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본 BTS 융 분석가들 세계관과 일치
‘페르소나’ ‘소우주’ 심리학 용어 노래 제목으로
하지만 세상에 대한 BTS의 비판적 메시지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거대 담론을 지양하고 오히려 ‘작은 것들을 위한 시’나 ‘make it right’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담기에 오히려 더 공통적 심성에 닿을 수 있는 울림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영혼의 지도》라는 미국의 융 분석가의 책을 앨범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사회생활을 위해 써야 하는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 거대 우주를 담고 있는 소우주(마이크로코스모스) 같은 심리학 용어들까지 노래 제목으로 뽑아준 데다, 개인적 성찰이 곧 우주에 대한 성찰과 통한다는 융 분석가들의 세계관과 일치해 융 분석심리학자인 필자로서는 많이 고맙다. 자살률이 높은 한국에서 ‘혼자가 되어야,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세상의 비판에 휘둘리지 말고, 상처받지 말라’ ‘우울의 심연으로 빠진 사람은 당신 혼자가 아니다’ 같은 따뜻한 위로의 가사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정신과 의사의 재미없는 건강 캠페인 따위는 따라가지 못할 강력한 영향력을 너무 멋지게 쓰고 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직접적 메시지, 존 바에즈의 너무 솔직한 정치 노선,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에 묻은 상업성과는 사뭇 다르게, 자신들의 뜻을 요즘 식으로 멋지게 담아주는 것 같다. 사회를 좀 더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다는 꿈을 예술 자체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 예술론을 주장하며, 재산을 버려가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예술론을 주장했던 영국의 존 러스킨보다는 개인의 세계에 침잠해 독자들에게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던 프랑스의 마르셀 프루스트 쪽에 더 가깝다 할까. 특히 대중을 가르치거나 인도한다는 이른바 주류의 허위의식과 이중성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나도 아프니 우리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미는 메시지는 따뜻하게 기댈 언덕처럼 느껴질 것 같다. BTS의 회의와 불안이 역설적으로 평범한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니, 절망의 와중에 황홀함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란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방시혁 대표는 “음악을 홀대하고, 소비하는 주류 문화계와 사회에 대한 분노”를 말한 바 있지만, BTS의 음악은 그 단계를 이미 많이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BTS 음악에는 21세기의 특징인 융합과 수렴의 철학도 담겨 있다. 힙합이다, 랩이다, 아이돌 댄스 음악이다, 팝이다, 라고 각자 보이는 대로 해석할 정도로 그들의 음악은 한 장르로 설명하기 힘들다. 국악의 추임새, 현대 클래식 음악과 무용, 미술까지 무한정 지평을 넓히고 있으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언젠가 셰익스피어나 모차르트처럼 세계가 기억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거대 자본 미디어가 아닌 팬들이 스타를 만들어가는 메타 미디어들을 통해 그들이 성장해 온 과정은 ‘소비자인 동시에 제작자가 되는’ 시대의 집단지성도 충분히 현명할 수 있음을 확인해 준다. 다만 홍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예능 프로그램, 혹은 음악을 빙자한 토크쇼에서 소비되다 버려지곤 했던 기존 관행과는 다른 행보를 걸어왔기 때문인지, 그동안 주류 미디어에서 접하는 게 쉽지 않았다. 특이한 아이돌계의 인디그룹 정도라 간주했었을까. 이제는 또 아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에는 무게감이 너무 커져서 다른 세대에게는 여전히 낯선 것 같아 많이 아쉽다.인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영웅을 포용하지 못하는 속 좁은 이들이 혹시 BTS에 대한 흠집을 내려 해도, 부디 상처받지 말고 끝까지 가길 기원해 본다. 커트 코베인이나 짐 모리슨처럼 헛짓하지 말고, 리치 밸런스처럼 위험한 일정으로 허무한 일 당하지 말고, 송해·이미자·에릭 클랩튼·밥 딜런처럼 멤버 모두 손주들 재롱떠는 것을 보며 팬클럽 아미와 함께 오순도순 곱게 늙어가길. 소소한 삶의 즐거움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인생으로 보여주길. 앞으로도 계속 겸손하게 자신들의 음악과 삶에 대해 묻고, 의심하고, 성찰한다면 나라와 인종,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팬을 끌어당기는 힘이 더욱 커질 것 같다. ‘아름다움’이 ‘악’을 이길 수 있는 그때까지,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인들이 조금씩, 그러나 힘 있게 세상을 바꾸어 감에 아낌없이 박수를 치고 싶다. 그들의 가사를 조금 비틀어 보자면, 젊은이의 ‘피와 땀과 눈물’이 기성세대가 고사시킨 사회에 비처럼 이슬처럼 내려와 다시 생명을 배태하게 할 것이다. 마르쿠제를 인용하지 않아도, 성공한 예술은 신비한 방식으로, 지루한 현실과 맞서기 때문에 도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는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부박한 현실참여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래서 예술이다. 방탄소년단의 완성도 높은 음악, 완벽한 안무, 눈부신 무대 디자인들은 계속 우리의 예측을 비껴가며 새로운 영역으로 달려가고 있다. 메마른 우물 같은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생존 그 자체에 급급해 숨죽이며 재능과 열정을 낭비하며 살았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BTS 같은 멋진 젊은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취해 내는 21세기 한국 문화의 업적들이 부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BTS 혁명] 특집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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