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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여행 방식 제안하는 《마인 베를린》

“나에게 여행은 ‘공간’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 늘 궁금해한다. 여행 중에는 각 도시의 특성에 따라 공간과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곤 한다. 이런 차이를 발견하는 일은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시간만 보내고 온 것 같은 여행 말고 뭔가 가득 채워 돌아온 것 같은 여행을 담아낸 책이 눈길을 끈다. 최근 출간된 《마인 베를린(mein Berlin)》은 아티스트 박규리씨가 독일 베를린의 중심가에 한 달간 집을 빌려 머물면서 기록한 여행기다.
마인 베를린|박규리 지음|오브바이포 펴냄|292쪽|2만1700원
마인 베를린|박규리 지음|오브바이포 펴냄|292쪽|2만1700원
박씨는 웬만한 곳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합리적인 가격의 집을 빌려 지내면서, 평일엔 천천히 집 주변을 산책하고 느낌 있는 카페나 동네 맛집, 독립 서점, 빈티지숍, 편집숍, 미술관 등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주말엔 플리마켓을 방문하기도 하고,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특별한 숙소를 예약해 ‘여행 속 여행’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이런 기발한 여행 방식이 인상적이다. 한곳에만 머물면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 수가 없고, 숙소를 자주 옮기는 일은 무엇보다 번거로운 일일 수밖에 없는데, 박씨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베를린은 내가 가본 곳 중에 혼자 여행하기 정말 좋은 도시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지만, 유난히 혼자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있는 사람도, 혼자 있는 사람도 자기들 시선 밖으로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시선 안에서 하는 무언가에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이다.” 베를린에서 박씨는 홀로 여행할 때도 외로움보다는 자유롭고 홀가분함을 느꼈다고 한다. 베를린의 카페나 펍, 식당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유대감과 여유로움을 느꼈다고. “도시가 크지 않아 천천히 산책하거나 퀵보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도 좋고, 곳곳에서 수준 높은 그래피티 아트도 만나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발상지이기도 한 그곳에서는 3년 주기로 대규모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열리는데,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현대미술관처럼 다양한 예술과 자유로움이 꿈틀거린다.” 머무르는 여유 없이 숨 가쁘게 ‘핫플’을 향해 이동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여행.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며 그렇게 찍어댄 사진들을 SNS에 올리는 걸로 만족하는 이가 많다. 그런 수박 겉핥기식 여행과 차별화라도 하듯 ‘○○에서 한 달 살기’로 여행 방식을 바꿔 실천에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 출판사 오브바이포가 펴내고 있는 ‘Create’s Space 시리즈’는 저자가 여행 목적으로 찾은 한 도시에 머무르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공간을 소개하고, 차별화된 여행 스타일을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여행서’다. 시간에 쫓기며 여러 곳을 옮겨 다닌 여행은 평면적이라고나 할까. 일정한 곳에서 오래 머무른 여행은 입체적으로, 다시 돌아온 일상까지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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