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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아는 푸틴 러 대통령, 트럼프 美 대통령 공략해 시리아 철군 이끌어 내

 

2018년 7월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8년 7월16일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이 2시간가량 진행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2시간가량 비밀회담을 가졌다. 

 

필자가 이를 석연치 않다고 보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2시간이나 회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통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미국대선 개입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푸틴 대통령은 믿어 달라는 듯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트럼프가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를 얘기했기 때문에 그가 대선에서 승리하길 바랬다”면서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전면 부인했다. 시리아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핀란드 비밀회담에선 무슨 일이?

 

그로부터 5개월 후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미군의 철수를 결정했다. 이를 반대하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전격 경질하는 초강수를 뒀다. 철수 명령에 대한 국방부와 의회의 반발을 감안해 행정명령으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에 대해 지중해와 아라비아 반도 주위에서 합동작전을 전개 중이던 영국 등 동맹국들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갑작스레 철군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시리아 내 ISIS(이슬람국가)를 충분히 격퇴했기 때문에 더 이상 미군이 머무를 이유가 없다”면서 “시리아에 미군을 파견한 것도 대선 때 공약을 지키기 위한 것 이외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7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에 도착해 미8군 사령부 상황실에 들른 뒤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과 대화하며 나오고있다. ⓒ시사저널

 

이번 결정처럼 앞으로 납득하기 힘든 트럼프의 행동은 종종 나타날 것이다. 근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줄 죄여오는 탄핵조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트럼프는 과연 왜 시리아에서 부랴부랴 미군을 철수 하려고 하는가’ ‘미군의 시리아 철수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결론은 ‘아니다’다. 그럼 누구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러시아의 이익에 부합한다’가 정답이다.

 

지중해로 가는 마지막 출구인 시리아가 미국의 영향권에 놓이면 러시아로선 중동 지역 패권에서 밀리게 된다. 이럴 경우 터키 등 주변국에서 힘들게 구축해 놓은 대(對)지중해 진출 외교 전략에 막대한 장애가 발생한다. 

 

반대로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만 해주면, 시리아 뿐 아니라 터키 등 주변국을 통한 러시아 연합세력이 더욱 굳건해 진다. 지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애를 태웠던 이란까지 러시아 연합세력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 이번 시리아 사태에서도 나타났듯 지중해에 상시 주둔해 있는 미국, 영국 해군과는 달리 러시아 해군은 저 멀리 북해에 주둔해 있다. 북해 함대를 지중해까지 끌고 오면, 군사력 열세를 감당 못해 시리아에서 철수하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될 공산이 상당히 컸다. 종합하면 푸틴 대통령은 그만큼 다급했다. 미군의 시리아 철군으로 지중해는 다시 러시아의 내해로서 러시아 해군이 편안하게 사용할 전략적 요충지가 됐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이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철수의 이유로 ‘돈’을 들었다. 이는 언뜻 보면, 한국에서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 방위비 협상 역시 같은 맥락으로 비쳐질 수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 골치 아픈 적은 제거하라’는 것은 협상의 기본 원칙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러시아의 중동 진출을 가로막기 위해 미군 주둔을 강경하게 주장해온 매티스 등 미 강경파를 트럼프가 제거시키는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상대의 약점을 알면 그때부터 상대 덩치가 큰 지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협상에서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라는 것이 왜 성배처럼 여겨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은 구(舊)소련 시절 정보기관인 KGB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KGB의 수장을 거치면서 ‘현대판 짜르’로 불리는 푸틴의 덫에 단단히 걸려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반대진영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막강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거 막판에 갖가지 부정과 공직자 윤리 위반 및 국정을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몰아세울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가 도와 줬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협상에서 위협이 언제나 먹히는 건 아니다. 섣불리 위협했다간 반발은 물론, 위협했다는 그 자체에 대해 보복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직접적인 위협은 상대를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최고의 묘약이다. 금주령시대에 미국 시카고의 어두운 세계를 주름 잡았던 스카페이스(Scar Face: 그의 얼굴에 난 흉터 때문에 얻은 별명)는 “최고의 협상은 상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가운데)이 2018년 12월20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잭 리드 상원의원(민주·로드아일랜드·왼쪽), 밥 메넨데즈 상원의원(민주·뉴저지)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가하고 있는 위협이 바로 이런 류다. 탄핵의 위기에서 살아남아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선,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푸틴의 폭로를 막는 게 급선무다. 

 

탄핵 위기 돌파해야 하는 트럼프 “갈 길이 급해”

 

정말 센세이셔널하다. 지금 푸틴 대통령은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치명적인 약점을 한 손에 움켜쥐고 미군과 미 외교정책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과연 미국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얼마나 현명하게 조율해 나갈 것인가. 

 

이러한 현상은 현재 비핵화 협상 중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가 약해지면 오히려 남북, 북‧미 간 협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타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중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탄핵 수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면 전략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협상 타결에 가속화 페달을 밟을 가능성도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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