했다. 개인적인 취향도 카풀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탑승자 김아무개군(17)은 “차에 진짜 관심이 많다”며 “다양한 차를 타보고 싶어 카풀 서비스 초창기부터 수백 번쯤 이용해봤다”고 했다. 김군은 “매번 카풀을 부를 때마다 어떤 차가 올 지 기대된다”고 했다.
택시는 경쟁력 높이고, 카풀은 보완재 돼야
전군은 “불편하고 난폭한 택시는 아무리 저항해도 시장경제 사회에서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7년 택시와 관련해 불편을 호소한 민원은 총 1만 8651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불친절’이 7133건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뉴욕 출신 애론 앨런(50)은 “그래도 한국 택시는 뉴욕보다 친절한 편”이라고 했다. 취재 도중 합정동에서 만난 그는 “뉴욕 택시는 지저분한데다 인종 차별주의자도 많아 문제가 되곤 한다”고 했다. 다만 “우버가 미국 택시업계를 잠식할 때 사회 안정성(social stability)이 흔들려 논란이 됐다. 이를 유지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는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카풀이 택시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탑승자 박씨는 “택시 수요가 많은 시각에 카풀 크루가 수요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 정도만 하면 된다”고 했다. 또 “택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강화된 서비스 교육을 받고 연령대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용복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총무팀장은 12월27일 “충분히 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을 받아도 기사들의 여건상 교육효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연령대 제한은 생계가 달린 기사들에겐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 해법으론 ‘고령운전자 자격 검사’ ‘택시면허 매입 후 연금 지급’ ‘서비스에 따른 상․벌점 부과’ 등이 거론된다.
※연관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