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바다가 되어》ㅣ고상만 지음ㅣ크루 펴냄ㅣ248쪽ㅣ14,800원
《광장의 오염》 저자 제임스 호건은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닥치고 있는 대재앙인데도 빙하가 녹아 서식지를 잃어가는 북극곰의 문제로 본질을 왜곡해 쟁점을 흐림으로써 광장의 민주적 토의를 오염시키는 세력이 있음’을 지적한다.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해 말은 무성한데 구체적이고 시급한 대책과 실행이 지지부진한 이유다. 호건은 또 ‘기후변화문제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 중앙집권적 해결이 어렵다. 문제해결은 기후변화가 개개인에게 구체적 위협과 타격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각성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상만의 동화 《너의 바다가 되어》는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돌고래 ‘아토’의 입장에서 ‘돌고래 쇼’를 바라보는 이야기다. 고상만은 오랫동안 인권활동가로 지내왔는데 그 반경이 동물권으로 확장된 것이다. 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주제를 다룬 자기계발서가 낙양의 지가를 춤추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돌고래 쇼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조련사가 돌고래 입에 슬쩍 슬쩍 넣어주는 먹이임을 안다. 돌고래를 적당히 굶긴 후 조련사가 원하는 몸짓을 하면 먹이를 하나씩 줌으로써 돌고래를 세뇌시킨 결과일 뿐 돌고래가 조련사의 칭찬이나 인간의 박수를 인식해 신이 나서 그런 몸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행여나 돌고래가 지능이 뛰어나 그런 몸짓이 가능하다는 말은 광장을 오염시키는 요설(妖說)이다. 먹이 통제로 동물을 길들여 인간을 위한 쇼를 하도록 시키는 것이 정의로운지 토의가 필요하다.
역사의 진보는 인류 보편적 의식이 진보하는 것이다. 1906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납치당한 흑인 청년 오타 벵가는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 오랑우탄 무리와 함께 ‘전시’당했다. 심지어 1958년 벨기에 만국박람회에서도 이런 일은 있었다. 2020년 브롱크스 동물원과 야생동물보호협회는 114년 만에 고(故) 오타 벵가에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가장 최근에는 강원도 춘천 문학인 박제영이 《안녕, 오타 벵가》 시집을 내 그를 추모했다.
《너의 바다가 되어》는 심장병을 앓다 죽음을 맞이하는 딸(종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빠(오진수)가 조련사(은정)와 함께 동물원에 갇힌 아기 돌고래(아토)를 몰래 꺼내어 바다에 풀어주는 ‘불법’을 저지르는 사연으로 ‘동물권’을 이야기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계란은 닭의 사육환경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자연에서 방목하는 닭이 낳은 계란이 1등급이다. 이제 곧 개고기 식용 금지법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인권을 뛰어넘는 동물권의 범주가 시나브로 넓어지고 있다. 이제 돌고래 쇼나 원숭이 쇼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갇힌 모든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날도 오게 될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윤리적 예우는 물론 식용 동물의 사육환경도 갈수록 진보할 것이다. 《너의 바다가 되어》는 그런 진보의 파도를 일으키는, 작지만 힘 있는 개인적 각성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