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하이브리드 음악이야기] 수많은 송년의 노래, 어떻게 탄생했을까
망년(忘年). 힘겨웠던 한 해를 잊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자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연말만 되면 들어왔던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망년’이라는 말 대신 ‘송년(送年)’이라는 말을 쓰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요즘 공식적인 알림에는 거의 송년회라는 표현이 대세가 된 듯하다.
그러나 나는 꽤 오랫동안 왠지 밋밋한 ‘송년’이라는 말보다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었다는 고통이 스며 있는 ‘망년’이라는 말이 훨씬 가슴에 와 닿았다. ‘망년’이라는 말엔 억센 노동으로 지친 민초들의 쓰디쓴 몸부림이 녹아 있다. 이 말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한반도에 상륙한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힘들기로야 일본의 민초나 한반도의 민초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수의사이자 인문학자인 고(故) 박상표에 의하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망년’이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이때의 망년은 연말에 쓰는 용어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나이를 잊은’이라는 뜻이었다. 고려 무신정권에서 살아남은 몇몇 문신들이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뜻이 같은 이들이 모여 술과 시로 시절을 한탄하는 모임이 망년회였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망년’ 썼지만 지금과 의미 달라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이나 연말에 기억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하는 문화는 본래 없었다. 일본의 세밑 풍속은 ‘스스바라이(大掃除)’라고 불렀다. 천장에서 마루 밑까지 샅샅이 대청소를 하고 한 해를 넘기는 마지막 끼니로 메밀국수를 먹는 것이었다. 메밀국수는 가늘고 찰기가 적어 쉽게 끊어진다. 길고 가늘게 오래 살면서 병이나 빚이 끊어지기를 바라는 가난한 민초들의 염원이 담긴 주술이다. ‘우동 한 그릇’이란 한글 제목으로 번역돼 연극 혹은 영화, 동화로 거듭나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그 우동이 바로 이 메밀 소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귀족과 민간이 많이 달랐다. 궁중에서는 일본처럼 대청소를 하고 남은 음식을 골동반(비빔밥)을 만들어 깨끗이 먹어치우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새해를 맞았다. 임금은 내의원에서 제조한 상비약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귀족들은 권력을 쫓아 각종 공물과 돈을 바쳤고, 권세가들은 이 뇌물들을 가난한 친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인심을 베풀었다. 연말엔 연종포(年終包)라는 대포도 쏘고 악귀를 쫓기 위해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북을 치며 궁 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구나례(驅儺禮)를 올렸으니 시끌벅적하긴 했을 것이다.
민간은 좀 달라서 섣달그믐에 방과 뜰, 부엌과 변소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잠을 자지 않으며 부뚜막을 지키는 조왕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섣달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조선 침략과 함께 이 땅엔 이상한 연말의 풍속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권력층과 지식계층에선 요릿집에서 흥청망청 망년회를 앞다퉈 열었으며 이 망국적인 문화는 아래로 급속히 대중화한다. 이미 1920년대 중반에 망년회의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연말의 망년회는 빈부노소를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세대별로 다른 송년의 노래
내 세대만 해도 고등학교 이삼 학년쯤 되면 망년회랍시고 친구 집에 모여 소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노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술판은 기본이고, 노래 역시 빠지지 않았는데 돌아가며 부르기도 하고 같이 어울려 부르기도 하며 가무와 음주를 사랑한 조상들의 전통을 일찍이 계승했다.
망년회 아니 송년회가 있기에 연말의 유흥가는 일 년 중 최대 성수기였다. 한국 경제가 거품을 가득 안고 위로만 솟구치던 시절 시월만 되면 연말의 송년회 장소를 예약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노래방 문화가 확산하면서 더 이상 젓가락 장단으로 노래를 부르는 풍경이 사라졌을 뿐, 흥청망청은 12월의 메인 카피였던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송년의 노래가 탄생했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은 세계 공용어인 크리스마스캐럴과 함께 12월을 보내지만 어른들은 송년회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를 작성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노년 세대 남자들은 아무래도 배호나 나훈아의 트로트 넘버들을 송년송으로 삼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센티멘털한 7080 세대의 여성분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좀 더 젊은 세대들은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나 싸이의 《챔피언》을 신나게 불러젖히며 이미 지나가버린 젊음을 반추할 수도 있다.
송년의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나는 안치환의 노래 《위하여!》가 생각난다. 2001년 7집에 실린 이 노래는 인생의 반환점을 ‘마악’ 도는 중년의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가지는 술자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정서는 산업화 세대도 신세대도 아닌 전형적인 386 세대의 그것이다.
‘위하여! 위하여! /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 들어라 잔을 들어라 / 위하여! 위하여!’
이렇게 강렬한 서두로 운을 떼는 이 노래는 어느덧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진’ 시든 청춘의 남은 인생에 바치는 서글픈 찬가다. 연말의 술집 풍경도 이제는 더 이상 흥청이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고 고요하다. 안치환의 노래나 들으며 그저 무상하기만 한 한 해를 마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