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욱의 안보 브리핑] 날개 꺾인 KAI의 T-50A 도전, 곳곳에 문제투성이
9월27일 미 공군은 차기 고등훈련기 사업(APT) 기종으로 보잉의 B-TX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T-50A라는 기종으로 도전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는 비보(悲報)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KAI는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우리 공군 고등훈련기 T-50을 개량한 T-50A를 미 공군에 제안했다. 미 공군은 T-38이라는 훈련기를 1961년부터 도입, 훈련기로 활용해 왔다. 이를 교체하기 위한 작업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통상 30~40년 정도 되는 기체 수명을 감안할 때 늦어도 2000년대에는 교체사업이 있을 거라고 예측됐다.
애초 T-50은 바로 T-38을 대체해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기종으로 개발됐다. T-50은 1993년 한국형 전투기로 선정된 KF-16의 절충교역 일환으로 만들어진 기종이다. 미국이 초음속의 고성능훈련기를 획득할 것이라는 첩보에 따라 초음속 기체로 개발방향이 바뀌었다.
T-50은 당초 1989년부터 계획돼 1990년 삼성항공(추후 KAI로 통합)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상세 설계안은 2000년에 완성됐고 시제기(試製機)는 2001년 10월 출고됐다. 그리고 이듬해 8월 초도비행에 성공했으니, 개발에 나선 지 5년 만에 비행에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빨리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록히드마틴이 있었다. 절충교역 대가로 록히드마틴이 기술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전투기 제작에서는 넘버원이라고 할 수 있는 록히드마틴을 과외교사로 둔 덕분에 KAI는 새로운 기체를 빠른 시간 내에 제작할 수 있었다.
록히드마틴 기술 적용, 조기 생산 성공
이러한 접근방식은 당시로선 매우 현명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초음속 훈련기가 시장에서 잘 팔리는 요소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발비를 아끼기 위해 기성품을 최대한 활용하다 보니 여러 제한사항이 발생한 것이다. 부품 국산화율이 55% 내외에 이르다 보니 기술혁신에서 커다란 한계에 직면했다.
우선 미국산 F404 엔진 때문에 미국의 수출제한 규정에 묶여서 판매된다. 물론 미국이 수출제한을 둘 정도의 국가와 거래하는 것은 경제적인 자살행위이므로 결정적인 문제라고 볼 순 없다. 더 큰 문제는 기성 부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형 부품이 돼 성능에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가격 상승요인이 된다.
T-50은 애초의 접근처럼 지원전투기로 개발됐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과거 F-50이란 단좌형 전투기로 만들어 F-5를 대체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더군다나 고성능 기체를 원하는 공군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적은 공군의 예산을 들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결국 FA-50이라는 지원전투기가 등장했지만 기체 형상은 조종사 2명이 탑승하는 복좌형 형태 그대로였다.
이러다 보니 T-50은 훈련기로서는 너무도 고급 기종이었다. 애초에 경공격기나 지원전투기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다 보니 방호력이나 기동성 측면에서 훈련기 이상의 것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도입 국가에서 훈련기와 지원전투기로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해외 훈련기 시장에서 T-50과 가장 많이 경쟁하는 제품은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에서 만든 M-346 마스터란 기체다. 이들 기종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기타 교역조건에서 밀리다 보니 UAE(아랍에미리트)와 싱가포르 공군 훈련기 사업에서 모두 패배했다.
한편 미 공군의 APT사업을 놓고 가장 현명하게 접근해 성공한 것은 보잉사(社)였다. 애초에 보잉사는 군용기 시장, 특히 전술기 시장에서는 퇴출 위기에 놓여 있었다.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군의 공군, 해군, 해병대의 전술기는 모두 록히드마틴의 F-35로 통합된다. 이에 따라 더 이상 보잉이 미군에 판매할 기체는 없다. F/A-18E/F 슈퍼호넷이 미 해군에 여전히 납품되고 있지만 2025년 이후는 전망이 불분명하다. F-15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미 공군의 구매가 끝났고 해외구매만으로 생산라인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사업상 이렇게 불리한 보잉의 위상은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외치는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점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잉이 사업에서 원하는 적절한 조건만 맞춘다면 다른 회사보다 사업 선정에서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보잉은 실제로 이뤄냈다. 즉 스웨덴의 사브사(社)와 손잡음으로써 저가의 우수한 항공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보잉은 APT를 위한 훈련기 B-TX를 만들면서 원가절감을 위한 처절한 노력을 했다. 조종석 유리창을 수동으로 열게 만드는가 하면, 기동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전연플랩을 아예 장착하지 않았다. 일부 고가 부품들은 3D 프린터로 생산함으로써 가격을 크게 낮췄다. 또 100%의 성능을 내지 못하더라도 가격을 낮추는 데 기여하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애초에 훈련기이기 때문에 고성능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싸게 만들고 정비하기 쉬운 것이 핵심이었다.
게다가 보잉은 B-TX가 90% 이상 미제 기체임을 자랑했다. 협력사인 사브는 트럼프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에 반하지 않도록 최대한 고개를 숙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T-50A의 제작 행사에 대통령까지 참석해 KAI 제품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KAI의 국내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진 몰라도, 수주하는 데는 최악의 접근이었다.
보잉, 가격 낮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 대성공
결국 사업은 보잉의 승리로 끝났다. 당초 미 공군은 APT사업에 351대의 훈련기를 도입하는 데 약 197억 달러(22조5249억원)가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보잉이 제시한 가격은 92억 달러(10조5192억원)였다. 물론 이것이 보잉의 ‘덤핑’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애초에 베스트셀러 기종인 737이나 787 드림라이너 같은 상용기로 떼돈을 버는 보잉으로서는 군용기 사업을 살리기 위해 베팅했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가격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 보잉이 과감히 사업적 결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반면 KAI는 사업을 주도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이번 사업 실패에 큰 책임을 물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T-50이 미 공군훈련기 사업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패배는 기체의 존재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사업 수주에 필요한 가격 혁신은 등한시하면서 미국에 대한 훈련기 판매가 마치 기정사실인 듯 국민을 상대로 홍보해 온 KAI의 행태는 한심하다. 특히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처럼 사장이 내려오지만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 주는 시사점이 크다. 이럴 바에는 빨리 KAI에 주인을 찾아주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