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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의대 입학상담’ 받아보니…
입시 전문가 5人이 전망하는 2025학년도 대수능 트렌드

상위 0.1%. 입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의과대학의 문이 활짝 열렸다. 19년 동안 3058명으로 묶여 있던 의대 입학 정원이 단숨에 5058명으로 2000명 증원되면서다. 특히 비수도권 의대 27개교의 정원이 2023명에서 3662명으로 늘어나면서 의대 입시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방 의대 입시가 수시는 지역인재 선발전형, 정시는 전국 선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에 ‘지방 유학’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예고된다. 윤석열 정부가 지역인재 선발전형 비율을 6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수학능력시험 수학 2~3등급을 맞아도 의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우리 아이도, 나도 도전해볼 만하다는 기대감이 퍼지면서 초등생, 주부, 한의사까지 입시판에 뛰어들고 있다. 의대 열풍이 최상위권 이공계 인재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교육계 학원가로 넘어온 의대 증원의 ‘공’은 교육계를 어떻게 흔들고 있을까. 후폭풍이 찾아온 교육계에서 의대 증원 논란이 제2막을 맞고 있다.

3월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 앞에 ‘의대전문’ 홍보물이 붙어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 앞에 ‘의대전문’ 홍보물이 붙어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의대 소수 정예반 수강료 年 1억2000만원

“의대 준비하시게요? 올해가 적기예요.”(서울 강남구 대치동 의대 입시반 김은주(가명) 원장)

‘의대행’ 열차의 첫 번째 정거장은 서울 대치동 학원가다. 일찌감치 ‘직장인 야간 특별반’ ‘반수생반’을 개설한 대치동은 본격적으로 수험생과 학부모를 공략하고 있다. ‘3등급도 의대 갈 수 있다’ ‘3년 내 의대 합격이면 수강료 환불’이라는 홍보글로 수험생 유치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정부가 대학별 의대 정원 규모를 매듭지은 후인 3월26일, 시사저널은 오전 9시쯤부터 4시간 동안 대치동 학원가에서 직접 의대 입시 상담을 받았다.

“의대반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김은주 원장은 반색했다. 김 원장은 “지금이 적기인데 잘 왔다”며 “지방 의대를 노리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의대는 졸업만 하면 대우도 남다르다”면서 “얼마 전 30대 교사도 의대반에 들어와서 퇴근 후 수업을 듣고 있다”고 홍보했다.

의대반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미 개설된 반에 들어가거나, 소수 정예로 반을 꾸리는 것이다. 기성반에는 고3 학생·재수생처럼 꾸준히 공부해 오던 수강생이, 소수 정예반에는 오랫동안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직장인이 해당된다. 수강료를 묻자 김 원장은 “이 바닥(대치동)에서 매우 유명한 선생님한테 수업을 받는 거라(값이 비싸다)”면서 “수강생 인원에 비례해 수강료가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기성반의 경우 과목당 주 1회, 3시간 동안 수업을 듣는다. 한 달 수강료는 약 40만원이다. 국어·수학·영어·탐구 2과목을 전부 수강할 경우, 한 달 수강료는 최소 200만원에 달했다. 소수 정예반은 값이 배로 뛰었다. 수업시간은 동일하지만 과목당 수강료는 200만~250만원 수준이었다. 전 과목을 수강하면 월 1000만원, 1년에 1억2000만원이 드는 셈이다.

또 다른 의대 입시반을 찾았다. 다음 달 개강하는 의대반에 들어갈 경우 주 1회, 3시간 동안 강의를 듣게 된다고 했다. 수업료는 월 36만원 내외로, 교재비까지 포함하면 40만원을 웃돌았다. 해당 학원의 조은지(가명) 실장은 “며칠 전 현직 한의사도 의대반에 등록해 강의 녹화본과 자료를 받고 있다”면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른다”며 등록을 권유했다.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를 의미하는 이른바 ‘의치한약수’ 간판이 걸린 한 학원의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3월26일 오후 3시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최상위권=의대 진학’ 공식 깨질까

초유의 관심사는 ‘최상위권만 의대에 진학한다’는 공식이 깨질지 여부다. 교육부가 발표한 의대생이 증원된 대학 목록에서 서울 지역은 빠졌다. 따라서 같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라도 서울보다 비수도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지역인재 전형을 활용한다면 의대 진학에 유리해진 것이다. 의대 합격선이 낮아지면서 상위권 이공계에도 연쇄 파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의대 증원은 2025학년 대입에 어떤 지각변동을 가져올까. 시사저널은 입시 전문가 5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파장과 변수를 들어봤다.

