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 문화, 남성 우월주의, 그리고 언론…아미에 의해 흔들리는 ‘舊권력’
흔들린 권력① 서구 중심 문화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아시아는 할리우드 영화와 영국 팝에 열광하는 서구 문화의 수용지였다”고 했다. 특히 유럽의 정치학자들은 비틀스, 롤링스톤스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 음악에 대해 “문화적 슈퍼파워(The cultural superpower)”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한때 서구의 콘텐츠는 곧 문화 권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다르다. BTS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한 지난해 6월, CNN은 ‘어떻게 BTS가 미국을 무너뜨렸나’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냈다. 이를 통해 CNN은 “BTS가 이룬 성취는 어쩌면 비틀스가 이룬 것보다 더 큰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그 배경에 아미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다는 데는 사실상 이견이 없다. 이 와중에 서구 언론은 BTS의 성공을 K팝의 성공으로 치환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이는 “BTS: K팝의 브랜딩 머신”(워싱턴포스트), “BTS부터 블랙핑크까지: K팝은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스카이뉴스), “BTS와 K팝 아트의 탄생”(파이낸셜타임스) 등 기사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연구자 이지행 박사는 시사저널에 “BTS를 K팝으로 묶으려는 태도는 그 자체를 주류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문화적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에서 드레이크(미국 랩퍼)의 음악을 논할 때 ‘미국 힙합’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영향력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 BTS를 K팝으로 뭉뚱그리는 건 이중 잣대”라고 비판했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K팝이 국제적 인기를 얻자 서구 언론은 그것이 다른 팝들에 비해 정통적이지 않고 인위적이며, 질이 낮다고 미묘하게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미는 저항했다. 이지행 박사는 “BTS 팬들은 미디어의 ‘K팝 보이밴드’란 수식어를 계속해서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미국 채널 MTV의 지난해 음악 시상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MTV가 ‘베스트 K팝’ 부문을 신설해 BTS를 후보군에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미는 “BTS에게 ‘올해의 아티스트’ 등 주요 부문 상을 주지 않으려는 명백한 차별행위”라고 비판했다. 해외 아미는 아예 다른 K팝 팬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우리는 K팝이 아니라 BTS만 좋아한다”고 2018년 대내외에 밝힌 것이다. 그 선포 날짜인 10월14일은 ‘아미 독립일(ARMY Independence Day)’로 불린다. 서구 문화권에서 BTS의 존재감은 그들이 받은 국제 음악상에서 드러난다. 그 바탕엔 늘 아미의 화력이 있었다. 2018년 1월 미국 최대 라디오 방송사 아이하트라디오는 ‘베스트 보이밴드’를 뽑기 위한 투표를 시작했다. 투표는 홈페이지에서 직접 해도 되지만, SNS에 아티스트 이름을 해시태그로 올리는 방식도 허용됐다. 이때부터 아미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BTS에 대한 투표수가 하루 1000만 표 이상 집계되는 날도 있었다. 그 결과 BTS는 미국의 유명 라틴팝 그룹 CNCO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상은 아미가 만들어준 것”이란 BTS의 수상 소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일각에선 팬들이 참여하는 투표가 순위 부풀리기와 편법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와 팬덤이 음악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반론도 존재한다. 이를 고려해 빌보드는 2011년부터 SNS 투표 결과를 반영한 ‘톱 소셜 아티스트’를 뽑고 있다. 이 부문은 지금까지 세계적인 팬층을 거느린 저스틴 비버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2017년 BTS가 탈환했고, 이후 BTS는 해당 부문에서 3년 연속 수상했다.흔들린 권력② 남성 우월주의
아미가 흔들고 있는 또 다른 권력 구조는 마초이즘, 즉 남성 우월주의다. 기자는 2013년 호주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현지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 아시아에서 한국 아이돌그룹 빅뱅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외모를 보니 다들 너무 걸리시(girlish·여자아이 같은)하다. 빅뱅은 게이그룹인가?” BTS도 비슷한 오해를 받은 바 있다. 예쁘장한 외모와 화려한 의상, 멤버들 간의 자연스러운 스킨십 등이 그 이유다. 실제 영미권 SNS에는 K팝을 비틀어 ‘게이팝’이란 조롱이 올라오기도 한다. 구독자 600여만 명의 미국 유튜버 에단 클레인은 지난해 12월 “다 큰 남성과 소녀들이 이 작은 K팝 소년들에게 아첨하는 꼴이 어떻게 서구에서 일어날 수 있나?”라고 비꼬았다. 반면 변화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2017년 12월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는 “BTS의 진짜 빅팬이 됐다. 나는 남자다”란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팬보이(fanboy·젊은 남성팬) 여기도 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남자이니 걱정 마라” 등 100여 개의 동조 댓글이 달렸다. 레딧은 남성 이용자가 70% 이상인 보수 성향 커뮤니티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아밍아웃(아미+커밍아웃)’이 당당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소비자 연구업체 브랜드워치는 지난해 1월 BTS의 트위터 팔로워를 성별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22%가 남성이라는 걸 발견했다. 당시 BTS 총 팔로워 수(1800만 명)를 감안하면 약 400만 명이 남성인 셈이다. 부산의 공기업에 근무하는 남성 김지환 주임(37)은 소위 BTS ‘늦덕(늦게 팬이 된 사람)’이다. 2018년 초 BTS의 노래와 가사에 매료돼 팬이 됐다고 한다. 김 주임은 “BTS 팬임을 먼저 밝히진 않지만 누가 물어보면 전혀 숨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쪽에선 BTS 외모만 보고 부정적 시선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이는 BTS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문화젠더연구회 세미나에서 “BTS가 탈(脫)마초적 이미지를 모든 K팝 팬에게 확대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흔들린 권력③ 언론
