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이하드 4》로 그린 통신 마비 재난 가상 시나리오
21세기 현대 사회를 우리는 ‘초(招)연결 사회’라고 부릅니다. 사람과 사물, 모든 데이터와 시공간이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 연결된 사회를 가리킵니다. 이 같은 기술의 발전은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마냥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보안이나 백업(back-up)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균열 한 번에 모든 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로 우리 사회는 그 위험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지점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려 합니다. 만약 어떠한 이유로 국가 통신망 전체가 마비된다면, 우리사회는 어떤 혼란을 겪을까요. 이번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피해를 봤지만, 그 피해가 서울 전역이나 전국으로 확대됐다면 어땠을까요. 통신 마비를 다룬 영화와 국립재난연구소의 재난 리포트를 통해 재난 가상 시나리오를 그려봤습니다.
컴퓨터 하나로 국가 함락시킨 《다이하드 4》 속 테러조직
# 신호등이 멈췄다. 교차로에선 차들이 신호를 어기고 돌진해 서로 충돌했다. 전국 도로가 마비되고 통신은 먹통이 됐다.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하는데 응급차는 출동하지 못했다. 경찰서 앞에 수만 명이 모여들었지만 공무원이 할 수 있는 건 “대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그사이 TV에선 “국가는 아무것도 돕지 못한다”는 자막과 함께 백악관이 폭발하는 장면이 송출됐다.
“블랙아웃 오고 통신 마비되면 전쟁 방불케 할 것”
# 대정전으로 국가 전체가 암흑 속에 빠졌다. 모든 게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는 사회에서 전기가 나가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교통은 물론 정수장도 마비돼 식수를 구할 수 없었고 환자에게 혈액도 공급하지 못했다. 모든 시설이 멈추고 연락도 두절된 사이 사람들은 암흑 속에서 물건을 약탈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지난 10월 발간한 《Future Safety Issue - 올스톱! 국가전력기능마비》 속 내용입니다. 매년 두 번씩 발간되는 이 보고서는 미래에 닥칠 위험이나 재난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선 대정전으로 모든 게 마비된 상황을 가정했습니다. 특히 각종 산업이 디지털화한 초연결 사회에선 정전이 과거보다 훨씬 큰 파급효과를 부른다는 걸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번 KT 화재 때처럼 통신망이 화재 등 직접적 원인으로 망가지지 않더라도, 초연결 사회에선 정전만으로 모든 통신이 두절되는 재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비서가 말을 듣지 않아 죽을 뻔 했다”
# 소설 작가인 코난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인공지능 비서 ‘진’은 코난의 라이프로그(life-log·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개인의 생활 전반의 기록을 수집하는 것)를 활용해 그의 수면 시간부터 자산, 식단까지 책임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난이 심한 복통을 느껴 자율주행차를 타고 병원에 가려 했지만 진이 먹통이었다. 혼자 운전을 해본 적이 없던 코난은 길 한복판에서 배를 잡고 쓰러졌다. 알고 보니 정전 때문에 실시간 교통상황데이터가 멈춰 도로 위 자율주행자동차와 개인비서 시스템까지 고장 난 거였다. 이날 이후로 진은 이따금씩 말을 듣지 않는다. 코난은 모든 것을 진에게 맡기는 게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진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 너무 컸기에 이대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