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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 오디세이] 4차산업과 인문학

요즘 인터넷에서 4차산업혁명과 인문정신의 관계에 대한 많은 글을 접한다. 플라톤을 21세기로 초대해 ‘4차산업혁명과 인간의 삶’을 살피는 지적 동반자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등장하는 철인(哲人)의 실존으로, ‘알파고(AI)’를 등치시키는 상상 이상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화 속에서 인간의 삶이 어떤 변화를 보일 것인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역설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단편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인간에게 주는 위기와 공포감은 갈수록 확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암울한 기계의 역습이나, 슈퍼지능 스카이넷의 지배를 다룬 영화 《터미네이터》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부정하거나 변화에 대한 극단의 부정과 편견에 빠지는 오류가 없다면 말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혁명적 변화 흐름은 그동안 당연시해왔던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전환의 지평선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인문학과 기술의 결합’을 강조한 스티브 잡스와 “4차산업혁명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 버린다”고 했던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바프의 경고도 고전이 되었다. 4차산업혁명의 기반인 ‘빅데이터’는 모든 것을 데이터화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행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문제는 4차산업혁명이 탈인간적인 어떤 특정 기술과 영역이 아니라, 세계와 개인의 연결과 융합을 만들어 내는 ‘플랫폼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막연하고 허황된 맹신도 경계해야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개선하고 오류를 보완하는 ‘지성과 생각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 연합뉴스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이유​

 

‘꿈의 놀이터’라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 세계적 테크 기업들은 기술역량에 못지 않게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인간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창의적 제품과 기술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창조력·상상력·공감능력·종합적 사고능력 등이 미래사회 경쟁력의 원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속도와 기능이 강조되는 기술만능주의만으로는, 4차산업혁명의 환경과 과제가 던지는 경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술의 급격한 진화는, 결국 “우리는 누구이고,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의 근원적인 물음과 병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인문학적 소양은 단순한 개념과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인간가치에 대한 재성찰과 혁신을 필요로 한다. 인문학은 주로 '인간다움의 가치(humanitas)'를 다루는 학문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수치로 계량화 될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인간의 존재 가치와 창의성, 세상을 보는 관점 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4차산업혁명과 인문학’을 다루는 다양한 컨퍼런스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흐름에서 기업과 개인의 경쟁력을 위한 필요성도 있지만, 뉴패러다임에 대한 이해와 생존전략을 중심으로 폭넓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때로는 담론의 과잉으로까지 느껴지는 열풍이지만,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인간 대 기계’라는 대립관계에서 시작하는 방어적인 생존전략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고의 틀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다. 4차산업혁명은 인간사회와 무관한 독립적인 기술발전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며, 양자간의 충돌이 아니라 공동진화(co-evolution)를 역설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에 대한 인문정신의 혁신이 출발해야 한다.

독일 이본트 푀르스터 교수는 4차산업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라고 정의한다. 물리적ㆍ생물적ㆍ디지털적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기술의 창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이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한 혁신이 우리 실생활에까지 침투하고, 이런 혁신에 대한 인간의 체험이 넓어질수록 ‘낯섬과의 공존’을 성숙하게 이끌어내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발전시켜 ‘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지평선에 들어선 지금, 뉴패러다임은 인문학의 새로운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인문학이 직면한 또다른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의 사유와 존재방식을 새롭게 구성하는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조금 더 넉넉하고 따뜻한 사유와 시선을 들고 새로운 창(窓)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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