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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범죄 수사관들이 털어놓는 ‘우리 일상 깊이 스며든 마약’ 실태
“스와핑클럽 화장실에서…고속도로 위 레커 기사들도”

길거리 우체통에 손을 넣었을 때 윗부분의 파인 홈, 동네에 있는 원룸 건물 화분 밑이나 계단 아래, 공용 화장실 변기 뒤쪽이나 창틀, 놀이터 벤치 아래…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들에 붙어있다. 가로세로 각각 3cm 남짓한 조그만 비닐에 쌓인 하얀 가루 1g.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히 이 장소를 찾아 ‘물건’을 떼어간다면 판매상에게 1g의 가격 80만원을 지불한 사람이다. 초점 흐린 눈으로 여기저기 뒤적이며 머뭇거린다면, 돈이 없어 과거에 물건을 샀던 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중독자일 수 있다.
임성순 서울마포경찰서장 (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마포경찰서 관계자 및 마포구 자율방법연합대 관계자 등이 4월20일 서울 마포구에서 마약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물건을 가진 자가 ‘갑’ , 물건에 고픈 투약자는 ‘을’

마약판매의 가장 흔한 수법인 ‘던지기’. 물건이 던져지는 장소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1층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히지 않는 건물일 것, 24시간 오픈돼 있을 것, 비를 맞지 않는 장소일 것 등이다. ‘드로퍼(Dropper·마약 운반책)’는 강남, 이태원, 수원, 대전, 부산 등 판매상이 지정한 지역에 한정해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아 1g씩, 2g씩 소분한 필로폰을 붙여놓는다. 이어 판매상에게 물건이 붙어있는 사진, 그곳 도로명 주소가 찍힌 사진, 그 장소로 찾아가는 길을 설명하는 부연 사진 등을 콜라주(한 장의 이미지에 사진 여러 장을 겹쳐 만든 것)해서 몇 그램짜리가 던져져 있는지를 적어 보낸다. 판매상은 인터넷 광고를 보고 텔레그램을 통해 연락해온 투약자에게 무통장입금이나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받은 다음, 콜라주 사진을 보내주고 물건을 직접 찾아가라고 한다. 판매한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알 수가 없고, 산 사람의 연령은 물론 성별조차 짐작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거래가 성사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시장에서의 ‘손님은 왕’ 문화는 통하지 않는 세계다. 이 세계는 사실상 계급이 존재하는데, 거래선을 따라 물건을 주는 쪽을 ‘상선’, 받는 쪽을 ‘하선’이라고 부른다. 최초의 공급처가 최상선이고 중간 단계의 소매상은 상선도 되고 하선도 된다. 투약자가 가장 하선이다. 손님에게 친절하게 굴었다간 오히려 ‘가짜’ 물건을 판다는 의심을 사거나 사기꾼으로 오해받는다. 언제나 물건을 가진 자가 ‘갑’이고, 물건에 고픈 투약자는 ‘을’이다. 갑이 부르는 대로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구조. 마약이 생활 속으로 스며든 사회,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마약수사는 타이밍이다. 타이밍만 잘 맞춰 현장을 단속하면 마약 소지, 제조, 판매, 투약 사범을 일거에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웬만한 정보력 없이는 이 현장을 덮칠 타이밍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갯벌 속으로 사라지는 게를 떠올리면 된다. 발견 즉시 구멍을 파보지만 숨어드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4월10일 서초동 검찰 청사에서 열린 마약 및 총기류 동시 밀수 적발 관련 브리핑에 압수된 마약과 총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4월10일 서초동 검찰 청사에서 열린 마약 및 총기류 동시 밀수 적발 관련 브리핑에 압수된 마약과 총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1 “‘오늘 저녁 7시 베트남산 커피 볶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암호였어요. 베트남산은 필로폰, 태국산은 신종마약 ‘카바’ 등등 마약마다 우리만의 은어가 있어요. 텔레그램으로 이 메시지를 받으면 ○○구 □□아파트 3동 1106호에 모여요. 대금을 지불하고 필로폰을 투약했습니다. 저는 딱 한 번 해본 게 다인데, 여전히 그 집에서 사람들이 모여 마약을 하고 있어요.” 

