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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김정은 지시에 노동당·기관·지역 단위 초비상

대북 산림지원을 위한 남북 간 협의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10월15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소나무 재선충 방제와 함께 양묘장(養苗場) 현대화와 자연생태계 보호 및 복원 등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10월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산림협력분과 회담을 개최하는 데도 의견일치를 봤다. 남북 사이의 협의 일정을 고려할 때 올해 안에 북한 지역의 나무 심기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 첫 삽을 뜨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와 착공식 일정과 함께 산림 협력 문제는 4·27 판문점 정상회담 선언 이후 남북 당국 간 접촉에서 단골 의제로 등장하며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북한 지역 철도·도로 현대화와 산림복구 문제 모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각별히 신경 쓰며 챙기는 사안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최근 들어 북한과 접촉한 우리 지자체나 민간기구들은 북측 인사나 기관으로부터 묘목이나 식수 기자재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경평축구를 비롯해 스포츠와 문화 교류에 관심을 보여온 서울시도 대북 산림지원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 관계자는 “핵과 미사일 도발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일 때도 북한은 남측의 민간단체와 인사를 통해 대북 산림지원을 타진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북한의 산림 황폐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년 내 북한 전역의 수림화를 지시했다. ⓒ 연합뉴스


김정은, 집권 직후부터 산림복구에 관심

북한이 산림복구를 위한 나무 심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차원의 양묘장 건설 등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직후부터다.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 5월 ‘국토관리 총동원 열성자 대회’를 개최하면서 나무 심기를 자신의 정책노선에서 관심분야에 올렸다. 토지 정리와 치산치수 같은 자연개조사업은 물론, 도로·하천·지하자원·환경보호를 망라하는 북한 지역 리모델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나무 심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의 산림이 심각하게 황폐화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듯한 공개 발언을 내놓은 김정은 위원장은 “10년 안으로 벌거숭이산을 모두 수림화(樹林化)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여기에다 잔디를 심어 각 기관이나 시설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라는 방침까지 더해졌다.

김정은의 언급 이후 노동당과 북한의 각급 기관, 지역 단위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가 현지지도라는 이름으로 방문한 공장과 기업소·군부대는 눈에 띄는 곳마다 나무를 심고 잔디를 입히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단골 방문지로 꼽힌 122호 양묘장은 이른바 ‘모범단위’로 선정돼 이를 따라 배우기 위한 움직임도 벌어졌다. 지난 7월 122호 양묘장을 방문한 김정은은 “산림복구 전투가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장군의 유훈을 관철하는 사업”이라면서 “전체 당과 전 국가적으로 힘을 집중해 중단 없이 산림복구를 밀고 나가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이 산림 조성을 “숭고한 애국사업”이라고 규정하자 노동신문 등에서는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고 가꾸는 사람이 참된 애국자”라는 보도 내용이 강조되기도 했다. 김일성대학에는 전담 단과대학인 산림과학대학이 세워졌다.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북한의 담당 부서와 당국자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한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매체들은 각 지역 단위를 일일이 거명하면서 산림복구 사업에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다. 9월30일자 노동신문은 평안남도 영원군의 간부들에 대해 “신발에 흙을 묻히기 싫어하고 그쯤 하면 되겠지 하면서 요령주의적으로 일한 책임 일꾼들의 주인답지 못한 일본새(업무 스타일)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 황남 신원군에 대해서는 “서로 책임을 위에 밀고 아래에 밀면서 소극적으로 임했고, 나무 심기 계획도 미달하고 심은 나무도 잘 가꾸지 않아 식수 대상지인지 풀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함북 온성군 등에 대해서는 “나무 심기 계획을 심하게 미달하고도 허풍을 친 지역”이라며 망신주기 성격의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북한 내부의 이 같은 분위기는 남북 당국 간 접촉과 논의 과정에서도 반영되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한 9·19 평양 공동선언은 남북 환경협력 추진에 합의했음을 밝히면서 “우선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산림 분야 협력의 실천적 성과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관심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남북 간 교감이 이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상회담 수행단으로 평양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북한 군부가 조성한 122호 양묘장을 방문지로 택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 재벌 총수를 묘목장 방문 일정에 나서도록 하는 게 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예정대로 강행했다. 특히 SK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산림조성 사업을 담당하는 ‘SK임업’이 있다는 점에서 향후 대규모 대북 산림지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분단 이후 70년 넘게 황폐해진 북한의 산림을 어디부터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북한 총면적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비중은 73%로 899만ha가 산림지역이다. 이 가운데 32%인 284만ha가 황폐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최근 공개한 자료는 1990년에 비해 북한 산림 면적이 38.7% 줄어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연료 부족 등으로 인해 불법적인 산림 남벌이 이어졌고, 제대로 된 조림 사업 등이 어려워지면서 벌거벗은 산으로 변해 버렸다는 얘기다.


대북제재 장벽 넘을 수 있을까

대북제재의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숙제다. 문재인 정부는 산림 분야 대북 지원이 남측에도 혜택이 돌아오는 협력 사업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규모 자재·장비 지원이나 묘목 제공이 이뤄질 경우 미국과 유엔 등이 깐깐하게 들여다볼 공산도 크다. 북한도 이 대목을 신경 쓰는 모습이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지시로 122호 양묘장을 건립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일부 적대세력들이 터무니없이 발동시킨 제재봉쇄 책동 때문에 양묘장비 도입을 실현시킬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스스로를 “산림복구 전투의 사령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무 심기와 산림 복원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북제재와 경제난 속에서 북한 담당부서의 관리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나무 심기 행사를 벌이고 실적 보고에만 급급해하는 모습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북한 매체가 “산림복구 전투 실적은 나무를 몇 대 심었는가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몇 대를 살렸는가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벌거숭이산을 없애려면 무엇보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비핵화 약속을 김정은 위원장이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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