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내각 출신 50여 명 총선 도전…영남·중진 의원들에 헌신 요구할 듯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걱정에 떨고 있는 국민의힘 현역 의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 위원장이 본인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을 갈아엎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는데 의원들은 자신이 그 대상에 포함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선 국민의힘의 최근 내부 분위기에 대한 한 당 관계자의 묘사다. 총선을 100일 정도 남겨두고 집권여당의 선장이 된 한 위원장의 손에 들린 ‘칼’에 국민의힘 내부도, 정치권도 주목하고 있다. 엘리트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조선제일검’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위원장이 당을 대폭 물갈이하기 위해 칼잡이를 자처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친윤(親윤석열)계 핵심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진 인요한 혁신위의 ‘주류 희생론’을 한 위원장이 공천 등의 과정에서 더욱 고강도로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한동훈의 불출마 선언, 당에 희생 요구하기 위한 명분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진 않았으나 단서는 충분하다. 한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자신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갑작스레 한 것은 당내에 희생을 요구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위원장은 연일 헌신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일엔 “4월10일(총선일) 이후의 내 인생은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저는 헌신하겠다. 그리고 우리 당의 자산과 보배들에게 필요한 헌신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헌신을 요구할 대상으로는 영남, 그중에서도 특히 TK(대구·경북) 의원들, 그리고 3선 이상 중진들이 지목된다. 자신을 포함해 비대위와 주요 당직자들을 789세대(70·80·90년대생) 중심으로 꾸리며 보수 세대교체론에 불을 댕긴 한 위원장은 인요한 혁신위 때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 인요한 혁신위는 친윤계와 당시 김기현 지도부, 그리고 영남 중진들만 희생의 대상으로 꼽았지만, 한 위원장은 중진 대부분에게 물러나 달라고 요구할 것이란 게 그 주변의 설명이다.
문제는 물갈이 대상자들의 반발이 거셀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스스로 소위 물갈이 리스트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는 게 실제 당내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남권 의원은 “영남, 중진들을 주류라 칭하면서 물러나라고 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주류였던 적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비주류의 설움을 딛고 실력으로 이 자리까지 온 사람도 많다”며 “한 위원장이 그렇게 대책 없이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실제 그렇게 상황이 흘러간다면 분명 불만이 세게 터져나오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물갈이가 이뤄지더라도 기존의 물이 비워진 자리에 어떤 물이 채워질 것이냐를 두고도 당내에 뒷말이 많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보수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가 우려하고 있는 게 검사 공천 아닌가. 중진들이 불출마하거나 험지로 가면 그 자리에 검사 출신들이 꽂힐 것이란 얘기가 많다”며 “뿐만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 출신이나 내각 출신의 친윤 참모들 중 총선 출마 희망자가 상당히 많은데 그들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주류이며 여권에 대한 현재의 냉담한 평가에 책임 있는 자들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기존 의원들을 내쫓고 그들 중심으로 당을 물갈이한다는 게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대통령실 출신 인사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번 총선에서 국회 첫 입성에 도전하는 대통령 참모들은 오히려 기득권 없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희생해 왔던 이들이지 주류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여의도 기득권과 비교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양측 간 시각차가 현저한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실제 용산·검사 출신 인사 다수가 영남권 등에서 같은 당 현역 의원 지역구에 이미 출마를 확정했거나 출마가 예상돼 충돌이 불가피하다.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대통령실과 내각 출신의 이른바 ‘윤 대통령 사람들’은 총 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중 대통령실 출신은 30여 명에 달하는데 비서관급 이상 11명 중에선 절반 이상인 7명이 현 국민의힘 지역구에 출마가 거론된다.
용산 비서관급 이상 11명 중 7명이 與 지역 출마
강승규 전 시민사회수석이 충남 홍성·예산에서 4선 중진 홍문표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고,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초선 박형수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주진우 법률비서관은 초선 전봉민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수영 출마가 거론되며, 전광삼 전 시민소통비서관은 초선 양금희 의원 지역구인 대구 북갑에 도전한다. 초선 김영식 의원 지역구인 구미을엔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과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이 동시에 몰렸다.
