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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함 겪는 걸 못 보는 태도 만연
‘즐거운 경험’ ‘속상했던 경험’ 모두 아이 성장에 밑거름 돼

7월18일 서울시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4세 여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동료 교사의 증언 및 여러 정황으로 보아, 교대 졸업 후 발령받은 지 2년 차인 초임 교사가 학급 문제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이초 앞은 애도하는 교사 및 시민들이 보낸 화환으로 뒤덮였고, 분향소 앞에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으며, 지난 주말에는 추모제 및 교사 생존권 보장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고인이 된 교사가 올해 2월에 작년 담임이었던 1학년 학급 학부모들에게 썼던 손편지가 공개되었다. 그는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을 믿고 맡겨준 학부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으며, “즐거웠던 순간, 속상하고 아쉬웠던 순간들 모두가 아이들의 삶에 거름이 되어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가 되도록 도울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2년 차 교사였던 그가 만일 버티고 살아남아 10년 차, 20년 차 교사가 될 수 있었다면, 그가 만났을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학부모와 함께하는 ‘1학년 ○반 공동체’로 학급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철학을 지니고 있던 그가 만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학생·교사·학부모, 더 나아가 지역사회까지 포함한 그야말로 ‘공동체’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교사의 사망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사회적 손실이기도 하다. 
7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재발 방지 대책 교사 의견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재발 방지 대책 교사 의견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릇된 자녀 보호, 학교 진상 민원으로 연결

이 사건(이하 ‘서이초 사건’)으로 인해 많은 시민과 교사들이 공감하고 슬퍼하며 분노했고, 진상 규명 및 제도적 개선에 관한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볼 때, 이 사건은 단일한 하나의 원인과 대책을 갖고 있는 사안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으로 파악해야 할 듯하다.  먼저 교육장 면에서의 학부모 및 양육자에 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교사들에게 학생 지도뿐 아니라 소위 ‘진상 학부모’들의 ‘민원’에 응대하는 일이 골칫거리가 되었단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서이초 사건에서도 학급에서 한 아동이 다른 아동의 이마를 연필로 그어 다치게 한 사건에서 학부모가 교사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든지 ‘애들 케어를 어떻게 했냐’는 등의 폭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최근 경기교사노동조합이 진행한 온라인 조사에서는 기가 찰 만한 학부모 갑질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한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는 교사에게 “한약을 보낼 테니 데워 먹여라” 등 수시로 민원 전화를 했고, 아동에게 국어책을 갖고 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로 고발당한 교사의 사례도 있다. 소수의 학부모/양육자만 ‘진상’이란 프레임으로 이분법적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회 전반에 퍼진 온갖 계층에 관한 혐오 현상을 부추기는 일이므로, 이러한 사건들의 맥락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소위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은 학생의 부모뿐 아니라 삼촌·고모·할아버지·할머니 등 다양하므로 여기서는 ‘학부모/양육자’라고 칭함). 오직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겪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러한 양육 태도가 만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고인이 된 서이초 선생님의 손편지에서처럼, 아동이 마주하는 ‘즐거운 경험’과 ‘속상했던 경험’ 모두 아동에게는 지적·정서적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이 과정이 ‘발달’이다. 아동청소년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은 해당 아동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방향으로 신체·인지·정서적 발달을 이루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자 기성세대의 책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은 이런 의미로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전반의 양육 문화는 ‘내’ 아이에게 ‘즐거운 경험’만을 하게 해야 좋은 학부모/양육자라고 여겨지는 문화인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육아에는 알아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아져버렸다. 필자 역시 한국에서 자녀를 출산·양육할 때 시기별로 꼭 읽어야 하는 육아 서적, 따라야 하는 육아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지인들로부터 알게 되어 놀랐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육아하면서 알아야 하고 따라야 할 많은 일은 지금과 같은 핵가족 사회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공동의 책임이 아닌, 개별 학부모/양육자의 일이 된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학부모/양육자는 자녀에게 늘 가장 좋은 것을 주지 못한 데서 오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런 죄책감이 그릇된 자녀 보호, 즉 학교에서의 ‘진상 민원’으로 연결되기란 너무도 쉽다.  또한 학부모/양육자뿐 아니라 모든 우주가 ‘내’ 아이의 ‘즐거운 경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는 이런 역기능적인 가치관에는 사실상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무의식적인 기제, 이에 더해 자신과 자녀를 분리하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가 작용한다. 학교에서 아동이 어떤 이슈를 경험했을 때, 아동이 직접 선생님에게 말하도록 기회를 주고 학급 안에서 공동의 문제 해결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과, 학부모/양육자가 당장 선생님에게 민원 전화를 걸어 아동 대신 바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사소해 보여도 학부모/양육자의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일이다.   

다양한 사회문제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이런 문제 해결 방식은 아동에게도 좋지 않다.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에,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경험하지 않은 아동은 전두엽 발달이 저하되고, 전두엽 발달 저하는 언어장애, 사회적 소통 미숙,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등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부모/양육자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니라 이러한 거시적인 맥락으로 양육해야 한다. 진상인지 아닌지를 이분법적으로 가르거나 특정인을 악마화하자는 것이 아니니, 잠시 멈추고 나는 어떤 학부모/양육자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또한 서이초 사건은 남성 교사와는 달리 젊은 여성 교사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 실제 민원 및 폭력이 명백히 다르다는 점에서 젠더 권력의 구조적 문제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지금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고 있는 교직 문화와 교육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이와 같이 서이초 사건에는 어느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이 일에 관련 없는 사회 구성원은 없다. 교사나 학부모/양육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모두 학교나 선생님을 거쳐 성장했으며 다음 세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우리 모두는 이 일과 관련이 있다.  부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필요한 법제도 정립과 모두의 인식 및 행동 변화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동청소년들이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로 발달·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변화여야 함을 기억하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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