#2 “△△구에 있는 스와핑클럽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헤롱거리는 현장을 목격했어요. 100% 마약을 한 사람들 같았어요. 가운데 아주 큰 소파가 일종의 무대고, 이 소파를 둘러싸고 놓인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스와핑을 구경하는 거예요. 입장료만 30만원이에요. 입금계좌번호도 알고 그 장소에 출입하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3 “◇◇도로 레커 기사 몇 명이 모여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중에는 마약 전과자도 있다니까 틀림없습니다. 일할 때 보면 눈이 딱 동태 눈알이고, 말투가 어눌해요. 행동하는 것도 뭔가 일반인과는 다르죠.”

보복 두려운 제보자들 진술 꺼려…‘꼬리 자르기’도 횡행

올해 경찰에 접수된 마약 관련 첩보들이다.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영장 청구에 필요한 진술은 꺼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무기명 진술도 가능하지만 이조차도 선뜻 협조하는 이는 드물다. 최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작성해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구체적 진술이 없다면 법원에서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유로 매월 접수되는 마약 관련 첩보가 실제 수사로 진행되는 건수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려면 영장을 받아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의심만 갖고는 수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제보자들이 진술을 꺼리는 이유는 뻔하다. 상당수는 자신의 경험이 전제된 목격담이어서 제보하는 동시에 마약범죄를 자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참작돼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나오더라도 기록에는 남게 된다. 전과자가 되면서까지 제보하려는 이는 없다. 단순히 투약 광경을 목격만 했더라도 자신의 생업과 연관 있는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경우 진술을 거부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범죄와 무관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생업에 당장 지장이 생기는데, 마약 청정국을 만들겠다고 수사에 협조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되겠나”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보복범죄가 두려운 경우다. 자신은 물론 가족의 신변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진술을 감행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교도소에 수감된 후 자신을 제보한 사람을 수소문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경험자에 따르면 마약 시장도 좁아 교도소 내 수감자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아 의심되는 사람을 특정하고, 소문을 내 그 사람이 더 이상 마약 거래를 할 수 없게 고립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보복하는 경우가 있다. 판매자든 투약자든 이 세계에서 고립되면 더 이상 일할 수 없거나 추가로 약을 살 수 없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10대 청소년이 자신의 필로폰 투약 사실을 신고한 사람을 감금·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 기소된 사건도 있었다. 판매상, 지게꾼(마약을 밀반입하는 운반책), 드로퍼, 투약자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에 경찰들 사이에 마약 수사가 ‘감자넝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단 한 명을 검거하면 공범에 대한 진술을 끌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가 많다. 마약 사범은 형량 거래가 가능하다. 붙잡혔을 때 수사에 협조하는 만큼 본인 형량을 줄일 수 있기에 공범을 폭로하는 경우도 흔하다. 마약 소지자를 체포했다면, 판매책을 알아내고 판매책까지 체포하면 또 다른 누구에게 마약을 팔았는지 조사에 들어간다. 판매책 일당이 대거 기소되거나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 투약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되는 사례 등이 이 경우다.  반대로 ‘꼬리 자르기’를 통해 더 이상의 추적을 막는 일도 기술적으로 일어난다. 희생양은 거래선의 아래쪽에 위치한 하선들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지게꾼들이 공항에서 적발되거나, 국내에서 드로퍼들이 마약을 던지다가 혹은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는 경우, 주사기를 든 투약자가 적발되는 경우 꼬리가 쉽게 잘린다. 텔레그램을 통한 물건 전달, 마약 구매는 사실상 추적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누구에게도 이용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텔레그램 창업자의 의지로 인해 텔레그램은 범죄자들 간에 정체를 들키지 않는 보증수표가 되고 있다.    

