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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가 본 BTS…음악과 사회의 만남

방탄소년단(BTS) 열풍이 미국과 유럽부터 남미와 아랍까지 세계를 휩쓸고 있다. ‘방탄 현상’이라 불릴 만하다. 왜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을까? 많은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이 과거의 아이돌과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현 시대에 인기를 끄는 힙합 음악의 조류와 비슷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것은 무엇일까? 힙합의 시대 이전에 블루스와 재즈의 전성기가 있었다. 1940년대 독일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대중음악이 상품화되면서 사회의 현상유지에 기능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예견은 맞지 않았다. 재즈의 뒤를 이은 로큰롤은 명백하게 진정한 즉흥성과 역동성의 음악으로 저항 문화를 표현했다. 음악에 사회를 향한 ‘단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스는 젊음, 반항, 혁명을 노래 가사에 담았다. 1960년대 반전운동의 소용돌이에서 밥 딜런이 저항가수이자 음유시인으로 불린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로큰롤의 시대가 저물고 힙합이 대중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힙(hip)과 합(hop)은 튀는, 생기 있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1980년대 뉴욕의 흑인 음악과 히스패닉 음악에서 시작한 힙합은 가난한 이민자 문화였는데 정보기술 혁명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졌다. 영어가 지배하는 위계질서를 깨고 방탄소년단이 미국에 상륙한 것은 미국 사회가 다인종·다민족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방탄 현상이 지구화라는 시대의 징후를 표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2018년 9월3일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첫 콘서트 개최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팬클럽 아미 회원들이 방탄소년단 멤버 입국 시 질서 유지를 위한 인간띠를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3일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첫 콘서트 개최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팬클럽 아미 회원들이 방탄소년단 멤버 입국 시 질서 유지를 위한 인간띠를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은’ 시대정신을 노래하다

1930년대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예술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경이로움 또는 신비감을 아우라(aura)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에게서 아우라를 발견한다. 연예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과거의 아이돌이 노래하는 기계나 마네킹처럼 보였다면, 방탄소년단은 살아 있는 예술가다. 그들은 10대가 쓰는 10대 이야기라는 사실을 내세운다. 리더인 RM 이외에도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 등 모든 멤버들은 스스로 작사·작곡을 주도한다. 방탄소년단은 1960년대 로큰롤 혁명처럼 시대정신을 표현한다. 보통의 아이돌이 개인에 집중하는 데 비해, 방탄소년단은 사회문제를 표현한다. 재미있고 행복한 음악보다는 젊은이들이 겪는 괴롭고 불행한 현실을 표현한다. 방탄소년단은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등 꿈, 반항, 사랑을 노래한 앨범을 잇달아 발표했다. ‘Fire(불타오르네)’는 프로이트의 부친 살해 욕망처럼 기성세대의 가치를 불태우자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에는 혁명, 미래, 대안의 거대 서사가 담겨 있지는 않다. 방탄소년단은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보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겠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유니세프의 범세계적 아동 및 청소년 폭력 근절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방탄소년단의 ‘작은’ 시대정신은 노래의 가사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재현된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받았듯이,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뮤직비디오는 마법의 효과를 가진다. 방탄소년단은 리듬과 가사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힙합 댄스는 스트리트 댄스에서 유래했지만 방탄소년단의 안무는 매우 전문적이다. 칼처럼 날카롭고 감각적인 군무는 압권이다. 특정 이미지가 반복, 변형 재현되는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창의적인 영상 미학으로 간주된다. 《BTS 예술혁명》을 출간한 이지영 박사는 들뢰즈의 개념을 빌려 가지가 흙에 닿아서 뿌리로 변화하는 식물을 가리키는 ‘리좀(Rhizome)’이라는 표현을 썼다.
방탄소년단 트위터
방탄소년단 트위터

새로운 시대적 징후로 해석돼야

1960년대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가 메시지”라고 예언했다. 방탄소년단은 온라인 방송과 소셜 미디어로 소통한다. 인터넷 시대에 맞는 혁명적 전략이다. 음반회사의 저작권 계약 없이 누구나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린다. 팬은 음반, 방송, 콘서트 대신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듣는다. 메이저 기획사와 달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방탄소년단이 자유롭게 트위터를 사용하도록 했다. 멤버들의 사소한 일상과 음악, 팬에 관한 생각도 직접 전달된다. 방탄소년단이 스스로 콘텐츠 생태계이자 플랫폼이 된다. 방탄소년단은 ‘아미(Army)’라는 거대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로 접속한 팬들은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처럼 방탄소년단의 음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방탄과 아미의 관계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아니다. 방탄이 생산하는 수평적 판타지가 팬과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일으킨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는 카오스(Chaos) 이론이 말한 현상이 일어난다. 아미는 단순히 음악을 청취하고 콘서트에 가는 소극적 팬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현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역동적 팬덤을 형성한다.  대중문화의 중요한 현상이 되고 있는 팬덤은 과거의 집단주의, 개인주의와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1893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분업론》에서 전통 농경사회의 마을, 친족, 종교가 붕괴되지만 직업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적 연대와 통합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거대한 관료제, 정당, 노동조합, 핵가족, 이웃 공동체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공동체의 소속감을 갈망한다. 새로운 공동체는 혈연도 이익도 아닌, 뒤르켐의 예상과 달리 감정에 기반한 작은 공동체, 즉 부족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마페졸리는 오늘날 ‘부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본다. 인류 대부분을 연결하는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실현한 새로운 기술 환경을 제공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부족이 탄생하는 이유는 서로 호혜적 연대를 맺으려는 사람들의 본능과 관습에서 기인한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 상호 연결성의 진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자유시장에서 분리되고 파편화된 개인들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사회적 인간의 욕구를 충족한다. 계급, 정당, 국가가 사라지는 자리에 새로운 작은 공동체가 자리를 잡는다. 영화 《매트릭스》가 포스트모던 현상의 상징이었듯이 방탄소년단과 아미도 새로운 시대적 징후로 해석돼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돌의 전 세계적 인기가 K팝의 성공 사례이며, 드라마에 이어 한류의 확산이라고 본다. 반면에 존 리 버클리대 사회학 교수는 《케이팝》에서 K팝은 단지 미국의 상업문화를 추종하며 연예산업이 제조한 문화상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한류의 성공 사례라고만 볼 수도 없고, 단순하게 미국 문화의 아류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방탄소년단은 로컬 문화와 글로벌 문화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예술혁명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힙합과 방탄소년단이 어떤 운명을 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중음악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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