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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3가지 패착…‘압도적 부결’도 ‘단일대오’도 없었다
非明세력, ‘방탄 개미지옥’ 대신 카오스 같은 ‘격랑’을 선택
“대표직·공천권 중 하나는 내려놔야”…‘당직 개편’ 구상 나와
두 개의 단일대오 전선을 모두 깨버린 비명계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이 대표의 ‘설득 정치’는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간 민주당 내부에선 체포동의안 정국에 임하는 이 대표에게 각각 두 개의 명분과 실리가 존재한다는 시각이 있었다. 검찰이 결정적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고,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전임 정부와 야당 전체에 휘몰아치는 사정 정국에 맞서려면 단일대오가 필요하다는 명분은 이 대표에게 든든한 우군과도 같았다. 여기에 내년 총선 공천권과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강성 지지층은 민주당 내 원심력을 제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사실상 깨져버렸다. 공천권을 쥔 이 대표가 강성 지지층을 앞세워 연달아 대국민 여론전(규탄대회와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물론 소속 의원 전원에게 친전도 보내고, 비명계 의원들을 일대일로 만났음에도 ‘설득 정치’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이 대표가 ‘검사 독재’만을 반복해 외칠 뿐, 당 내부를 향해 어떤 정치적 해법도 제시하지 못한 결과”(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이 자부하던 ‘굳건한 단일대오’는 그렇게 깨졌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지금 주목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민주당 비주류 세력이 카오스(혼돈) 같은 ‘불확실성’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비명계로 불리는 민주당 의원들은 체포동의안 표결로 ‘방탄 단일대오’만 깬 게 아니다. 이재명 대표 체제로는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총선까지의 단일대오’라는 흐름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상황을 고려하면, 이재명 체제 이후의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당장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등이 혼란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당 안팎에서 제일 많이 거론되는데, 모두 혼란을 수습할 ‘관리형 비대위’에는 적합하지만 총선을 승리로 이끌 필승카드로까지는 평가되지 않는 분위기가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비명계가 이런 분위기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스스로 ‘카오스’라는 선택지를 택했다. 그 이유는 단연 “이 대표 체제에서 방탄 프레임에 갇혀 꼼짝달싹 못 하고 발버둥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조응천 의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지금 이재명 체포동의안 정국을 관통하는 결정적 장면들과 핵심 포인트, 향후 예상되는 될 시나리오를 짚어봤다.권노갑의 일갈, 이재명의 침묵, 조용한 이탈
무더기 이탈표가 확인된 체포동의안 표결로 드러난 민주당 분위기는 확실하다. ‘방탄 피로증’의 실체가 드러났고, 언제까지 부결로 맞설 것이냐는 물음표도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이 대표가 결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분위기는 언제 굳어진 걸까. 취재 결과, 두 개의 결정적 장면이 존재했다. “이번에는 의원총회에서 결정한 바와 같이 (부결 총의를) 따라가자. (하지만) 다음번에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당 대표로서 솔선수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 줬으면 한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2월22일 민주당 상임고문단 회의에서 바로 이 대표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추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에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을 것을 조언한 것이다. 권 고문은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후에는 이 대표에게 더욱 강하게 ‘선당후사의 자세’를 역설했다. 특히 권 고문은 이 대표에게 ‘김대중(DJ) 정신’과 ‘민주당의 역사’ 등을 거론하며 당대표로서 민주당 정신을 더욱 따라야 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걸어온 길이 부끄럽지 않게 이 대표도 떳떳한 자세와 당당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도 뒤따랐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날 권 고문의 발언이 조용하지만 빠르고 묵직하게 퍼져 나갔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이 대표의 2월23일 기자간담회 ‘오랑캐 침략 격퇴’ 발언도 비명계 의원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 이 대표는 간담회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털어낼 방안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국경을 넘어 오랑캐가 불법적 침략을 계속하면 열심히 싸워서 격퇴해야 한다”며 “오랑캐 침입 자체를 막을 방법이나 회피할 방법은 없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복수의 비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이 대표의 결단을 기대했던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후 ‘그럴 일은 없겠다’는 이야기가 쫙 퍼져 나갔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현재 상황을 오랑캐의 불법 침략으로 평가한다면, 선당후사의 자세를 요구하는 동료 의원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이날 이후 이 대표와 일대일 면담을 하려고 했던 상당수 의원이 기대를 내려놓고 만남을 접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불리하게 흘러가는 여론과 집요하게 계속되는 검찰의 수사도 민주당 내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답변(57%)이 ‘유지’(27%)를 압도하고, ‘이 대표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응답자(49%)가 반대(41%)보다 많았다는 여론 흐름(2월24일, 한국갤럽)이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기소와 재판도 민주당에 상당한 피로감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록 부결됐지만 대장동과 성남FC 사건은 곧 불구속 기소될 것이고, 지난해 9월 기소된 선거법 재판도 이제 시작된다. 이 대표는 계속 재판에 불려 나가야 하고, 재판은 실시간 중계되며 민주당의 다른 이슈들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추가로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3건(백현동·정자동·대북 송금)이나 된다. 이 사건들도 결국엔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실제 사법 리스크가 내년 총선까지 집어삼킬 수 있겠다”는 우려가 점점 커졌다.‘민주 대 反민주’ 구도 안 서니 여론도 안 움직여
