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과정서 통신비밀보호법과 민사소송법 간 충돌
대법 “문서제출 명령에 의한 통신자료 제공, 입법목적 반하거나 확장해석 아냐”
민사소송과정에서 가입자의 통신내역 자료를 제출하라는 법원 명령이 나오면 통신사가 이에 따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SK텔레콤이 문서제출명령 불이행에 따른 법원의 과태료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재항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통신사실확인 자료는 문서제출 명령의 대상이 되며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비밀보호법 3조를 이유로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이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더라도 민사소송법상 증거에 관한 규정이 통신사실 확인자료에는 원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조사 촉탁보다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쳐 발령되는 문서제출명령에 의해 통신사실 확인자료가 제공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입법목적에 반하거나 가능한 범위를 넘는 확장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원이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해 문서제출명령을 발령할 때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통신·대화의 비밀 및 자유와 적정·신속한 재판의 필요성에 관해 엄격한 비교형량을 거쳐 필요성과 관련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지난 2016년 8월 한 부부의 이혼·친권자 소송에서 비롯됐다. 아내 A씨는 남편의 불륜을 주장하며 이를 입증할 남편의 통화내역을 SK텔레콤이 제출하도록 법원이 명령해달라고 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SK텔레콤에 문서제출 명령을 내렸지만 SK텔레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SK텔레콤은 “통화내역 자료 제공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협조의무로 규정되지 않았다”며 “압수수색 영장 요청에만 자료제공이 가능하다”고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법원은 SK텔레콤에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고, SK텔레콤은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과 즉시항고 했다. 하지만 항고심 법원도 SK텔레콤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 타당하다고 봤다. SK텔레콤은 재차 불복해 2018년 5월 해당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앞서 재판 실무과정에서 통신비밀보호법과 민사소송법이 서로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온 바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3조1항은 통신비밀보호법과 형사소송법,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따르는 경우 외에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법 13조의2는 법원이 재판상 필요한 경우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하지만 강제 규정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민사소송법 344조는 법원이 재판에 필요한 문서를 가진 자에게 제출을 명령할 수 있으며 문서 소지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안철상·민유숙·노정희·오석준 대법관은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법원은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해 문서제출명령을 할 수 없고 명령을 하더라도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비밀보호법을 들어 그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남겼다. 일반법인 민사소송법에 앞서 특별법인 통신비밀보호법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