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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처에 무지한 국제사회…역사적 사실·금기에 대한 경각심 가져야

최근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방탄소년단의 광복절 티셔츠, 나치 모자, ‘교실이데아’ 퍼포먼스 등에 대해 사과한 사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일단 사과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탄소년단이 국제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였고, 사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과로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참담한 일이다. 우리는 식민지배의 피해자다. 그것도 근대 제국주의 침략 사상 가장 가혹한 식민통치를 겪었다. 그 가해자인 일본이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침략 군국주의 세력의 뒤를 잇는 우익 혐한 세력이 피해자인 우리나라 가수를 겁박했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광복절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결국 방탄소년단 측이 사과하고 만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윽박지르고 피해자는 머리를 조아리는 참담한 모양새다.

일본이 광복절 티셔츠에 인쇄된 원자폭탄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원폭 티셔츠’라는 프레임을 짰다.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원자폭탄 맞은 걸 내세워 피해자 행세를 한다. 조선인을 징용해 원자폭탄을 맞게 하고, 심지어 원폭이 터진 자리의 청소까지 조선인에게 시킨 것에 대해선 사과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들의 원폭 피해만 부각시킨다. 이 프레임이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정당성을 얻었다.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는 비인도적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원폭 피해에 대한 동정의 시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수하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배를 겪었고, 원폭과 함께 일본이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다. 우리에겐 일본 패망과 조국 광복이 하나로 이어진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만은 일본이 맞은 원폭도 광복과 연관된 역사로 표현할 수 있고, 또 우리가 침략 가해자인 일본이 폭탄 맞은 것에 대해 동정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방탄소년단은 11월13~14일 일본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열고 30여 곡의 다채로운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연합뉴스


국제사회가 이러한 우리의 특수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입장이나 한국의 상처에 국제사회는 무지하다. 오히려 체계적인 홍보 활동으로 일본의 입장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일본은 방탄소년단의 광복 티셔츠를 ‘원폭 티셔츠’라 규정하면서 집요하게 공격했고, 그것이 국제사회의 반핵 대의명분과 맞아떨어져 서구권에서도 동조 움직임이 나타났다. 국내 매체들도 ‘원폭 티셔츠’ 프레임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심지어 서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단체까지 일본의 주장에 동조할 움직임을 보이자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사과를 하게 된 것이다. 사과는 하되 일본이 아닌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사과하는 형식을 취해 최악의 굴욕은 피했지만, 어쨌든 우리 광복절 티셔츠에 대해 일본의 압력으로 사과하게 된 현실이 기가 막힌다. 이번에 방탄소년단의 상황이 급속히 악화된 것엔 전범 이미지가 많이 작용했다. 방탄소년단이 과거 나치 문양이 들어간 모자를 쓰고, 유사 나치 깃발로 공연 퍼포먼스를 했다며 미국의 유대인 단체가 사과를 요구했다. 이건 국제적으로 크게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어서 무조건 사과로 사태 진행을 끊어내야 했다. 여기까지 일이 커졌는데도 당시 국내 언론은 ‘일본이 방탄소년단에 보복하면서 자살골을 넣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끄떡없다’는 식의 안이한 보도만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 기민하게 사과를 결단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판단이 현명했다.


우리만 사과하는 전범 이미지

그런데 여기에도 유감스러운 부분이 있다. 문제의 모자는 2014년에 잡지 화보 촬영 중 제작진이 방탄소년단에게 여러 가지 옷과 소품을 착용시키는 가운데 누군가가 씌워줬다고 한다. 원래 화보 촬영 중엔 제작진이 걸쳐주는 대로 입고 찍는 것이고, 당시엔 방탄소년단이 신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사진이 공개된 후 문제를 인식하고 그때 이미 사과하고 사진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 혐한 세력이 미국 유대인 단체에 이것을 제보했고, 유대인 단체는 즉각 사과를 요구했다.

유대인 단체는 모자 사건이 과거에 이미 사과하고 끝난 일이라는 걸 조금만 조사하면 알 수 있는데도 무조건 문제로 삼았다. ‘나치 깃발 공연’은 더 황당하다. 바로 서태지와 함께한 ‘교실 이데아’ 공연 이미지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것도 역시 조금만 조사하면 나치와 전혀 상관없는 공연이며, 전체주의적 억압을 비판하는 내용이란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혐한 선동을 일삼는 일본 우익이 군국주의 세력의 후신으로 나치와 통한다. 그런데도 유대인 단체는 방탄소년단만 비판했다.

자기들의 상처, 자기들 사과받는 것만 중요하다는 태도다. 한국의 상처, 한국의 사정엔 무관심이다.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사과하지만, 서양인들은 욱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우리의 항의에도 무신경하게 대응한다.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이 한국에 가하는 2차 가해에도 국제사회는 무관심하다. 여기에 일본의 치밀한 홍보까지 작동한다. 우리도 홍보를 통해 우리 입장을 알려 나가야 한다. 일본이 과거 침략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여전히 전범 상징물을 사용하며, 한국 연예인이 일본의 침략범죄를 지적하면 보복을 일삼는다는 점 말이다. 독일은 다른 나라가 나치 패망을 아무리 기뻐하고 나치를 조롱해도 그것을 반독일 활동이라고 하지 않는데, 일본은 한류스타가 구 일본제국의 문제를 지적하면 반일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현대 일본이 전범인 옛 일본제국을 계승한다는 의미다. 이런 문제도 알려 나가야 한다.

우리도 보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핵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는 어쨌든 국제적·인도적 대의명분이 없다. 아무리 우리가 식민 피해국이라고 해도 이런 표현은 조심해야 한다. 자칫 이번처럼 빌미를 주고 명분에서 밀릴 수 있다. 전범 이미지에 경각심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류를 전 세계로 내보내겠다면서 국제적 금기인 전범 이미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정말 놀랍다. 누가 씌워줬든 나치 모자가 촬영 현장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걸 찍은 후 후반 작업에서 걸러내지 못한 것도 황당하다. 나치 문양은 유사하기만 해도 문제가 될 정도로 서구에서 민감한 사안인데, 관련 스태프들 모두가 ‘무개념’이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대중문화 업계의 전범 이미지 관련 무개념은 그전부터 계속 지적됐던 부분이다. 나치 관련 문양에 대한 무지도 문제지만, 우리가 침략 피해를 당한 일본 욱일기 이미지에 대해서도 경각심이 부족하다. 그동안 터진 욱일기 사고만 여러 건이다. 이런 금기, 역사, 국제적 명분 등에 대해 철저히 학습해야 불의의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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