이 대목에서 민주당에서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한 의원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만 보면 ‘야당 탄압’이라는 프레임이 가동돼 ‘민주 대 반(反)민주’라는 구도가 짜이는 게 자연스럽다. 민주당이 지지층을 최대로 결집시켜 제일 잘 싸울 수 있는 전선이 바로 여기”라면서 “그런데 이 구도가 세워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위 의원의 설명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일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맥락이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모두 민주당과 무관하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범죄 혐의는 없다. ‘성남시장 이재명’으로서의 혐의만 있을 뿐이다. 검찰에 불려가는 이들도 다 당시 성남시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민주당의 상당수 인사는 사법 리스크와 당을 구분해서 본다. 그러니 대다수의 속내에는 이 대표가 사법 처리돼도 당이 진짜 망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시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에도 77.77%라는 민주당 역사에 없던 최다 득표율로 당대표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때는 강했던 일체성이 왜 지금은 흐릿해진 걸까. 이 질문에 다수의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왜 이재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가치와 비전으로서 제시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의 전략통 의원은 “이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화두가 될 만한 의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정책을 제시한 게 있나”라면서 “이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면 당 내부에서는 한 번쯤 전장을 ‘체포동의안 정국’에서 벗어나 ‘경제와 민생’으로 옮겨 윤석열 정부를 견제도 하고 맞붙어볼 생각을 했을 텐데, 전제가 성립이 안 되니 이 대표 체제에서 운동장을 바꿔 싸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비명계 투입’ 당직 개편 ‘쇄신 카드’ 꺼내나
또 다른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내놨다.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이 대표 특유의 강점인 추진력과 돌파력은 경제와 민생의 영역에서 대중적 파괴력을 지니는데, 압도적 다수당의 당대표임에도 지금은 수사에 손발이 묶여 자신이 유리한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사법적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법 리스크로 인해 대중에게 이 대표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가 상당히 훼손된 측면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정부의 아픈 손가락인 ‘김건희 특검’ 등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공격도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방탄 프레임’이 모든 걸 튕겨낸다.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우려와 아쉬운 점들이 모여 이 대표의 리더십은 지금 기로에 섰다. 비명계는 이미 체포동의안 표결로 실력 행사를 했다. 이 대표와 당 지도부는 더 많은 소통과 내부 결속에 힘쓰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서로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취재에 따르면 비명계의 목소리와 입장은 각기 다르게 표현되지만 본질적 요구는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①이 대표가 대표직을 스스로 내려놓거나 ②최소한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는 구체적 선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명계는 비명계의 이런 요구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다른 기류도 감지된다. 이재명 지도부는 일단 ‘전열 정비’를 하되 ‘쇄신 카드’로 어떤 게 가능한지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친명계에서는 당직 개편을 통해 비명계 목소리를 제도권 내로 흡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친명계에선 이 대표가 자진 사퇴하는 결단을 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친명계 좌장으로 평가받는 정성호 의원은 묘한 발언을 해 여운을 남겼다. 정 의원은 2월24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 사퇴가 ‘신의 한 수’라고 말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시간·방법·내용으로 해야 신의 한 수”라며 “이 대표도 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측 사정에 밝은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친명계가 그리는 시나리오를 크게 ‘선(先)관리-후(後)대응’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했다. “이 대표 측 입장에선 우선 당내 설득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우군을 최대한 확보한 가운데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명계의 당선을 제1목표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비명계 원내대표 당선은 필사 저지할 것이다. 또 다른 관건은 당 지지율이다. 이 중 하나라도 관리에 실패한다면 리더십 붕괴 속도가 가속화할 수 있는 만큼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응 계획)을 세울 텐데, 그건 이 대표 스스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셔와 대표직에서 비켜서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된다. 책임 있는, 질서 있는 퇴각을 하면서도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있는 동력을 얻는 방식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이낙연·정세균·김부겸, 안정감은 ‘확실’ 파괴력은 ‘글쎄’”
이재명 체제 이후의 혼란을 수습할 구원투수로는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등이 제일 많이 거론되고 있다. 모두 경륜과 중량감을 갖춘 중진 의원 출신이니만큼 비대위 구성부터 운영까지 무리 없이 해낼 것으로 평가받는다. 상대적으로 이 전 총리의 경우 직전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와의 경쟁 이후 생긴 감정의 골이 각자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의 경우에는 당의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당을 다시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적임자로 여겨지고 있다. 정 전 총리의 경우 당이 혼란에 빠질 경우 본인이 당의 원로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중도 강하다고 전해진다. 관건은 내년 총선이다. 평시라면 지금 거론되는 전직 총리 3인방은 누구보다 좋은 구원투수감이다. 문제는 이들이 ‘민주당의 얼굴’로서 차기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느냐다. 2024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2024 시대정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분명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고령인 이들이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 외에도 김동연 경기지사, 박지원 전 국정원장,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 박용진 의원 등도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결국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거목 같은 구심점 역할을 해야만 총선 전에 당이 안정감과 방향성 모두에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퇴임 후 잊힌 삶을 살고 싶다’며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누누이 밝혀온 문 전 대통령이지만, 그 현실정치가 그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문 전 대통령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수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로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 버렸다. 제1야당 민주당의 운명은 이제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은 사법부의 수사와 재판, 당내 갈등과 지지율이라는 안팎의 변수에 휘둘리게 됐다. 역사는 내년 총선 이후 지금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내전의 시작일 수도, 창조적 파괴의 태초일 수도 있다. 지금,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후폭풍 특집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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