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시간 푹 자면 당뇨병 억제 효과
숙면 방해하는 수면무호흡증은 치료 필요한 질환
우리나라는 수면 부족 국가다. 해외 언론이 심각한 우리의 수면 부족 상태를 지적할 정도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2016년 기준 7시간41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고 평균(8시간22분)보다도 41분 부족하다. 그나마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이 정도이고, 유아기를 제외한 우리나라 청소년과 성인의 수면 시간은 6시간 남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면 시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도 나쁘다. 글로벌 수면 솔루션 브랜드 ‘레즈메드(ResMed)’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수면 인식 조사에서 한국인의 50%는 ‘수면의 양이 불만족스럽다’고 했고, 55%는 ‘수면의 질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12개국 평균은 각각 35%와 37%다. 한국인은 수면 부족과 수면의 질 저하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잠이 부족하면 성인은 만성질환이, 노인은 삶의 질이 악화한다. 또 아동은 성장에, 청소년은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받는다”며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수면이 큰 영향 미쳐
수면 시간이나 질이 충분하지 못하면 사고 위험은 물론 각종 질환의 발병 위험이 커진다. 즉 충분한 수면은 질환 위험을 낮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수많은 합병증을 불러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당뇨병도 수면과 매우 관계가 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팀은 11~13년간 38~71세 영국인 약 24만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국제 의학저널(JAMA 네트워크 오픈)을 통해 공개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를 정상 수면(7~8시간), 약간 짧은 수면(6시간), 중간 정도 짧은 수면(5시간), 극히 짧은 수면(3~4시간)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붉은 고기, 가공육, 과일, 채소, 생선 소비량 등을 기준으로 식습관에 0점(가장 건강하지 않음)에서 5점(가장 건강함)까지 점수를 매긴 후 수면 시간 및 식습관과 당뇨병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이 기간에 참가자의 3.2%인 7905명이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정상 수면 그룹보다 극히 짧은 수면 그룹은 당뇨병 위험이 41%, 중간 정도 짧은 수면 그룹은 16% 더 높았다. 특히 이 결과는 건강한 식습관 그룹 내에서도 유지됐다. 아무리 건강한 음식을 먹어도 수면이 부족하면 당뇨병 위험은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건강한 식단을 채택해도 습관적으로 수면 시간이 짧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뇨병 발병 위험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만으로도 당뇨병 위험을 억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아동과 청소년 건강에도 잠은 큰 영향을 미친다. 잠을 충분히 잘수록 낮에 공부한 내용이 뇌의 기억 장소에 잘 저장된다. 또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돼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이롭다. 게다가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핀란드의 5년 추적 관찰 연구로 확인됐다. 여자아이의 수면 시간이 6시간 미만으로 너무 적거나 10시간 이상으로 너무 많으면 위험한 행동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는 신체활동보다 수면이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와 같은 결과에 따라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의 샬리니 파루티 교수는 여러 수면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해 2016년 아동과 청소년에게 필요한 수면 요구량을 제시했다. 출생 후 4~12개월은 12~6시간, 1~2세 11~14시간, 3~5세 10~13시간, 6~12세 9~12시간, 13~18세는 8~10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의 수면 시간은 유독 짧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를 포함한 여러 전문의가 2011년 150개 중·고교 학생 2만6395명을 대상으로 주중 평균 수면 시간을 조사한 결과 6.7시간(중학생은 7.3시간, 고등학생은 5.8시간)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수면 시간은 최근 더 줄어들었다. 2022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중학생은 6.7시간, 고등학생은 5.6시간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의 수면 시간을 늘리기 위해 등교 시간을 오전 9시로 늦추는 등교 정책을 한때 시행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감정조절·식사·운동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수면 시간은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했다. 2019년 연구에서 중학생 10명 중 7명은 수면 시간이 오전 9시 등교 정책 시행 전 8.1시간에서 시행 후 7.3시간으로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늦게 일어나도 되므로 더 늦게 자는 역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김승수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청소년기 수면의 변화는 생리적인 영향과 환경적 영향이 원인이다. 생리적인 영향은 몰라도 빛 공해와 막중한 학업 등과 같은 환경적 영향은 인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면을 늘리는 걸 게을리해 왔다. 카페인, 알코올, 스마트폰, 24시간 영업, 야식 등 잠을 방해하는 요인을 개선하지도 않았다. 세계수면학회가 매년 세계 수면의 날을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수면의 날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직전 금요일(올해는 3월15일)이다. 이날 대한수면연구학회는 이대서울병원에서 수면 위생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수면 위생은 건강한 수면을 위한 생활습관을 말한다.
