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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한밤중이었다. 미국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비행기 한 대와 충돌해 폭발하고 무너지는 것을 인터넷으로 우연히 보았다. 두 번째 건물에 비행기가 관통하는 장면이었다. 뉴욕은 이른 아침이었고, 사건은 거의 실시간 아니면 조금 전에 발생했다. 잠시 뒤 화면을 함께 보던 누군가가 말했다. “영화 아냐?”

곧이어 우리는 건물 붕괴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과 그 어마어마한 사고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것이 장차 테러로 불리며 세계를 안보라는 이름으로 경찰국가화해 버릴 일의 시작임을 알지 못했다. 21세기는 바로 이 순간 시작되었고, 20세기라는 전쟁과 폭력의 세기를 졸업하고 평화와 번영의 지구 공동체로 나아가게 되리라던 밀레니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밑바닥에, 건국 이후 처음으로 본토를 공격받았다는 미국인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남을 공격해도 남이 나를 공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무지한 생각이 무너진 데서 오는 공포다. 공포는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쉬운 정서인지를 뼈저리게 눈으로 확인했다.

 

‘강자의 무지’는 이라크 전쟁과 같은 극단적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킬 수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3년 3월17일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 REUTERS


미국이, 정확히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세계무역센터 건물 붕괴를 불러온 비행기 충돌을 일종의 자살테러로 규정하고 그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을 주목했을 때, 세계가 출렁였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구로 아프간에 파병해야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 했다. 그때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파병에 반대하고 이 전쟁이 미국의 이슬람에 대한 오랜 편견과 박해가 불러온 문제임을 지적했다. 한마디로 테러는 잘못된 것이지만 테러를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전쟁 또는 소탕이 아니라 이슬람에 대한 공격적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소국가들의 주장은 미국인들의 가슴에 가 닿지 않았다. 당시 깨달은 것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국제사회, 자기 나라 밖의 세계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조국이 중동에, 아프리카에, 중남미에, 아시아에 저질렀거나 저지르고 있는 폭력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력과 금력이 지배하는 세계로 거의 굴러떨어지는 속도로 달려가게 되었다.

나는 이런 태도를 ‘강자의 무지’라고 불렀다. 강자의 무지에 사로잡히는 것은 강대국 국민뿐이 아니다. 가장 좁은 사회적 영역인 가정이나 일상의 개인 대 개인 관계에서도,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몰라도 되는 그 사람은 바로 강자다. 그 모른다는 사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순간 그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최근 한 원로 문인이 단풍을 ‘화냥년’에 비유했다가 물의를 빚고 있다고 한다. 그분과 그분의 옹호자들은 억울해한다. 그냥 표현했을 뿐인데. 그 표현이 여성 일반을 모욕하고 배제하는 혐오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고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해도 된다고 내가 느낄 때, 나는 강자의 무지, 강자의 폭력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 폭력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어느 한 부분을 괴롭힌다는 인식이 없는 그것이 바로 문제임을 모른다. 내가 무지에 사로잡혀 있나를 반성하지 않는 강자에게 우리는 이제 새 이름을 붙일 때가 되었다. 가해자라고. 무지의 폭력이 빚어내는 가해에서 탈출해 연대자가 되는 강자가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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