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축소 논의·안산 생명안전공원 공사·2기 특조위 활동 모두 시작 단계
세월호 참사 4주기 무렵인 지난 4월, 서울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안’을 발표했다. 향후 광화문광장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민광장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11월1일 청와대 역시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기 위한 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기 위함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합작해, 광화문광장과 그 일대에 대한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이 하나 있다. 그러면 지금 광화문광장을 지키고 있는 세월호 천막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거다. 현재 광화문광장엔 이순신 동상을 중심으로 양옆에 총 14개의 천막이 설치돼 있다.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분향소부터 세월호 리본 공작소, ‘0416기억하라 전시관’ 등 다양하다. 2014년 7월14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시작하면서 천막이 처음 세워지기 시작해 4년 훌쩍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광화문과 관련한 올해 청와대와 서울시 발표엔 기존의 세월호 천막에 관한 구상이나 계획은 담겨 있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 측은 서울시가 주도해 광장을 리모델링하는 사실에 대해선 인지하고 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천막 규모와 콘셉트를 조정할지에 대해선 정식으로 논의를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광장 내 분향소를 정리하고 천막을 축소하는 대신, 새로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을 가족 측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416연대와 서울시가 조금씩 조율 중인 상태다. 안순호 대표는 “청와대가 광장에 대한 리모델링을 원하고 있고 서울시도 빠르면 연내 광장 분향소를 없애고 최소한만 남길 계획을 갖고 있다”며 “광장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뿐 아니라, 생명·인권·안전에 관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지만, 가족들 입장에선 우려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동원 416가족협의회 사무처 팀장(생존 학생 애진 아빠)은 “리모델링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를 아직 들은 바 없고 가족들이 직접 그 문제에 관여하고 있진 않다”며 “시민단체인 416연대에서 논의를 진행한 후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오면 정식으로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광장이 아닌 시민들 마음에서 밀려날까” 우려
가족들은 지난 4주기 당시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이어 9월 팽목항에 있던 분향소도 정리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광화문광장 내 분향소마저 없어지는 데 대해 일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확히는 광장에서가 아닌 시민들의 마음에서 더욱 세월호가 밀려나버릴까 하는 걱정이다.
11월1일 저녁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기도회’ 에서도 가족들은 이 같은 마음을 드러냈다. 200여 개의 촛불이 모인 이 자리에서 가족들을 대표해 발언대에 선 예은 엄마 박은희씨는 “가족들은 45도로 누운 배를 보는 게 가장 힘들다. 우리 눈엔 배만 보이는 게 아니라 창문이 보이고 그 뒤에 있을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왜 아직도’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안산 화랑유원지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될 416생명안전공원이 조성될 계획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을 조성키로 한 지 2년6개월여 만인 지난 2월 결정됐다. 가족들은 애초부터 공원 내에 희생자들을 한데 안치할 봉안시설을 설치해 줄 것을 주장했다. 현재 희생자 295명은 전국 8곳에 흩어져 안치돼 있다. 이러한 가족들의 바람은 곧장 정치권으로 소환됐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안산시장 후보들은 공원 조성과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며 경쟁했다. 당시 백지화를 주장하는 측에서 공원 전체를 ‘납골당’으로 표현해 가족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안산 추모공원 조성도 ‘이제 시작’
생명안전공원 조성사업은 2월 결정 이후 이제 첫발을 뗐다. 사업 타당성 조사나 사업비 편성 등 과정을 거쳐 빨라도 2020년 하반기에야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후 3년여의 공사를 거친 후 비로소 주민들의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가족들은 공원 조성이 특별법에 명시돼 있으며 정부에서도 지원을 약속한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공될 것이라 확신한다.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는 “대통령도 후보 시절 안산을 세계적인 생명 안전 도시로 만들겠다며 공원 조성에 찬성한 바 있다”며 “외부적으로도 대통령의 그림대로 공원이 인식되길 가족 모두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가족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세월호 참사 2기 특별조사위원회(정식 명칭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참특위)의 경우 아직 정식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특조위 예산이 지난 8월 최종 편성돼 조사관 채용과 교육 등 일정이 전체적으로 늦어진 탓이다. 사참특위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가 함께 이뤄지며 세월호 참사는 이 중 제2소위에서 담당할 예정이다. 참사 후 2015년 1월 출범한 1기 특조위는 제한적 조사 권한과 박근혜 정부의 비협조 등 여러 갈등만 낳은 채 활동을 마친 바 있다. 현재 가족들은 출범을 앞둔 2기 특조위에 기대와 함께 우려도 보이고 있다.
특조위 활동은 늦어도 2019년 1월 ‘조사개시 선언’ 후 정식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조사 시작 시점을 공식화해 1기 특조위 때의 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1기 특조위 당시, 정부와 특조위 사이에 서로 다른 조사 시점을 주장하면서 강제로 활동이 종료된 바 있기 때문이다.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는 “현 정부에선 이전 정권과 달리 특조위 활동에 적극 협조할 의사를 밝히고 있어 기대한다”며 “아직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침몰 원인부터 최근 밝혀진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사찰 문건 관련 의혹까지 특조위가 새로 밝혀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향후 특조위 조사를 통해 밝혀지는 의혹을 수사할 ‘특별수사단’ 설치를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기무사·국가정보원·해양수산부 등 방대하게 연관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로 수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16연대에 따르면, 가족들의 요구는 청와대에 전달됐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진 못했다.
지난 10월13일 세월호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광화문광장에 모여 ‘참사 전면 재조사·재수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등 국민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곳에서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검찰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로 보고 있고, 진상 규명 요구를 떼쓰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청와대가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박근혜 정부 때와 다르게 수사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순호 공동대표 역시 “세월호 출항 전후 상황부터 침몰 원인까지, 가족들에겐 여전히 많은 부분들이 물음표”라고 말했다. 세월호는 이젠 지겨운 일, 다 끝난 일이 아닌, 아직 어느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 이들의 다 같은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