“국내 마약 시장 커지면서 마약상들 간 경쟁 치열해져”

마약은 ‘100배’ 장사로 불린다. 최근 20·30대 젊은 세대가 마약거래상이 되고 중독에 빠지는 이유도 ‘돈’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은 100배 장사다. 1알당 1만원씩 100알을 100만원에 사서 1알당 100만원에 판다. 지게꾼을 시켜 100알을 배달시키면서 1000만원의 대가를 지불한다. 1000만원이나 써서 위험 부담을 줄여도 자신에게 9000만원이 떨어지는 구조이니 이보다 큰 유혹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최근 5년 사이 마약류 사범의 연령이 급격히 어려지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2022년 마약백서에서 최근 5년 사이 마약류 사범 연령별 현황을 보면 20·30대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18년 2118명으로 전체(1만2613명)의 16.8%에 불과했던 20대 마약류 사범이 지난해 31.6%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10대도 1.1%(143명)에서 2.6%(481명)로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 30대 또한 23.8%(2996명)에서 25.6%(4703명)로 증가하는 추세다. 범죄 원인을 보면 중독(19.8%), 호기심(12.5%), 유혹(9.9%), 영리(8.9%) 순으로 많다. 대한민국이 ‘마약청정국’이라는 수식어는 옛말이 된 지 오래. 우리 사회 마약범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전년(1만6153명) 대비 13.9%나 증가했다.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단속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미 확산세가 커 쉽사리 추이가 꺾이지 않는 모양새다.  숨어드는 마약 흡입·투약·복용 범죄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은 피해자가 없는 범죄다. 노출되지 않아 다른 수사에 비해 굉장히 어렵다. 절도를 예로 들면 ‘100건의 절도 범죄가 있었는데, 경찰이 50건을 붙잡았다’고 할 수 있지만 마약 흡입·투약·복용은 100건을 잡으면 범죄가 100건으로 집계된다. 적발된 만큼이 범죄 건수다. 숨어서 마약을 흡입하고 투약하는 규모가 얼마나 있는지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숨어드는 범죄인 마약을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대놓고 음료로 제조해 나눠준 사건은 우리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마약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A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국내 마약 시장이 확대되면서 판매상끼리 지나친 경쟁을 하다 보니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고 분석했다. 인터넷과 SNS, 메신저 등을 이용해 손쉽게 해외 등지에서 마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 마약 시장이 급격히 커졌고, 마약상들 간 경쟁도 치열해진 것이다. 마약 거래로 중독자가 늘어난 만큼 다시 공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6월28일 울산 남부서는 필로폰과 합성대마 판매자와 투약자 등 55명을 검거해 4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마약 유통책과 투약자들로부터 압수한 합성대마 ⓒ연합뉴스

“성범죄처럼 함정수사·위장수사 법적 근거 마련돼야”

마약범죄에도 함정·위장 수사가 허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지능화하고 치밀해지는 마약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다. 과거 마약범죄가 드물었을 때는 제보를 통한 수사가 대부분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마약 의심 신고에 의해 시작되는 수사가 훨씬 많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범들을 체포하는 데 이어 판매상으로 수사가 확대되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표면적으로 느껴질 만큼 마약 수사에 대한 지원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효율적인 수사를 위한 제도적·금전적 지원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성범죄는 함정수사의 근거가 되는 법리가 있지만 마약수사에는 함정수사나 위장수사의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고 말했다.  홍완희 대구지검 강력범죄형사부장 또한 최근 ‘2023년 국정현안 대응 형사·법무정책 학술대회’에서 “고도화하는 마약범죄 대응을 위해 마약 구매 대금으로 쓰이는 가상자산 추적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위장 판매나 잠입수사 등 ‘함정수사’도 제한적이나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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