안상훈 전 사회수석은 서울 강남갑 출마 가능성이 나오는데 현 지역구 의원인 태영호 의원이 불출마를 시사한 곳이다. 행정관급에선 정호윤(부산 사하을)·배철순(경남 창원 의창)·이창진(부산 연제)·김유진(부산 부산진을)·김인규(부산 서·동)·이병훈(포항 남·울릉)·허청회(경기 포천·가평)·최지우(충북 제천·단양) 전 행정관 등이 각각 조경태(5선)·김영선(5선)·이주환(초선)·이헌승(3선)·안병길(초선)·김병욱(초선)·최춘식(초선)·엄태영(초선) 등 같은 당 현역 의원의 지역구에 도전한다.
윤석열 정부 장차관 출신 중에선 10여 명이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현 국민의힘 지역구 출마 예상자가 역시 절반 가까이다. 현역 의원인 추경호 기재부(대구 달성)·박진 외교부(서울 강남을)·권영세 통일부(서울 용산) 전 장관은 자신의 기존 지역구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조성근 전 해수부 장관은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황보승희 의원 지역구인 부산 중·영도,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재선 박성중 의원 지역구인 서울 서초을 출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박성훈 전 해수부 차관과 김오진 전 국토부 1차관도 각각 3선 하태경 의원(부산 해운대갑), 초선 홍석준 의원(대구 달서갑) 지역구에 이름이 거론된다.
대통령과 비대위원장이 검사 출신이니만큼 당내에선 검사 출신 인사들에 대한 공천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앞서 거론된 주진우 전 비서관을 비롯해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등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검사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의 참모를 지낸 데 이어 총선 출마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들은 한 위원장과도 각별한 사이다. 이 전 비서관의 출마 지역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수도권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밖에 검사 출신 중에서도 국민의힘 지역구에 도전장을 낸 이들이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에도 참여했던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전 서울고검 검사)은 부산 중·영도에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윤 대통령과 4차례 같이 근무했다는 노승권 전 대구지검장은 대구 중·남구(초선 임병헌 의원)에 도전하며, 윤석열 대선캠프 총괄특보단장을 맡았던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충북 청주 상당(5선 정우택 의원)에 출마를 선언했다. 최근 현직 부장검사가 총선 출마를 준비해 인사 발령과 감찰 조치를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논란의 당사자는 김상민 부장검사로 그는 국민의힘 5선 김영선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 의창에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욱 전 앵커·최영훈 전 편집국장 등 새 인물 주목
한 위원장은 조만간 ‘한동훈식 공천룰’을 꺼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천 원칙으로 “공천하는 과정이 ‘공정’하고 멋져 보여야 하며 내용이 ‘이기는 공천’이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천관리위원장에는 법조인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정무적 판단보다는 명확한 기준으로 공천이 이뤄진다는 원칙과 공정성을 강조해 반발을 줄이기 위함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한동훈식 공천룰이 결국 현역 의원들에게 더욱 엄한 평가와 잣대를 들이대는 물갈이용 공천룰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
항상 공천과 관련한 잡음은 원심력을 폭발시키기 마련이다. 한 위원장이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 등 탈락자들의 반발을 제대로 달래지 못할 경우 그들의 무소속 출마 등으로 여당에 상당히 불리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을 박차고 나간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차리면서 바깥에서 당기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도 한동훈 비대위로서는 큰 부담이다.
한 위원장이 1월3일 인재영입위원장까지 겸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당의 공천 등에 그립을 더욱 세게 쥐려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한 위원장이 어떤 새 인물을 발굴해 내세울지도 주목된다. 언론인 출신 중에선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당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12월29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TV조선을 떠난 신 전 앵커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총선 출마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만 회사는 떠날 때가 돼 떠난 것이고 미리 계획을 정해 놓고 나온 게 아니어서 확실한 건 없다”며 “국민의힘과도 전혀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인 경북 상주나 비례대표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외에도 여전히 현 내각 차관급 차출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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