‘몇 등급대 학생까지 의대에 갈 수 있을까’. 수험생과 학생으로선 가장 궁금한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비수도권 의대 합격선이 대폭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능 1등급 인원으로는 늘어난 비수도권 의대 정원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2~3등급 학생도 의대 진학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2000명을 비수도권에 82%, 경기·인천권 18%, 서울 0% 배정하면서 비수도권 의대 총 정원은 3662명이 됐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이 수치는 2023학년도 입시에서 고3 학생 수학 1등급 인원(3346명)보다 많다. 즉 수학 1등급을 받은 고3 학생만으로 의대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셈이다.

지역인재 규모도 의대 문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정부는 비수도권 의대에 신입생을 선발할 때 60% 이상을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해당 지역의 의대 선발인원이 1등급을 받은 학생 수보다 많을 경우 2~3등급 학생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게 된다.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수시에서는 자연계 학생 중에서 지역인재 수혜자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 학생들도 지역인재로 할당량을 채운 후 남은 증원분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 증원이 한 명도 없는 서울 지역 의대는 합격선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울산대·성균관대 의대 증원도 뜨거운 감자다. 이들 대학은 서울 소재가 아니지만 각각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수련 병원으로 두고 있어 수도권 학생의 선호도가 높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 연구소장은 “80명이 증원된 울산대(기존 40명)나 성균관대(기존 40명)는 사실상 비수도권이라고 인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데다 증원분도 많은 가천대 의대에도 관심이 쏠린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90명이 증원된 가천대(기존 40명)의 경우 등록금을 받지 않기에 합격선이 높았던 학교”라며 “상위권 학생들은 (가천대 증원 소식에) 매우 반색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증원으로 성균관대·울산대·가천대 모두 서울대를 제외한 서울권 의대보다 총 정원이 많아졌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서열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두 번째 관심사는 전공과 학적의 이동이다. 우선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자연계열을 목표로 했던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의대라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생겼다.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수인 5058명은 서연고 자연계열 총 모집인원(5443명)의 93% 수준이다. 또 치대(630명)와 수도권 약대(880명),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 신입생 규모(1700여 명)을 합치고도 남는 인원이다. 의대 모집 정원이 상위권 대학 이공계열 모집 정원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아진 셈이다.

이병일 안성 이투스학원 이사장은 “예전 같으면 서연고 공대에 지원할 고3 학생들이 이제는 재수, 3수를 각오해서라도 의대 입시에 뛰어들 확률이 높아졌다”며 “연쇄적으로 수도권 약대와 치대, 지방권 약대, 한의대, 수의대 등에도 지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N수 시장’도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서연고 이공계와 KAIST 재학생이 의대로 대규모 유입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N수생 규모는 ‘역대급’을 경신할 것으로 내다봤다. N수생 수는 지난해부터 17만 명대를 돌파했다. 종로학원은 올해 고3 학생이 아닌 수능 지원자 비율이 35.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임성호 대표는 “반수생 규모는 9만 명대에 달할 것”이라며 “지난해 킬러문항 배제 여파에 이어 반수 열기가 커졌다”고 했다.

ⓒ양선영 디자이너
ⓒ양선영 디자이너

 

‘지방 유학’ 가도 학원은 서울에서

이병일 이사장은 “이공계뿐만 아니라 서연고 상경계열에 다니고 있는 이과 출신 학생들도 의대 편승을 시도할 것”이라며 “(의대 증원이) 갑자기 발표된 상황에서 아무래도 고3 학생보다 시험 준비를 더 많이 해본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사교육계에서는 일찍부터 의대 입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다. 향후 증원 규모가 1000명, 500명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한 번 쏘아올린 ‘의대 열풍’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만큼 사교육계 입성 시기도 급격히 앞당겨진다는 점이다. ‘의대 준비 적기’가 초등학교 3학년, 만 9세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사저널이 찾아간 초등생 대상 입시학원은 이미 열기가 뜨거웠다. 윤진아 원장은 “정규 수업만으로는 최상위권이 어려워 학부모들이 특별 수업을 찾는다”고 했다. 특별 수업은 강사가 선제적으로 학생과 상담을 통해 실력을 확인하고, 소수 정예로 운영한다고 했다. 윤 원장는 “초등생 특별반은 이미 마감됐다”며 “2~3명이 빠질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를 ‘지방 유학’ 보내는 사례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지역인재전형 수혜를 받기 위해 평일에는 지방에 거주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학원 수업을 듣는 것이다. 이병일 이사장은 “특히 초등학생 맞춤형 올케어반은 주말에 전부 만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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