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고향 독일 트리어 관광객 20% 증가
옆면 가득 카를 마르크스가 그려진 투어버스를 타고 마르크스 캐릭터로 번쩍이는 신호등을 지나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선 마르크스 동상 앞에 줄을 서 사진을 찍고 골목 뒤편에 위치한 그의 생가를 둘러본다. 그가 쓴 《자본론》 초판본을 살펴보는 건 필수 코스다. 눈 돌리면 있는 마르크스 기념품 숍에서 물건마다 새겨진 각양각색의 마르크스를 구입한다. 1km 남짓한 마르크스의 등하굣길을 따라가보는 투어까지 마치면, 그의 얼굴을 그려 넣은 샴페인 병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독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도시. 기원전 시대 수많은 로마 유적이 길마다 건물처럼 즐비한 곳. 이를 보기 위해 해마다 주민 수(10만 명)보다 더 많은 관광객(15만 명)이 찾아오는 곳.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트리어는 ‘로마 밖 로마’ ‘독일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유적 도시 트리어가 전면에 내세우는 마을의 대표적인 정체성은 바로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 그의 생이 시작된 곳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1818년 탄생부터 17세에 독일 본대학으로 유학 가기 전까지 이곳에 살며 훗날 만들어갈 역사적 사상의 기반을 다졌다. 마을은 오늘날 마르크스 이론의 뿌리가 시작된 곳이라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품고 있다. “로마 시대 콘스탄틴 황제 이래 트리어 최고의 위인”이라는 말은 트리어시(市) 관계자를 비롯한 마을 관계자 다수의 공통된 평가.
특히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18년 한 해 트리어시는 다양한 관련 행사와 전시, 관광객 맞이로 마을 전체가 분주했다. 그전까지 로마 유적을 구경하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가 마르크스도 곁들여 보는 관광객이 많았다면, 2018년 한 해는 온전히 그를 기리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방문한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트리어 마르크스관광센터에 따르면, 한 해 평균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트리어를 찾는데 2018년엔 6월 기준 여느 해보다 20% 이상 관광객이 증가했다. 중국인 관광객들로만 붐빈다는 각국의 언론보도와는 달리, 트리어시엔 프랑스·벨기에를 비롯한 50여 개국에서 다양하게 방문한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0유로’ 화폐 등을 직접 기획한 마르크스관광유한책임회사 리너 대표는 “한 해 방문객들의 국적 중 중국인 관광객 수는 7위에 해당한다”며 “중국 여행사 20곳을 직접 조사한 결과, 트리어를 찾는 중국인 중 4분의 3이 오히려 마르크스보다 로마 유적을 보기 위한 목적을 갖고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중국인 관광객만 많다는 건 명백한 오해”
기자가 트리어를 방문한 지난 7월, 마르크스와 관련해 총 12개 마을 투어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투어는 마르크스 등하굣길을 함께 걸으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관람하는 ‘MARX! Love! Revolution!(마르크스! 사랑! 혁명!)이라는 이름의 코스다. 청년 마르크스를 연기하고, 그의 동상과 똑같은 분장을 한 배우들이 걸음 중간중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외에 애주가 마르크스가 좋아했던 와인을 소개하는 투어 등도 진행된다.
그의 생을 다방면으로 조명한 전시들도 마을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시립박물관, 주립박물관, 마르크스 생가, 트리어 대성당 등에서 마르크스 관련 총 4개의 전시가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을 맞이했다. 생애 전체 조명, 생전 작품 전시, 마르크스 사상 수용사(史) 소개 등 콘셉트가 각기 다르다. 생전 작품을 전시한 주립박물관엔 수십 개 언어로 출간된 《공산당 선언》 200여 권과 초고 노트가 함께 진열돼 방문객들의 주목을 끈다.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 외에도, 그의 생애 전체를 소개해 놓은 시립박물관엔 기자 시절 검열로 인해 검은 줄이 죽죽 그어진 그의 기사 원문과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등이 전시됐다. 하루 이틀에 걸쳐 4개 전시 모두를 코스처럼 관람하는 관광객이 다수였다.
특히 마르크스가 태어난 ‘마르크스 하우스’에 가장 많은 인파가 북적였다. 그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인 1727년 지어진 생가는 1968년부터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FES)’에 맡겨져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3층짜리 앞전시관과 뒷전시관 두 개가 복도로 이어져 있는 구조로 1시간이 족히 소요될 만큼 널찍하다. 엘리자베스 마르크스하우스 관장은 “원래는 앞전시관만 있었는데 1904년 마르크스 생가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후 뒷전시관까지 확장해 지금의 구조가 됐다”며 “마르크스가 아기 시절 누웠던 작은 침대와 《자본론》 초판본, 마르크스 이론이 이후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그림으로 구현해 놓은 공간 등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관심을 받는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트리어 내 마르크스관광센터, 마르크스관광유한책임회사 등이 트리어시·재단 등과 협력해 마을 내 다양한 행사를 꾸준히 기획·진행했다. 이들은 모두 마르크스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과 오늘날 그의 사상이 일부 왜곡되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두루 안고 있었다. 노버트 마르크스관광센터 대표는 “한 천재의 사상과 저서들이 정치적으로 왜곡돼 누군가의 체제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는 점이 아쉽다”면서도 “현대사회 정치·경제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건 사실이기 때문에 트리어 시민들 모두 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트리어 시청의 토마스 문화·관광 부장은 “마르크스를 자본주의 몰락을 예견한 ‘예언자’처럼 추대하는 왜곡된 시각이 아니라, 그를 여러 세대, 여러 분야에 커다란 영감을 준 19세기 인물로 보길 원한다”며 “그 가운데 생길 수 있는 그의 이론에 대한 논쟁은 공개적인 장으로 끌어내 건강하게 토론하는 과정들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를 지금과 같이 소비하고 관광화하는 것이 마르크스 정신에 어긋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트리어 내 마르크스 관광 사업을 담당하는 이들 역시 고민이 깊다. 특히 마르크스 탄생일인 지난 5월5일, 트리어시가 중국 정부로부터 4m에 달하는 동상을 선물 받아 이를 두고 거센 반대 시위가 열리는 등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가 생전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것을 싫어했으며, 이 동상으로 인해 마을이 더 자본주의 방식으로 소비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 노버트 관광센터 대표는 “여전히 고민은 있지만, 위대한 사상가 마르크스가 지금처럼 현대인들에 의해 소비되는 건 어차피 벌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르크스 생가를 구경하기 위해 찾은 한 벨기에 관광객은 “생각보다 마르크스 기념 전시나 행사가 잘 갖춰져 있어 흥미로웠지만, 정작 당사자인 마르크스는 이런 광경들을 반가워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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