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따로 직장 따로’ 겸직 권한남용 우려…60명은 신고누락 의심, 윤리문제 ‘도마 위’
전북지역 지방의원 중 절반 이상이 다른 직업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도입된 유급제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60명은 겸직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지방의원의 윤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북지역 지방의원 4명 가운데 1명 꼴로 겸직신고를 하지 않거나 누락한 것이다. 이 중 14명은 부당 겸직한 사실로 사임을 권고 당했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의정비 ‘줄 인상’ 추진 움직임 속, 일부 지방의원 사직권고에도 ‘버티기’ 빈축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11월 26일 발표한 ‘전북지역 지방의원 겸직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북도의회와 14개 시·군 의회 임기가 시작된 지난 7월, 의원 236명 중 119명이 겸직을 신고했다. 하지만 겸직신고를 하지 않거나 일부 직함을 누락한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이 60명(25.4%), 84개 직에 이른다. 이는 시민연대가 의원 프로필에 적힌 직함과 실제를 직접 비교한 결과다. 특히 이들 의원 대부분은 지자체 보조금을 받는 단체나 기구의 임원을 맡고 있고, 2명은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소속 지방의회는 부당한 겸직이라고 판단한 14명에게 17건의 겸직 사임을 권고했다. 도내 의회별로는 전북도의회 2건, 김제시의회 7건, 고창군의회 4건, 남원시의회 3건, 장수군의회 1건 등이다. 시민연대는 이 같은 사임 권고를 받은 15개 직은 사직 처리됐으나 전북도의회 소속 오평근 의원 등 2명은 사임 권고 이행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전주시의회 9, 10대 의원에 이어 지난 7월 도의회에 입성한 오 의원은 9년째 ‘A 어린이집 대표’를 겸직 사항으로 도의회 사무처에 신고했다. 이에 전북도의회는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 등을 거쳐 지난 9월 어린이집 관련 직책 사임을 권고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확인 결과, 오 의원은 28일 현재 대표직 사임 사실을 도의회 사무처에 신고접수하지 않았다. 오 의원은 교육 중인 영아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학기가 마무리되는 12월말이나 내년 2월께 폐쇄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의원이 9년째 어린이집 대표 겸직…매년 1억5000만원 지원
이 어린이집은 지난해 1억8000만원의 보조(국비+지방비)를 받는 등 매년 1억5000만원 안팎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35조(겸직 등의 금지) 5항은 “지방의회의원이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단체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거래를 할 수 없으며, 이와 관련한 시설이나 재산의 양수인 또는 관리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에 대해 지자체 보조금을 받는 기관의 장이나 임원을 겸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 특히 지난 2016년에는 지방의원이 어린이집 원장 등을 겸직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도의회는 오 의원이 어린이집 대표직을 사임하지 않으면 지방자치법 위반을 적용해 징계할 방침이다.
또한 지방의원 겸직금지 규정에 대해 전북지역 지방의원들의 인식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의원 236명(15개 의회) 가운데 82명이 119개 직을 신고해 겸직 신고율이 평균 50.4%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무주군의회는 겸직 신고자가 아예 없어 신고율이 ‘0%’였다. 정읍시의회 5.9%, 장수군의회 14.3%, 부안군의회 20.0% 수준으로 낮았다.
전북도의회 소속 의원 9명은 11개 겸직 사항을 신고하지 않았으며, 이 중 5명은 겸직 금지 대상으로 의심된다고 시민연대는 지적했다. 또 전주시의회의 경우 의원 13명이 겸직신고를 누락, 이 가운데 고미희 의원(유치원 대표직) 등 3명이 겸직 금지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연대 관계자는 “이번 실태조사 과정에서 지방의원이 겸직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의회사무처마저도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겸직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겸직 의원 중 일부 의원의 경우 의정비 외에 다른 직장에서 지급하는 보수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의원의 겸직이 의회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거래 등을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지방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도입된 유급제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북도내 광역의원의 의정비(2018년 기준)는 5311만원, 기초의원의 의정비는 14개 지방의회 평균 3450만원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임실군의회를 시작으로 장수군, 군산시 등 도내 대부분 지방의원들의 의정비가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전북도의회 역시 내년부터 2.6%의 인상률을 반영, 이달 말 진행되는 의정비 심의위를 통해 결정되면 내년부터 의정비를 올릴 예정이다.
시민단체 “현행 법규정 모호하고 조례에 처벌규정 아예 없어, 제도마련 자정 노력해야”
이를 두고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상당수 의원들이 당선 뒤에도 겸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신의 영리적 목적을 위해 권한을 남용할 우려가 있는 만큼 겸직 신고 내용 구체화, 위반 시 처벌 기준 강화, 관련 상임위원회 배제 기준 마련 등 겸직신고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연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겸직신고 기준과 방법을 조례 등을 통해 명확히 하고 불성실 신고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특히 지방의원 관계자의 수의계약 제한 대상자 검증 장치를 마련하고, 지방의원 스스로의 의식전환 개선과 자정 노력을 요구했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관계자는 “조사결과 지방의원들이 겸직신고 법규를 위반한 사례가 드러났으나 처벌규정이 아예 없다”며 “지방의회 스스로 사임권고 등을 하지만 미미한 수준이고 그나마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의 규정이 모호하고 방법과 절차 등을 조례에 위임했지만 의무사항이 아닌 겸직신고율이 낮은 것을 보면 누락은 더 많아 보인다”며 “겸직 금지 조항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조례, 규칙 등의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는 의회의 자정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