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틴의 정보기구, 스탈린 시대 억압의 어두운 시기로 퇴행” 
미·중 경쟁과 글로벌 지정학적 변동성이 ‘테러와의 전쟁’을 후순위로 밀어내

러시아에서 20년 만에 또 최악의 테러가 발생했다. 3월22일 오후 7시40분쯤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6200명 전 석이 매진된 공연장의 시민들을 향해 타지키스탄 국적의 테러범 4명은 20분간 총기를 난사하고 방화했다. 사망자는 139명으로 집계됐다.

각국이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역대 최고인 87.28% 득표율로 5선에 성공하며 30년 장기집권의 길을 연 지 1주일도 안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을 막 넘겼다. 테러는 감시와 정보의 허를 찌르고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한다. 국가·민족·종교 간 분열과 증오를 증폭한다. 그런데 이 파괴적 테러에 대한 경악과 비극적 희생자 추모는 잠시일 뿐, 대응 실패의 책임론과 테러의 배후 논쟁이 부각된다. 정작 테러집단은 그 효과를 즐기고 있다.

첫째 논점은 어떻게 ‘푸틴의 경찰국가’가 러시아를 테러 공격에 취약하게 방치했나 하는 점이다. ‘질서 복원’을 내세운 푸틴 대통령이다. 정부 예산의 약 30%를 군사·정보기구 및 교도소로 보낸다. 국가안보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은 국내 정보, 방첩, 대테러, 국경경비 및 과거 소련연방 국가들을 감시한다. 총기 소지는 엄격히 규제된다.

IS가 공개한 3월23일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 동영상 모습 ⓒTimes now 유튜브 캡처
IS가 공개한 3월23일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 동영상 모습 ⓒTimes now 유튜브 캡처
IS가 공개한 3월23일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 동영상 모습 ⓒTimes now 유튜브 캡처
IS가 공개한 3월23일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 동영상 모습 ⓒTimes now 유튜브 캡처

러시아 안보 3대 축 FSB·SVR·GRU 총체적 난국

주러 미대사관은 3월7일 “극단주의자들의 48시간 내 모스크바 공연장 등 테러 계획”을 경계 경보했다. 동시에 “워싱턴은 ‘경고의 의무 정책’에 따라 러시아 당국에 ‘임박한 공격’을 조용히 알렸다”는 게 백악관의 입장이다. 그렇지만 푸틴 대통령은 3월19일 “우리 사회를 겁주고 불안정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명백한 협박”으로 치부했다. 자만심에다 적(미국)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의심, 대선 승리의 빛이 가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버시바우 전 주러 미국대사는 3월23일 “푸틴의 심각한 정보 실패”라고 규정했다.

옛 ‘철의 장막’으로 통제된 러시아의 디테일을 외부에서 알 수는 없다. 다만 권위주의 체제의 정보 실패를 일반화하면, 그 리더십의 개인적 병리에 근원이 있다. 정보기관을 통해 지배를 강화하려는 한편 정보기관의 비판적 목소리와 독립적 분석은 억제한다. 지도자는 조언을 요청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정보기관은 ‘듣고 싶은 것’에 기반한 잘못된 가정을 가지고 정보를 생산한다. 이는 대외의 도전과 위협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의 약화를 가져온다. 내부로 눈을 더 돌리게 한다. “푸틴의 정보기구는 스탈린 시대 억압의 가장 어두운 시기로 퇴행할 것”이라는 서방 전문가들의 최근 진단에 그래서 공감하는 바다.

푸틴 정권 안보의 3대 축 중에서 주력인 FSB는 우크라이나 개전 초기에 전략적 정보 실패를 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식과 서방의 단일대오 지원을 과소평가했다. 지금은 최전선에서 전쟁 지원에 전 조직이 과잉일 정도로 동원되어 있다. 해외정보국(SVR)과 군사정보국(GRU)은 전례 없이 많은 수의 스파이가 유럽 전역에서 체포되거나 축출됨에 따라 위축되어 간다. 이러한 총체적인 정보 실패 구조의 파장이 이번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보안 실패로까지 연결되었다. 정보기관 일선이 각자의 임무를 해태하고, 간과하며, 관성적일 때 테러리즘은 그 씨앗을 심는다.

둘째는 테러의 귀속 책임과 배후 논쟁이다. 푸틴 대통령은 3월25일 급진 이슬람주의자(IS)의 범행임은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누가 시켰는지도 알고 싶다”며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여전히 의심했다.

테러 직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이슬람국가’ 테러조직, ISIS-K(호라산)는 ISIL(이슬람국가)의 아프가니스탄 지부다. 이란 북동부,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일대가 근거지다. 가장 활동적이며, 잔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2014년 9월 클래퍼 당시 미 국가정보장(DNI)은 미 안보에 가장 위협적 존재로 꼽으며 “뉴욕 타임스스퀘어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건물 공격을 주목적으로 조직됐다”고 밝혔다. DNI는 2024년 ‘연례위협평가서’에서도 ISIS-K를 글로벌 테러리즘 리스트의 앞줄에 올려놓았다. 미국은 인적·기술적 정보자산과 해외 정보협력 채널을 동원해 추적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공연장 총격 사건 발생 직후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무슬림에 대한 푸틴의 지속적 강압도 원인

안보분석가들은 무슬림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공개적·지속적 강압에 주목한다. 러시아는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침공, ISIS-K의 숙적인 탈레반과의 연계, 시리아·이란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시리아에서 ISIS와의 전투 등으로 인해 ISIS-K의 광범한 프로파간다 전쟁 타깃이 되고 있다. 2022년 ISIS-K가 카불 주재 러시아대사관을 공격했을 때는 FSB가 러시아 내부 및 국경 부근의 친(親)ISIS 생태계를 엄중 단속했다. ‘알 자지라’ 방송은 3월23일 전문가의 분석을 빌려 “그들은 지금 모스크바에 있고, 훨씬 더 많은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1999년 10월 푸틴 당시 총리는 체첸 반군에 대한 강력한 공격의 여세를 몰아 집권했다. 그렇지만 그 체첸 반군의 자폭 테러와 그들에 대한 과잉 진압은 러시아 국민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2002년 10월 체첸 무장단체가 저지른 두브로프카 극장 인질극에서 FSB가 유독가스를 주입해 진압한 끝에 인질 128명이 사망했다. 2004년 9월 베슬란 초등학교에서의 인질극은 FSB와의 총격전으로 어린이 186명을 포함해 인질 314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ISIS는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력 과시로 지역 및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을 높인다. 자금과 전투원 모집, 선전선동의 위력을 키우게 된다. 테러집단의 구성원이나 지원 세력에 우크라이나인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 푸틴 정권이 이번 테러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수행에 이용할 수도 있다.

어설픈 양비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ISIS-K의 실체가 분명하고, 양민이 참담하게 희생되는 이 엄중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지목하는 것도, 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자작극으로 모는 것도 문제 해결책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미·중 경쟁과 글로벌 지정학적 변동성은 테러와의 전쟁을 후순위로 밀어냈다. 테러와의 전쟁에는 국제협력이 필수다. 9·11 때 국제사회는 협력했다. 대형 참사가 나야 정보기관을 찾게 되는 것은 불행한 경험칙이다. 반면 모든 정보기관은 큰 위협에서 오판한다. 평상시 정보기관의 역량을 키우고, 독립성과 판단의 객관성을 보장할 때 경보 기능은 보장된다.

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이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을 거쳐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