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습’당한 민주주의…충격적인 제1야당 대표 향한 ‘정치 테러’
‘공천 혁신’이냐 ‘계파 내전’이냐…총선 승패는 ‘공천’이 가른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1월2일 발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부산 방문 중 지지자로 가장한 괴한에게 피습됐다. 이 대표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중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당해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수술을 끝낸 이 대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치 테러는 모든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 범죄다.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를 불과 100일 앞두고, 제1야당 대표라는 유력 정치인을 향해 자행된 폭력이란 점에서 시기와 대상 모두 최악이다. 의도는 더욱 나쁘다.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에서 구입한 흉기로 이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한 달 전에 민주당 부산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행사장 근처에 나타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의도적 테러임을 엿볼 수 있다.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유력 정치인들을 향한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송영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한 유튜버의 둔기 공격을 받았다. 2018년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는 국회 단식농성 중 지지자를 자처한 남성에게 주먹질을 당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6년 지방선거 직전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가 커터칼 습격을 당했다.
전문가들 “극단의 정치와 증오의 정치 멈춰야”
이런 정치 테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중대 징후들이다. 최근 정치 전문가들은 갈수록 극단화되고 있는 한국 정치가 이런 정치 혐오와 정치 테러의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해 왔다.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대하는 태도와 언행이 진영 간 대립을 격화시켰고, 이런 극단의 에너지가 상대를 향한 극언과 폭력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온라인 공간에서의 혐오 표현은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번 사태를 두고서도 이미 각종 억측과 정치 혐오가 담긴 온라인 댓글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정치권이 이번 사태만큼은 신중히 풀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음모론 등으로 정치 테러 사건을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악용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정치 테러의 반복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 행사와 유세장 안전, 정치인과 유권자의 신변 보호 대책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정치권 스스로가 극단의 정치와 증오의 정치를 멈추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최근 한국 정치는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기보다 강성 지지층에 편승한 선전·선동 정치와 막말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극단의 정치는 혐오의 정치를 부르고, 언어 폭력은 정치 폭력의 숙주로 작동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정치권 스스로가 깨야 한다.
이 대표를 향한 정치 테러로 여야 공방은 물론 민주당 내부의 갈등도 ‘잠시 멈춤’ 상태에 돌입했다. 그렇다고 총선을 향한 ‘정치 시계’가 멈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면 아래에서는 한층 더 치열한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중심에는 ‘공천’이 있다. 공천이 총선 승리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공천을 두고 ‘전쟁’이라고 표현될 만큼의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고 그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데에는 두 가지 핵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공천은 ‘시대정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국민에게 가장 쉽게 보여주는 방법이 바로 공천이다. 국민에게 비전과 정책을 수천, 수만 번 역설하는 것보다 그 비전과 정책을 책임지고 완수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해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공천에는 ‘선거 전략’도 담겨 있다. 총선에서 이기려면 스윙보터인 중도층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①혁신 대 기득권 ②새로움 대 낡음 ③미래 대 과거 등 세 개의 전선에서 상대 정당보다 앞서야 한다. 공천은 그 자체로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는 정당의 노력을 상징한다. 새로움과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기도 하다. 인재 영입과 공천 배제는 정당이 무엇을 더하고, 덜어낼지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이기는 공천’은 무엇이 다를까.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보통 공정 공천, 혁신 공천, 파격 공천, 통합 공천 등을 꼽는다.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길 수 있는 구도를 또렷하게 보여주고, 이길 수 있는 주체로 정당이 탈바꿈하는 공천을 말했다. 상대를 심판하려면, 상대가 왜 청산과 심판의 대상인지를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청산과 심판의 주체로서 얼마나 스스로가 혁신적이고 새롭고 미래지향적인지도 증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권심판론’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심판의 주체가 수권정당임을 보여줘야 하고, ‘86 운동권 심판론’이 충분히 먹혀들려면 자신들이 왜 대안 세력인지를 차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기는 공천’엔 혁신·미래·새로움 담겨
현실정치에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공천은 정치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영역이라 할 만큼 고도의 정무적 판단과 전략적 계산을 요구한다. 공천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역설적인 성격 때문에 그렇다. 새 인물을 선호하는 국민에게 참신함을 선사하려면 고인 물을 비워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비워내지 않으면 물갈이는 가능하지 않다. 비우고 채우는 과정에서 충돌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셈이다. 비우고 채우는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를 두고 총선이 열리는 4년마다 ‘공천 전쟁’이 펼쳐지는 이유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하고 있다. 거대 양당은 ‘분당 사태’에 준하는 분열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가 이탈해 새로운 정당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 후 신당 창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총선을 앞두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4자 구도 이상이 펼쳐지는 상황은 현재 거대 양당의 꼭짓점을 차지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박성민 정치컨설턴트)도 제기된다.
내년 총선이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 세력의 재편을 가져올 ‘주류 교체’라는 성격을 갖게 될지 여부도 공천에 달려있다. 현재 거대 양당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세력들의 총집합이다. 지금 국민은 여당을 ‘검찰 정당’으로, 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국민은 과연 어느 쪽의 물갈이를 더 원하고 있을까. 과연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승패의 저울은 누구의 공천이 더 국민 눈높이에 맞느냐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많다. 그 눈높이를 어떻게 맞추냐에 따라 ‘공천 학살’과 ‘혁신 공천’ 중 어느 꼬리표가 달리게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총선의 승패가 갈릴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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