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명 대표 공판 줄줄이 연기…‘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도 뒤늦게 진행

“대전은요?” 이 한마디의 파장은 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6년 5월2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유세를 하던 중 괴한의 습격으로 뺨에 길이 11cm의 자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3시간30분 동안 60여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는데, 마취에서 깨어나 했던 첫마디가 지지자를 결집시켰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전의 판세를 먼저 물었다는 유정복 당시 비서실장의 브리핑을 통해 전해진 이 일화로 한나라당이 당초 열세 또는 백중세였던 대전 등 충청권 판세를 완전히 뒤집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24년 1월2일 야당 대표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치 테러가 또다시 일어나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날 오전 10시29분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덕도 신공항 부지가 보이는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 시찰을 마치고 차량으로 걸어가던 중 한 남성에게 흉기로 피습당한 것이다. 이 대표는 목 부위 내경정맥에 깊은 자상을 입고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된 후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회복을 위해 입원 중이다. 

현재 정치권의 모든 시선은 이 대표의 건강 상태와 앞으로 나올 메시지, 그리고 이번 사건이 총선 정국에 미칠 파장에 집중돼 있다. 우선 이 같은 테러 행위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데 모처럼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범죄행위를 넘어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비판했으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이 사회에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민주당은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일 부산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도중 한 괴한에게 피습당했다. ⓒ연합뉴스

피습 사건 영향, 현재로선 제한적…총선까진 긴 시간 남아

이 대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내경정맥 둘레 60%의 손상이 있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완전한 회복까지는 수 주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월4일 현재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받고 있던 재판 일정은 모두 미뤄지게 됐다. 위증교사 혐의 사건 공판기일은 당초 예정된 1월8일에서 22일로 변경됐다.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 사건 또한 1월9일로 잡혀 있던 공판기일이 ‘추후 지정’ 상태로 바뀌었다. 형사사건 피고인은 재판에 의무적으로 출석해야 하는데, 입원 중인 이 대표의 재판 출석이 당분간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1월19일로 예정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공판 또한 연기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4·10 총선에서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됐던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 대표에게 칼을 휘두른 범인은 충남 아산에 사는 67세 부동산중개업자 김아무개씨다(18쪽 상자기사 참조).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1차 공격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2차, 3차 공격 시도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김씨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 때문에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공범이나 배후가 있는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이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살해하려고 했다’는 김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명확한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고, 공범도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권에선 김씨의 정당 가입 이력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김씨가 과거 국민의힘 당원이었다가 탈당한 후 이 대표의 일정 파악을 위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민주당은 이 대표 피습으로 내홍이 잠시 잦아든 모양새다. 당 지도부는 비상상황에 따른 대행 체제 없이 이 대표를 중심으로 구심력을 강화해 나가려는 움직임이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1월3일 비상의총 직후 “총선이 D-100일 안으로 들어왔는데, 총선 준비나 관련 당무는 차질이 없도록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선우 대변인도 MBC 인터뷰에서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번 사건이 박 전 대통령 피습 사건처럼 총선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아직은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당시는 선거가 코앞이었지만, 지금은 아직 총선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흉기 피습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 1월3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비명계, 여론 추이 살피지만 물밑에선 실무 진행    

이번 사건으로 정치권은 ‘올 스톱’된 상태다. 그러나 여권과 야권 모두 정치 행보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지만, ‘잠시 멈춤’ 상태일 뿐 지금까지 진행하던 방향성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총선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만큼 계획됐던 일정이 순연될 뿐이지 무한정 연기되거나 방향이 틀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당장 신당 창당을 준비하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월초 탈당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사태의 여파로 일정을 조금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를 맞자마자 민주당 탈당 후 창당을 선언하고, 1월 내에 발기인 대회를 열어 늦어도 2월초에는 창당을 완료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비명계 ‘원칙과 상식’(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도 1월4일 이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최후통첩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일단 취소했다. 이 대표가 피습으로 쓰러진 상황이라 여론을 의식하지만 물밑에서는 실무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피습 사건 충격에 따른 여론 추이를 살피면서 비대위를 둘러싼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분위기다. 기대했던 컨벤션 효과가 반감되는 듯하지만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대한노인회를 찾아 민경우 전 비대위원의 ‘노인 비하’ 발언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1월4일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호남 민심 잡기에 나섰다. 피습 사건의 여파로 한 위원장의 신변 위협에 대한 긴장감이 커지면서 당과 경찰의 신변 보호도 대폭 강화됐다. 국민의힘 공천 일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도권 일부 지역의 경우 민주당 후보가 정해지면 그에 대응하는 맞춤식 공천을 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대표의 회복 시기에 따라 민주당 공천 일정이 연기되면 국민의힘도 함께 늦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표 피습 사건에 따른 여론의 동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정부와 여당이 ‘김건희 특검법’에 관해 국회에 재의 표결을 재촉하는 속도가 늦춰졌다. 당초 방침은 즉각적인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공을 넘기는 것이었다. 앞서 대통령실은 “특검법이 정부에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히며 야권에 날을 세울 것을 예고한 바 있다. 속도가 늦춰지긴 해도 ‘거부권 행사’ 방침 자체엔 변화가 없으리란 전망이다. 

☞ ‘여야 물밑 공천 내전’ 특집 연관기사 
유혈·폭력 총선 “안 돼” 한목소리…물밑에선 ‘공천 혈투’ 치열
이재명 피습에 정치권 ‘올스톱’…“잠시 멈춤일 뿐 방향엔 변화 없다” 
한동훈식 ‘칼잡이 공천’ 예고에 여당 폭풍전야 
‘시스템 공천’ 신뢰 사라진 野, 유례없는 집안싸움 펼쳐져 
한동훈 컨벤션 효과 위협하는 돌발변수 곳곳에 [신창운의 미리 보는 4·10 총선]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