낮에 햇빛 15분 이상 쬐면 숙면에 도움
수면 전문가들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수면 위생은 하루 중 자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다. 잠자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24시간 중 자는 시간 7~8시간을 먼저 정해 두고 나머지 시간에 활동하는 수면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만일 매일 6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적정 수면 시간이 7~8시간이므로 전날 밤 10~11시에는 잠에 들어야 한다. 평일에는 잠을 적게 자도 주말에 몰아서 자면 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수면 리듬이 뒤로 밀리고 월요일에 더 피곤함을 느낀다. 수면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주중이든 주말이든 일정해야 한다. 특별한 일정으로 늦게 잤더라도 다음 날 일어나는 시간은 지켜야 한다.
사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도 바로 잠에 빠지지는 않는다. 이를 수면 잠복기라고 하는데, 30분 이내는 정상이다. 잠자리에서 20분 이내에 잠이 오지 않으면 일어나서 독서나 음악 감상과 같은 정적인 활동을 하다가 졸음이 올 때 다시 잠자리에 들면 된다. 잠이 오지 않는데 침대에 누워있으면 과도한 긴장이 생겨 더 잠이 오지 않는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해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 안 된다. 디지털 기기의 강한 불빛(블루라이트)은 뇌를 각성시키고 수면 호르몬(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므로 잠을 방해한다. 2016년 435명을 대상으로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연구에 따르면, 취침 시간에 스마트폰을 60분 이상 사용하는 사람은 15분 미만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7.5배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숙면을 돕는 멜라토닌은 어두워야 분비된다. 2009년과 2015년 아마존 밀림에 사는 사람들의 수면을 조사한 외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집에 전등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수면 시간이 약 30분 짧았다.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햇빛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햇빛을 천연 수면제라고 부른다. 낮에 햇빛을 15분 이상 쬐면 밤에 멜라토닌이 잘 분비돼 숙면에 도움이 된다. 특히 오전 10부터 낮 12시 이전에 쬐는 아침 햇빛은 수면 건강을 위한 보약이라고 할 만하다. 불면증 환자 대부분은 낮에 햇빛을 쬐면서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치료된다.
자면서 사망하는 수면무호흡증 치료해야
만일 수면무호흡증과 같은 수면 장애가 있다면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 수면무호흡증은 숙면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비만하면 기도가 좁아져 코를 곤다. 코를 고는 사람은 혀뿌리가 공기 흐름을 막아 호흡이 일시적으로 끊어지는 수면무호흡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만성 수면무호흡증은 체내 산소포화도를 떨어뜨리고 불면증까지 초래한다.
인구의 약 4%, 40대의 20~30%가 수면무호흡증으로 추정된다. 원인은 비만, 작은 턱, 편도비대증, 노인, 폐경 등이다. 자신은 수면무호흡증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가족이 알려줘도 술이나 피곤 때문이라며 질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잘 때 숨을 10초 이상 쉬지 않는 증상을 1시간에 5번 이상 반복하면 수면무호흡증이다. 30번 이상이면 중증이다. 이렇게 숨을 쉬지 않는 증상이 하룻밤 사이에 400~500번 반복된다. 숨을 쉬지 않으므로 100%에 가까워야 할 우리 몸의 산소 농도는 40%까지 떨어진다. 따라서 수면무호흡증은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고혈압 위험은 10배 커진다. 약으로도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고혈압의 60%는 수면무호흡증이 원인이다. 숨을 쉬지 못하므로 뇌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때 저장해둔 포도당을 꺼내 사용하면서 혈당도 올라 당뇨병이 발생한다. 그 외에 수면무호흡증은 심근경색·부정맥·뇌졸중·치매 위험을 급격히 높인다.
수면무호흡증은 체중 감량, 구강 마우스피스, 수술, 양압기 등으로 치료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양압기 치료다. 압력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숨구멍을 벌리는 방식이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일반인은 평소 몇십 초도 숨을 참기 힘든데,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1분 이상 숨을 쉬지 않는 경우도 있어 자는 도중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할 수 있다. 피곤하거나 술을 먹은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며 수면 장애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