아미는 언론 권력을 무릎 꿇리기도 했다. 이지행 박사는 저서 《BTS와 아미컬처》를 통해 “언론과 팬덤 관계의 재배치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2018년 이후 BTS가 눈에 띄는 상업적 성과를 내고 미국 언론도 이들을 함부로 다루기 어려워지자, 팬들은 기자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할 것을 요구했다. (중략) 팬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제대로 된 조사와 공부한 흔적이 엿보이는 기사엔 트래픽을 높여주고, 그렇지 않은 기사엔 직접 언론사나 해당 기자를 찾아 논쟁을 벌인다.” 지난해 12월 손석희 JTBC 사장은 BTS와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사과했다. 앞서 “BTS가 소속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후속 취재 결과 오보로 드러난 것이다. 그 사이엔 아미의 줄기찬 사과 요구가 있었다. 아미는 JTBC의 반응이 없자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JTBC 광고주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강경 대응하기도 했다. 주류 언론이 외면했던 BTS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데에도 아미의 역할이 컸다. 김주옥 미국 텍사스 A&M 국제대학 교수는 지난해 12월 문화젠더연구회 세미나에서 “BTS의 국내 미디어 노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속사는 해외 팬들과 연결망을 구축했다”면서 “BTS 현상은 미디어 산업에서 스타 팬덤 가치를 증명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언론들 사이에선 뒤늦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지 롤링스톤의 기고가 조슈아 칼릭스토는 “주류 언론이 BTS를 무시하는 건 분명 무책임한 짓”이라며 “BTS를 자세히 이해하지 못한 언론의 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하이틴 잡지 ‘J-14 매거진’의 기자 리암 맥이완은 BTS를 더 깊게 알기 위해 아미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사회운동가 제레미 하이먼즈는 BTS를 신권력(New Power)으로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아미를 신권력의 실행 통로로 해석했다. 이지영 세종대 교수는 BTS와 아미가 뭉친 다양체가 기존 권력 구조를 해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2017년 5월 BTS가 빌보드 뮤직 어워드 후보에 올랐을 때, 몇백 표가 북한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방탄배낭’은 아미를 알아채는 암호란 얘기도 나돈다. 아미가 바꿔놓을 권력 지도엔 북한도 포함되는 걸까.“흔한 메시지…그래도 행복한걸요”
김설진씨(34)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대하자 BTS 사진이 떴다. 누가 봐도 아미였다. 시사저널은 2월19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설진씨를 포함해 아미 4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지윤씨(29)와 김샛별(32)·한별(27)씨 자매가 함께했다. 모두 서로 초면이었다. 그럼에도 아미라는 공통점으로 금세 대화의 꽃을 피웠다. BTS에 관해 기자가 알고 싶은 부분이 이들의 자유로운 대화 속에 모두 녹아 있었다.아미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김설진(이하 설진) 계기보다 이유를 말하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저는 멤버들 간의 유대감에 진심으로 반했어요.
김한별(이하 한별) 맞아요. 한국 사회 특유의 서열 짓기, 그런 게 없어요.
유대감을 어떻게 확인하죠.
한별 빅히트(BTS 소속사)가 떡밥(이야깃거리)을 되게 많이 던져요. 유튜브에 멤버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올리는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확인돼요.
설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상을 업로드하고 있어요. 누적된 영상을 보다 보면 끈끈한 동료애를 엿볼 수 있죠. 솔직히 방시혁(빅히트 대표)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건 대단하다고 봐요. 같이 성장해 나가는 느낌이랄까.
한별 방탄이 사는 세계가 있어요. 그 속에 청춘의 위태로움과 아픔, 성장통이 다 녹아 있어요. 이제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방탄 앨범명)까지.
설진 처음부터 로드맵을 그리고 시작한 거죠. 방탄만의 세계관이 있어요. 일명 ‘BU(Bangtan Universe)’라고. 진짜 콘텐츠 기획이 미친 것 같아요.
이지윤(이하 지윤) 뮤직비디오와 가사 하나하나에 다 뜻이 숨겨져 있어요. 그걸 해석하느라 따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정도예요.
BTS의 음악성을 폄하하는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샛별(이하 샛별) 음악성은 주관적 영역 아닌가요. 판단 기준을 잘 모르겠어요. 대신 이런 건 있어요. 방탄은 새로운 장르를 계속 시도한다는 것. 내놓는 앨범마다 장르가 달라요.
설진 다른 가수들은 인기를 끌 만한 패턴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애들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음악이란 본연에 충실하죠.
한별 근데 또 다 잘해(웃음). 이번에 공개한 《블랙스완》 노래에선 현대무용도 시도했어요.
지윤 진짜 대박!
설진 음악성을 음악에 대한 가수의 태도로 판단한다면, 방탄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지도 모르죠.
BTS가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샛별 지금도 이미 완벽한데요. 아, 군대 문제는 남아 있네요.
지윤 그래도 멤버들 모두 곡을 만들 줄 아니까 각자 작곡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샛별 근데 군대는 아미들 사이에서 ‘언금(언급 금지)’이에요.
지윤 우리는 방탄의 병역 의무를 인정하는데, 언론이 더 난리예요. 국위 선양했으니 면제해 줘야 한다는 둥… 왜 불안감을 조장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미들 사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요.
한별 악성 팬들이 있죠. 특정 멤버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는 식으로.
샛별 관크홈! 관심병이 극에 달한 홈마(아이돌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란 뜻이에요. 방탄의 비공식 스케줄까지 쫓아다니면서 괴롭히죠. 이런 사람들이 찍은 사진은 소비를 해 주면 안 돼요.
설진 우리 애들 휴가 때는 밖에서 봐도 모른 척해요. 아미의 문화이자 무언의 약속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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