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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사노조 '교권 침해' 상담사례집 입수 분석
교사 99% 교권 침해 겪었는데…서울 중·고교 교보위 작년 403건 열려

“잊고 싶은데 잊히지가 않아요.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난생처음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먹고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 학생 아버지와 다시 대면하는 것이 몹시 두렵고 정말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로 공포스럽습니다.” “등교일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그 아이가 한번 사고를 치면 주말 내내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요.” “전화만 오면 가슴이 벌렁대고 답답해 정신과 진료를 예약해 뒀습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서울교사노동조합 상담사례 모음집(2016년~)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교권 침해나 악성 민원에 시달린 교사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며 언급하는 단어는 두려움, 공포, 심장떨림, 자괴감, 자책감, 무력감 등이다. 일상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내상을 입은 교사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병가 또는 휴직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악성 민원을 겪는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고객센터 상담직원이 느끼는 것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교사노조 관계자는 “다른 기관 민원 고객들은 응대하면 떠나지만 교사들은 해당 학생과 학부모를 1년간 계속 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매일 교실에서 해당 학생을 마주해야 하고, 해당 학부모가 언제든 해오는 연락에 응답해야 하는 나날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7월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외부에 고인이 된 서이초등학교 담임교사 A씨의 추모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교사 목 조른 아이에게 무릎 꿇고사과해 달라는 학부모

교육현장에서의 교권 침해는 이제 흔한 일이 돼버린 것으로 파악된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전국초등교사노조가 7월21~24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전체 응답자(2390명)의 99.2%(2370명)가 교권 침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나흘 동안 이어진 경험담 제보 건수는 2414건에 이른다.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에서 제공받은 상담 사례의 내용을 보면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1. 6학년 체육대회 도중 옆반 남녀 학생의 말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여학생이 저에게 “○○년아” “XX년아” “아줌마가 뭔데” 등등의 폭언을 하고, 주먹으로 제 턱과 어깨를 때렸는데 맞고만 있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교사 말을 무시하고 모든 대화에 욕설을 섞어 말하고 임신한 교사도 때리는 유명한 여학생이었기 때문에, 화가 나기에 앞서 ‘올 게 왔구나. 나도 한 번은 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학생이 자살하고 싶어 조퇴하겠다며 울면서 교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진행했지만 진정되지 않아 학급으로 가서 짐을 챙겨 오라고 했습니다. 짐을 챙겨 교무실로 온 학생이 갑자기 자신을 비웃었다며 욕설을 하고 자신이 죽으면 저 때문이라고 악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는데, 이를 말리던 다른 선생님도 팔을 물어뜯겼습니다. 경찰과 구급차, 학부모가 왔고, 학생이 저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학부모가 아이를 위해 무릎 꿇고 사과해줄 수 없냐고 해서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3. 초등학교 3학년 급식시간에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아이가 흥분한 상태로 소리를 지르고 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 보안관실에 전화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여러 차례 저를 밀고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그 상황을 보는 다른 아이들도 울고, 상황을 수습하러 온 교감선생님도 눈물이 터졌습니다. 병가를 내고 정신과 상담을 다녀왔어요.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4.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SNS에 ‘△△, 내일 담탱이(담임선생님) 죽었음’이라고 적었어요. 학부모에게 연락해 상황을 얘기했더니 ‘선생님이 지도를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뭐 이런 일로”…교보위, 교사 보호 못해 

심각한 수준의 교권 침해를 겪고도 교사들은 사실상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실정이다.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존재하지만 유명무실한 기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서울시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운영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중·고등학교 교보위 개최 건수는 2018년 404건, 2019년 443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기간이던 2020년, 2021년에는 각각 154건, 278건으로 줄었다가 학교 수업이 정상화된 2022년 403건으로 다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집계된 건수 중 학생에 의한 침해가 377건, 학부모에 의한 침해가 23건이다.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유형에는 모욕·명예훼손(208건)이 가장 많았고, 다음은 상해·폭행(49건), 성적굴욕감·혐오감 유발(44건), 공무 및 업무방해(20건) 순이었다.  교사들의 교권 침해 상담 건수에 비해 교보위 개최 건수가 턱없이 적은 이유는 일이 커지는 것이 두려워 교사 스스로 개최를 꺼리거나 관리자의 비협조로 개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국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부산 지역에서 접수된 심각한 교권 침해 상담 사례는 11건이지만 이 중 실제로 교보위가 열린 사건은 3건에 지나지 않는다.  6년 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교보위 개최를 요구했으나 학교장이 이를 막았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A씨는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중 2명이 부딪혀 1명이 무릎이 까지는 부상을 입었다. 학부모가 교사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을 넣어 관리자에게 교보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교장은 교보위 사안에 해당되지 않고, 저에게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결국 제가 숙이고 사과하는 선에서 중재돼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그는 “관리자들은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게 교사들을 위한 길이라고 포장하지만 그런 해결 방법은 실제로 교사들의 장래에 도움이 안 된다. 어린 교사들이 숙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배우니 교육현장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담 사례 중에도 교보위 개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력감을 느꼈다는 글이 눈에 많이 띈다. “학생으로부터 신체적 성추행을 당했는데, 관리자는 교보위 대신 학교에서 자체 처리하고 병가도 내지 말라고 했다. 학부모와 만나는 자리에 함께해 달라는 부탁에도 학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아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신규 교사(부임한 첫해) 시절 중학교 3학년생이 ‘△△년’이라며 손가락 욕을 해 교보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담당 업무를 맡은 교사가 일이 많으니 교보위 신청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학부모는 ‘교사가 잘 지도하지 않아 이렇게 됐다’ ‘담임교사를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해 학생에게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교사로서 자존감이 떨어졌고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는 죄책감으로 1년을 보냈다” 등이다.  

"중대한 과실 없을 때,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도록 법 개정해야"

교보위를 개최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처만 입었다는 사례도 있다. 교사 18년 차인 B씨는 “수업시간에 떠들지 말라는 지시에 학생이 씩씩거리며 교단으로 올라와 주먹을 휘두르며 교사를 폭행하려 했다. 교보위를 열었지만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부모 위원들, 외부 위원들로부터 평가를 받으며 오히려 제 잘못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돼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학생에게 ‘5일 등교 정지’ 처분이 내려졌는데, 다른 학생들은 ‘저렇게까지 했는데 5일 등교 정지밖에 안 받네’ ‘방학을 빨리 시작해서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B씨는 “그다음 해에 또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교보위가 교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부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일을 처리했다. 아이들이 교실 뒤에서 욕을 해도 교사들이 일이 커질까 두려워 못 들은 척하는 경우가 많다. 교권은 없고 학생들 권리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의 어떠한 행동이나 지시도 아동학대로 귀결될 수 있으니 올바른 지도나 가르침이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교사들이 교권 침해를 문제 삼기 꺼리는 것은 학생이나 학부모 측에서 아동학대를 주장하고 나오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이들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교사가 아이를 붙잡았는데 명백한 신체 접촉이 있었으니 폭력이고, ‘똑바로 앉으라’는 교사의 말에 아이가 위협을 느꼈다고 정서적 학대를 주장하는 상황이니 교사들이 위험 부담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사가 정당한 학생 생활지도를 할 때, 고의가 없거나 중대한 과실이 없을 때는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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