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北 ‘휴대폰’ 600만 대 시대, 달라진 사회상
북한에서 ‘손전화’로 불리는 휴대폰 보급이 600만 대를 돌파하면서 주민들의 삶 속에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북 정보 당국의 자료 등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 들어 인구 2490만 명인 북한에 휴대폰 보급이 급증하면서 보급률이 25%를 넘어섰다. 인구 4명당 한 명꼴로 휴대폰을 개통해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때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나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휴대폰은 이제 중간계층 이상의 삶을 사는 주민들은 대체로 한 대 정도 보유한 품목이 됐고, 장마당에서 유통망을 쥐고 있거나 자금줄 역할을 하는 신흥자본가인 ‘돈주’ 등의 경우에는 2~3대를 보유한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과 고위 탈북 인사의 귀띔이다.
북한 관영매체들이 공개적으로 휴대폰 사용에 따른 매너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대목도 눈길을 끈다. 조선중앙TV는 최근 들어 자극적인 벨소리를 피하라는 내용의 캠페인을 자주 내보내고 있다. 중앙TV는 “우리의 감정과 미감에 맞게 고상한 것으로 호출음을 선택해야 한다”며 휴대폰 벨소리에 신경을 써줄 것을 주문했다.
신흥자본가들, 휴대폰 2~3대 보유
12월18일자 노동신문은 ‘주목되는 교내에서의 손전화기 사용금지 조치’라는 기사를 눈에 띄는 비중으로 편집했다. 이 신문은 프랑스가 올 9월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손전화기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가시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제시함으로써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보도에서 모바일을 통해 포르노물이나 폭력적인 동영상이 유포되거나 공유되는 문제를 지적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노동신문은 스마트폰을 “불건전한 사상을 주입하며 퇴폐적이고 반동적인 사상을 유포하는 주범”이란 취지로 소개했다. “색정적인 통보문이나 소설·동영상 자료들과 폭력적인 내용의 전자오락들이 무제한으로 전파된다”는 지적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 당국의 이 같은 우려는 휴대폰 증가세가 가히 폭발적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현재와 같은 방식의 3G 휴대전화 통신 서비스가 시작돼 2012년 2월 100만 대를 돌파했고, 2013년 5월 200만 대를 돌파했다. 2015년 말에는 국가정보원이 370만 대 보급 수준이란 점을 공개한 바 있는데 최근에는 580만 대에서 600만 대로 집계된다. 북한에 휴대폰이 처음 등장한 건 2002년이다. 태국 업체인 록슬리 퍼시픽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선넷(Sunnet)이 2만 명 정도에게 제한적으로 2G폰 서비스를 제공한 게 시초다. 당시 휴대전화는 권력과 부(富)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4년 4월 평북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북한 당국은 휴대폰 공급과 이용을 중단했다. 폭발을 원격 조종하는 데 휴대폰이 사용됐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휴대폰이 다시 허용된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후계자로 부상한 2008년께다. 이번엔 이집트 오라스콤(Orascom)과 북한 체신성이 합작해 고려링크란 회사를 차리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국가정보원 측은 중고 휴대폰의 경우 100달러, 최신형은 1000달러 정도의 가입비가 들어간다는 점을 토대로 가입으로 얻은 수입만 17억 달러(우리 돈 약 1조91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 번도 휴대폰 보급을 중단하거나 제한한 적이 없다는 점은 이미 휴대폰으로부터 얻어지는 수입이 북한의 든든한 돈줄이 되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
북한에서 휴대폰 보급률이 예상외로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면서 이를 이용한 모바일 상거래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최근 북한 매체들은 주민들이 휴대폰을 이용해 물건을 사거나 주문·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거래 시스템인 ‘옥류’가 가동 중이란 점을 부각 선전하고 있다. 모바일 거래가 가능한 ‘옥류’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한 뒤, 지불카드인 ‘나래’(날개)로 계산하는 등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평양 금성식료공장의 단팥빵은 한 개에 78원40전에 팔고, 해당화관에서는 오렌지 주스나 우유·초콜릿을 휴대폰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물론 전자결제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 건 아니지만 휴대폰이 북한 주민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음을 잘 보여준다.
남북 협력시대에 대비해 모바일을 활용한 금융 시스템 도입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북한의 높은 휴대폰 보급률에 주목하는 움직임도 있다. 조봉현 IBK 북한경제연구소 부소장은 12월19일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 금융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북한 주민들 사이의) 휴대폰 확산과 연계시킨 모바일 금융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 휴대폰 가입이 50~70%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모바일을 활용한 금융망 구축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게 조 부소장의 지적이다. 북한 가입자가 스마트폰을 쓰려면 한 달에 850〜2550원의 기본요금을 내야 하고, 추가로 사용한 요금은 20~30km나 떨어진 통신국이나 지정소를 직접 방문해 결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인프라 부족 등이 여전히 걸림돌이긴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린 만큼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부소장은 “개성공단 등에 ‘모바일 금융 센터’를 구축하는 등 북한 상황에 맞는 모바일 금융 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휴대폰으로 남한 문화 빠르게 전파
북한의 휴대폰은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의 기능 외에 스마트폰 형태로 앱을 깔아 각종 오락이나 학습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인터넷과 차단돼 외부 정보를 접하는 건 불가능하고 규정된 심(SIM) 카드를 꽂아 내부망인 인트라넷에만 접근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제한 속에서도 휴대폰을 이용한 정보의 유통이나 동영상·드라마·가요 등이 번지고 있다. 특히 한류 문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이런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례가 은밀하게 늘어난다는 탈북자들의 전언이 있다.
우리 정부 당국도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 예의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월 국회 보고를 통해 북한 청소년들이 우리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가요영상을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청소년들도 유튜브를 통해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느냐”는 한 의원의 질의에 “북한이 인터넷 개방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데다 내부망처럼 돼 있어 제약은 있지만, 청소년들 사이에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북한의 휴대폰 보급이 여전히 폐쇄적인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지, 아니면 북한 당국의 기반을 다져주는 돈줄로 작용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