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 아파트는 정의롭다…21세기형 주거 공간으로 ‘왜’ 아파트는 각광받나
대한민국엔 아파트가 많다. 2017년 통계청 주택총조사 기준으로, 전국 1712만 호의 주택 가운데 아파트는 60%에 해당하는 1037만 호에 이르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아파트 비율이 서울(58%)보다 훨씬 높은 7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파트는 천박한 욕망의 상징, 이기적 집단의 결집체, 도시경관의 파괴자, 다양성을 파괴하고 획일적인 주거양식을 강요하는 원흉으로 간주되면서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파트로의 이주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더 좋은 아파트로의 이주를 꿈꾸고 있다. 한편으로는 욕하면서 한편으로는 간절히 원하는 그런 대상이 아파트인 것이다.
우리의 아파트는 모순으로 가득 찬 탐욕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할까? 그곳에 사는 거주자들은 일상을 불행하게 보내는 파편화된 개인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 더 근본적으로 아파트는 정의롭지 못한 존재인 것인가?
자신의 문제를 자체 공간서 해결한 아파트
이면도로라고 불리는 골목길에는 빼곡하게 자동차들이 주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주차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차량 소유주들은 너무 당연하게 도로에 주차를 한다. 주차난은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등장하고, 심지어 행정기관조차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을 만들어 약간의 부담으로 도로를 특정인이 점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 모두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재’다. 이런 공간의 사용은 부당하다.
이에 비해 아파트는 입주자들의 주차 수요를 어떻게든 자신의 울타리 내에서 꾸역꾸역 감당한다. 주차장이 부족해 2중, 3중 주차를 넘어서 테트리스 주차가 이뤄지는 곳도 있지만, 어쨌거나 대부분의 아파트는 입주자들의 부담으로 확보된 공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주차뿐만 아니라 녹지, 놀이터, 커뮤니티 시설, 심지어 폐기물 재활용까지 아파트 단지는 자신의 문제를 공공에 떠넘기지 않고 자신의 공간 속에서 해결하고 있다. 어떤 공간의 사용방식이 더 정의로울까?
통계를 살펴보면 아파트, 빌라·연립의 평균 거주면적은 77~80㎡로 비슷하다. 그렇지만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난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6년 6월을 기준으로 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5억6292만원, 연립은 2억5193만원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주차장, 적당한 녹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 등 많은 시설과 공간이 필요하다. 아파트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입주자의 부담으로 확보한 공간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 심지어 대형 아파트 단지의 경우 학교용지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단독주택이나 빌라·연립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이런 요소들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을 걷다 보면 최소한의 일조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집들만 빼곡할 뿐 적당한 녹지도, 놀이터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주거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을 스스로의 부담으로 해결하는 곳이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은 빌라·연립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각종 시설과 편의를 제공해야 할 지자체가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높은 아파트 비율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떻게 아파트에서는 이런 것이 가능할까? 용적률과 건폐율이 등장한다. 건폐율은 대지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이다. 100㎡의 대지에 60% 건폐율 건물이 있다고 하면 60㎡에는 건물이, 40㎡엔 녹지나 주차장 등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럼 아파트의 건폐율은 얼마일까? 단지마다 다르지만 대개 건폐율은 15% 미만이다. 전체 땅의 15%만을 사용하는 셈이다. 나머지 공간엔 녹지나 주차장,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빌라·연립의 경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0%다. 대부분의 면적을 건물이 차지하기 때문에 나머지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규모의 경제’가 더해진다. 1만㎡의 땅에 100㎡ 면적의 아파트 200호를 15% 건폐율로 건축한다면 25층짜리 아파트 4동(1동당 50가구)과 8500㎡의 주차 및 녹지 공간이 생겨난다. 이에 비해 같은 땅에 빌라·연립을 짓는다면 각각 100㎡ 면적의 땅에 2층짜리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각 필지별로 40㎡ 면적이 남아서 모두 합한다면 4000㎡ 면적을 확보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각 필지별로 분리돼 사용되기 때문에 약 2대의 주차장을 빼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 모이면 힘이 되고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파트다.
모이자, 혁명의 공간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이 넘치던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오스트리아 빈은 엄청난 주거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사회주의자들은 단순한 주택 건설이 아닌 개인의 삶과 사회적 활동이 균형을 이루는 공동체 형성을 위한 협동주택(cooperative house) 건설에 나섰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직접 삽과 망치를 들고 건설에 나섰다. 그런데 내 집이 아니라 도서관, 병원, 목욕탕, 교육시설, 운동 공간, 문화시설, 공동 작업장 등을 먼저 건설했다. 그 이후에 개인 주택을 만들어 입주했다. 왜 그랬을까? 사회화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저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호되는 아파트들은 하나같이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내세우고 있다. 피트니스센터·골프연습장·수영장 등 운동시설은 물론이고 어린이집·학습관·독서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조식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정신이 불타오르던 오스트리아 협동주택에서 추구하던 공동체가 대한민국의 아파트 대단지에서 구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대단지 아파트의 공동체가 집단이기주의를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일부의 비판처럼 고립화된 개인들이 무기력하게 존재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30년 전인 1978년 신문을 찾아보면 국회에서는 아파트 특혜분양을 질타하고, 정부는 당첨권 전매 시 양도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다.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다. ‘아파트 생활이 지옥처럼 답답해서 더 이상 못 살겠다. 시골 가서 이웃들과 살게 해 달라’고 조르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투신자살한 70세 노인의 기사도 눈에 들어온다.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제 아파트 생활을 지옥처럼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가, 세대가 적응하고 변화한 것이다.
아파트는 우리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이 됐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관념론적 비판보다는 아파트를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2018년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