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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첫 집권여당 전대에서 ‘친윤인가, 아닌가’ 쟁점뿐
비전도 토론도 없는 뺄셈의 정치 드러내

결국 나경원 전 의원이 1월25일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면서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친윤(親윤석열)’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는 여권 내에서 불출마 압박을 전방위적으로 받아왔다. 이준석 전 대표의 경우,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 정치를 했다는 점을 명분 삼아, 그를 몰아내는 과정에 무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준석이라는 이름은 정치 기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우니, 윤핵관들은 이준석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셈이다.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를 막은 광경도 상식적이지는 않았다. 윤핵관들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정치적 측은지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정치인이 여당 대표가 된다는 것은 집권세력으로서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유승민 대표’가 들어서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여론조사 30%’를 들어내고 ‘당원 100%’로 경선룰을 바꿔버렸다. 어차피 정치란 게 욕먹는 것은 잠깐이고 당대표 임기는 2년이니, 그렇게라도 해야 할 판이었나 하며 지켜봤다.
나경원 전 의원이 1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힘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가깝고 편한 사람들만 찾는 대통령의 고집

그런데 이번에는 나경원 전 의원이었다. 저출산고령사회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라는 장관급 자리를 두 개씩이나 가졌으면서도 임명 3개월 만에 당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그의 정치가 좋아 보일 수는 없다. 대통령이 일하라고 임명해준 자리를 자기 정치에만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출마 자격만 있으면 누구든 나갈 수 있는 경선에 나선다고 역적 대하듯 융단폭격을 가하는 광경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오로지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이 마치 대통령을 가장 위하는 것처럼 고고한 척하는 행태는 친윤을 위장한 비겁한 반윤” “공직을 자기 정치에 이용한 행태는 대통령을 기만한 것”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 이 모든 말은 결국 ‘친윤도 아닌 주제에 감히 당대표가 되려 하다니’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렸다. “죽었다 깨어나도 반윤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나 전 의원은 서약성 멘트를 날렸지만, 반윤이 되지 않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경원은 애당초 ‘친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경원 맹폭의 주인공이 윤핵관의 핵심인 장제원 의원이었다는 사실은 이 장면이 나오는 무대의 조명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마침 한 언론인이 쓴 칼럼에 이런 혹평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 초기 달라붙지 않았더라면 중앙 일간지 칼럼에서 이름 한 번 거론될 일이 없었을 그런 인물이다. 별다른 개인적 매력 자본도, 감동적 인생 스토리도, 별다른 의정활동 업적도, 대(對)문재인 정권 투쟁 공적도 없는, 보수 텃밭 금수저 의원 중 한 명에 불과했다.”(동아일보 이기홍 칼럼, ‘당(黨) 장악이라는 자해극’) 당사자가 들으면 무척 화가 날 얘기겠지만, 대표 윤핵관이 되려면 이 정도 불편한 얘기는 감수해야 할 일이다. 굳이 이 자리에서 나경원을 편들 이유는 없지만, ‘그러면 윤핵관들의 정치는 나경원의 정치보다 나은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사실 윤핵관들의 대부분은 지난 시대와 함께 흘러갔어야 할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과거 보수정권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들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의 철학 같은 것을 전해줄 능력이나 의지 같은 것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옳았지만, 가깝고 편한 사람들을 우선하는 윤 대통령의 고집은 그들을 일약 윤핵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비극은 새로움을 찾을 생각이 없었던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의 퇴행 용어 ‘진박 감별사’ 다시 등장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목이 아프도록 외쳐왔던 안철수 의원도 ‘서자’ 취급을 당하는 광경을 보노라면 ‘나경원식 자기 정치’가 해임의 진짜 이유였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안철수야말로 후보 단일화까지 하며 자기 정치를 버렸던 인물 아닌가. 그런 안철수마저 내내 ‘핵관’이 아닌 ‘주관’(주변 관계자) 위치를 맴도는 것을 보면 결국 ‘원조 친윤’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친윤이 아니면 출마를 봉쇄당하거나 괄시받는 전당대회가 되었다. 굳이 친윤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유연한 리더십으로 호흡을 맞춰가면 된다는 통 큰 리더십을 생각할 법도 하건만, 윤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반윤에는 어울리지도 않을 나경원 같은 정치인이 ‘반윤의 우두머리’ 소리를 듣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윤핵관이 반윤을 확장시켜주는 아이러니가 되었다. 지금 친윤이 미는 당대표 후보는 김기현 의원이다. 그동안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저조했던 그였지만, 친윤 표심의 결집에 따라 선두로 올라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김기현 대 안철수’ 양자 구도가 되거나 결선투표까지 갈 경우 당선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조사 결과들도 함께 나온다. ‘친윤 대 비윤’의 대결 구도가 돼버려 비윤 진영 표의 결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치러지는 여당 전당대회가 ‘친윤 대 비윤’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범친윤 끼리의 경쟁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전당대회를 치르는 것이 집권 초반기 여당의 모습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친윤이냐 아니냐 하며 정치적 혈통부터 따지는 해괴한 일들이 이어지면서 비윤을 현실 속의 세력으로 키워버린 것이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개되는 ‘친윤 정당’ 만들기 시도는 퇴행적이다. 거기에는 낡은 인연과 연줄만 있을 뿐 집권세력에게 부여된 소명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꿈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자기들 시대인 줄 아느냐는 소리를 듣기에 딱 좋은 정치인들이 무대 위의 주연이 되는 장면은 새로움을 갈구하는 국민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나.” 장제원 의원이 자신을 비판하자 나경원 전 의원이 반격하면서 했던 말이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핵관’들을 가리켜 “진박 감별사들보다 더 심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진박 감별사’란 말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 경쟁을 벌이던 새누리당 친박들의 행태를 야유하는 조어였다. 실제로 당시 조원진 원내수석 부대표는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다니며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릴 수 있다. 나 조원진이 가는 곳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다”라며 ‘진박 감별사’를 자처했다. 그 코미디 같은 용어가 2023년 정치판에 다시 등장했다. 명색이 집권여당의 앞길을 좌우하는 전당대회다. 그런데 쟁점이라고는 오로지 ‘그가 친윤인가, 아닌가’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도, 국민의힘이 어떤 정당으로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도 없다. 확장을 해도 모자랄 판에 뺄셈의 정치를 하고 있다. 친윤이면 미덕이고 그 혈통이 아니면 찬밥이 되는 전당대회.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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