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려법률사무소, 中서 발표한 ‘法 선전자료’ 입수…“美가 현실 왜곡, 사법제도 공정해”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 로펌(law firm)의 실체가 공개됐다. 시사저널은 북한 최초의 법률사무소인 고려법률사무소가 중국 현지 로펌과 만난 자리에서 발표한 ‘소장 기조연설문 및 북한 법률사무소 소개서’를 단독 입수했다. 그간 북한의 변호사법이나 로펌의 존재가 알려진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로펌의 규모와 구성원, 업무방식 등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서에는 북한 변호사들의 ‘스펙’(학력·외국어 능력 등)을 설명한 것을 비롯해 자국 내 재판이 매우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 상무기관의 감독을 받는 북한 변호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을 두고, 최근 교황을 초청하는 ‘파격행보’를 보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는 법을 앞세워 ‘독재국가’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中과 손잡은 北 로펌…미래 청사진 제시
북한 고려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것은 지난 10월10일이다. 이들이 중국을 찾은 이유는 중국 7대 로펌인 더헝법률사무소(DeHeng Law Offices)와 손잡고 양국 법률제도 비교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기 위해서다. 그간 중국과 북한 간 문화 및 경제 교류는 활발히 이뤄져왔다. 그러나 중국 변호사들이 북한 변호사들과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북한 변호사들이 해외에서 북한 법률제도에 대해 논의한 것은 최초였다.
더헝법률사무소 측은 세미나 후인 10월17일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양국 변호사들이 상호 이해를 높이는 데 기회를 제공했다”는 형식적인 입장을 전했을 뿐, 세미나에서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오갔는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단지 더헝법률사무소가 고려법률사무소에서 북한 변호사 한 명을 선임했다는 정보만 덧붙였다.
시사저널은 당시 중국을 방문한 고려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준비해 간 관련 문건을 입수, 북한 변호사들의 방문 목적과 발표 내용 등을 확인했다. 세미나에서는 북한 법조계의 핵심 인물로 분류되는 정일남 고려법률사무소 소장이 자국헌법 및 재판 체계 등을 직접 소개했으며, 고려법률사무소 소속 서송 변호사가 자국 변호사 현황과 미래 청사진 등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북한 변호사법은 1993년 12월23일 채택됐으며 5개장 31개조로 구성돼 있다. 북한은 변호사를 ‘프로레타리아 계급 이익의 대변자’로 정의하며, 5년 이상 법 부문에 종사했거나 해당부문 전문가 중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가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다만 북한 변호사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일종의 ‘반관반민(半官半民)’으로, 개인적인 활동엔 제약이 따른다. 조선변호사회 중앙위원회가 변호사사업부문에 대한 모든 지도통제와 관리를 맡아 수행한다.
北 법률사무소 ‘소수정예’…“외국어 능통해”
조선변호사회 중앙위원회 아래 도·시급 변호사 조직이 있다. 올해 기준 중앙위원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500여 명으로, 그중 평양시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200여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평양시에 2개의 법률사무소와 법률자문단체인 대외법률상담소 2개가 있으며, 자유무역지대인 라선시에 법률사무소 1개가 있다.
이 중 북한을 대표하는 법률사무소는 고려법률사무소다. 고려법률사무소는 2007년 6월 평양시에 설립된 북한 최초의 법률사무소로, 사무실은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다. 북한판 ‘김앤장’으로 불리지만 조직의 규모나 역사 면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사무소에는 10여 명의 변호사들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서송 변호사는 고려법률사무소의 경쟁력에 강한 자신감을 표했다. 서 변호사는 발표 자료를 통해 “사무소는 지난10년간 국내외 법률봉사활동 과정에서 부단한 발전과 경험을 축적했으며 독특한 경영전략을 세워 법률봉사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며 “사무소에는 법률지식과 학력, 외국어 능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전문화·세분화된 법률봉사업무를 맡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바른 북한투자팀의 최재웅 변호사는 “북한 변호사들을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 변호사들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언변과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중국어나 프랑스어, 영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기도 하고 뭔가를 해 보려는 열의도 뜨겁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정은 ‘특별 지시’ 있었나…외자유치에 총력
최근 들어 북한 변호사들의 대외활동이 잦아진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법은 필연 적으로 해당 국가의 인권과 자유, 평등의 문제와 직결된다. 독재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북한이 가장 꺼리는 주제다. 이런 북한이 굳이 자국의 법을 대외에 공개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북한체제 특성상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란 게 대북 관련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결국 이는 최근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정상국가화(化)’를 위한 계획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덧씌워진 ‘폐쇄’ ‘불평등’ ‘공포’ 등의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파격적인 카드를 연달아 빼들고 있다. 일례로 지난 9월18일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 장소로 노동당 본부청사를 택했다. 노동당 본부 청사는 우리의 청와대와 같은 장소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외부 인사들에게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청하기도 했다. ‘정치-종교-법’이라는 3가지 부문에서 과거와는 달리 열린 행보를 보이면서,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북한이 로펌을 전진기지 삼아, 외자(外資) 유치를 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고려법률사무소가 발표한 자료에는 투자자들이 가장 겁내는 북한 정치 및 법에 대한 불신(不信)을 지워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북한 변호사들은 자국의 법은 강력하게 인권을 보호하고 있으며, 재판 역시 외부의 압력을 전혀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일남 소장은 기조연설문을 통해 “공화국에서는 재판의 독자성이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 재판소는 자기 활동에서 권한있는 다른 기관이나 개별적 일군(일꾼)은 물론 재판 부문의 기관이나 그에 속한 개별적 일군도 포함하여 그 어떤 그릇된 간섭이나, 요구, 지시나 압력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을 행사한다”며 “공화국에서 재판소의 독자성을 침해하는 행위는 곧 위법행위로, 법적 제재 대상으로 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 변호사는 북한의 로펌이 외국투자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의 적지 않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신속하고도 효율적인 국제경제교류의 대통로로 전망적이고 이상적인 지역적 및 세계적 경제협조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로 관망하고 있다”며 “법률봉사에 대한 수요도 날을 따라 늘어나고 있으며 국내의 법률봉사 시장의 전망성도 매우 좋고 그 원천도 대단히 풍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또 “(사무소는) 여러 형태의 투자계약의 법적 부합성을 따져보고 투자 대상에 대한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인 법률적 안내를 주도하여 외국투자의 직접적 효과성과 경영상 안전에 대한 법률봉사에 특별한 힘을 넣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 소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자국 법에 대한 ‘선입견’이 이들 국가 탓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미국과 서방세계의 일부 나라들에서 공화국의 사법제도에서 재판의 독자성 보장이 마치 다른 권력기관이나 어떤 외부적인 간섭을 받기 때문에 극히 억제되고 있으며, 판결의 공정성 보장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는 듯이 현실을 왜곡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무근거한 주장들은 인권이 최대로 존중되고 사회생활의 여러 면에서 인간의 자주성 실현이 현실로 되고있는 우리 공화국의 진면모를 너무도 모르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자산계급의 어용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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