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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사형수, 교정시설에서 놀고 먹으며 혈세 낭비
교도소는 ‘호텔’이 아니라 죽기보다 무서운 ‘감옥’ 돼야

1995년 11월2일, 흉악범 19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 집행된다. 지존파 두목 김기환 등 일당 6명과 택시를 이용해 부녀자를 연쇄 납치해 살해한 온보현 등이다. 이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흉악범 중 ‘배진순·김철우’의 형 집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언론들은 ‘지존파 일당’의 사형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이들을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다. 한국 범죄사에서 ‘배진순·김철우’는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10대의 나이에 가정집에 침입해 부녀자 5명을 가족 앞에서 성폭행한 가정파괴범이다. 김철우는 살인 전과가 있었으나 배진순은 강도 전과 2범에 불과한데도 사형이 확정됐다. 10대에게 사형이 확정된 것은 1985년 김아무개에 이어 두 번째이며,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사형이 확정돼 집행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당시 사법부는 이들 10대 흉악범들에게 이례적으로 극형을 선고했다. 이것은 잔인한 범죄와 가정파괴범에 대해서는 미성년자라고 해도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26년째 사형 집행 없어 사실상 ‘폐지 국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30일 정부는 사형수 23명에 대해 형을 집행하면서 또 한 번 흉악범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사형 집행은 여기서 멈췄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형제는 존폐의 기로에 선다.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은 계속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고, 정부도 사형 집행에 회의적이었다. 이후 정권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기에는 국제사회의 압력도 한몫했다. 국내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이제 상징적인 의미의 형벌이다. 법률상 사형이 존재하지만 26년째 집행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나 다름없다.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역시 2007년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는 두 번에 걸쳐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사했다. 1996년에는 7대 2로 사형제 존치에 대한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14년 후인 2010년에는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지기는 했으나 5대 4로 존치와 폐지 의견이 비슷하게 나온 것이다.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세 번째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사 중이다. 얼마 전 법무부는 대구구치소에 있던 사형수 유영철과 정형구를 사형장이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감했다. 이곳에는 강호순, 정두영 등 사형수가 수감돼 있다. 이에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 집행시설을 보유한 서울구치소, 부산구치소,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 등 4개 교정기관에 시설 점검을 지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형제 부활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사형 집행을 통해 지지율 반등을 모색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지만 국민 감정에 편승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국익과 외교 문제가 걸려 있다. 지난해 1월 유엔은 우리나라에 사형을 공식적으로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회원으로 받지도 않고, 사형 집행을 하는 국가와 FTA, 자유무역협정도 체결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때 사형 집행을 시도했다가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번에 법무부가 유영철 등을 이감한 것은 날로 기승을 부리는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사형수를 향한 경고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사형수가 된 흉악범들(왼쪽부터 유영철, 강호순, 정두영) ⓒ연합뉴스·시사저널 자료사진

사형수 먹고 재우는 데 연간 18억원 소요

사형수들은 사형제와 관련해 전문가가 다 됐다. 이들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교도소 안에서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황제처럼 군림한다. 사형수는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 신분이다. 구치소 안에서는 ‘최고수’로 불린다. 더 무거운 형량을 받은 수감자가 없다는 뜻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59명이다. 이들 중 민간인 사형수 55명은 전국 5개 교정시설에 수용 중이다. 서울구치소 18명, 광주교도소 13명, 대구교도소 10명, 대전교도소 10명, 부산구치소 4명이다. 군 사형수 4명은 국군교도소에 수용돼 있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지금, 사형수에게 구치소나 교도소는 호텔이다. 실제 범죄자들 사이에는 ‘국립 호텔’로 불린다. 문제는 이를 위해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사형수 1명을 관리하기 위해 드는 연간 비용은 약 3100만원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이들을 먹고 재우는 데 연간 18억원 넘게 들어간다. 심지어 연 1회 이상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비용은 세금으로 부담한다. 2006년 이후 건강보험예탁금이 배정돼 국가 부담으로 건보 가입자와 동일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국가가 흉악범들의 건강까지 챙겨주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사형수는 독방 수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대부분 혼자 방을 사용한다. 물론 구치소의 수용시설 수준에 따라 혼거실에 수용되기도 한다. 사형수는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노역도 하지 않는다. 2008년 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은 사형수도 희망자만 정역(일정한 노역)에 참여할 수 있다. 작업시간은 하루 5~6시간이며, 작업 종류에 따라 노임을 받는다. 그렇다고 위험하고 힘든 노역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인형 눈을 붙이는 것 같은 단순 노역이 대부분이다. 작업을 하지 않으면 독거 사형수는 하루 1시간, 혼거 사형수는 하루 30분 운동시간이 야외 활동의 전부다. 거의 매일 구치소에 있으면서 형 집행을 기다리는 것이 일과라면 일과다. 최고 흉악범인데도 독방에서 노역도 하지 않고 놀고 먹으면서 세금만 축내는 실정이다. 교도소 안에서 사형수들은 일반 수형자들과 달리 빨간 명찰을 단다. 옛날부터 교도소 안에서는 빨간 명찰에게 관행적인 편의가 제공됐다. 사형 집행이 있을 당시엔 ‘곧 죽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마지막 배려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사형수 수형 생활의 특혜로 작용한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유영철. 그는 국내 최단기간(10개월), 최다(20명) 살인범이다. 2009년 미국 유명 잡지가 세계의 연쇄살인범 31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유영철은 이것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고 있다. 구치소에서도 악질 중 악질로 정평이 나 있다. 유영철의 교도소 수감 동기들에 따르면 무조건 힘든 것은 열외고, 부식이 오면 제일 맛있고 큰 것부터 차지한다. 항상 남들 머리 위에 있으려 한다. 실제 2011년에는 소지품을 검사하는 교도관에게 달려들어 “내가 사이코인 걸 모르냐”며 소동을 부렸다. 2014년 12월에는 포르노물을 불법 반입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소지품 검사를 받다가 교도관의 멱살을 잡고 난동을 부렸다. 당시 그는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건들지 마라’며 폭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안양에서 초등학생 2명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정성현은 사형수 중에서 ‘소송왕’으로 불린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협박을 당해 누명을 썼다’며 국가 등을 상대로 4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가 하면, 서울구치소장을 상대로 징벌처분 소송을 내기도 했다. 정씨의 소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사에 ‘살인마’라는 표현을 했다는 것을 문제 삼아 한 지역 신문사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9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정두영은 2016년 8월, 대전교도소 담장을 넘어 탈옥하려다 붙잡혔다. 삼중 울타리 중 두 개를 넘고 마지막을 넘다가 발각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탈옥에 성공했다면 십중팔구는 또다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것이다. 여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은 지금까지 한 번도 피해자나 유족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독방 안에서 취미생활에 푹 빠져 있다고 전해진다. 그림이나 조각은 실력이 상당하다고 알려졌다.
ⓒ연합뉴스
육군 22사단 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아무개 병장이 61번째 사형수가 됐다. ⓒ연합뉴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법 개정 필요

최근 우리 사회는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10대들의 범죄도 경악할 정도다. 충남 논산에서 중학생(15)이 어머니뻘 되는 4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행, 나체 촬영, 협박, 가학적인 성행위 등이 드러나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국민의 치안 불안감은 공포에 가까워진다. 범죄자는 갈수록 악랄하고 잔혹성을 띠는 데 반해 이들을 단죄할 법은 그야말로 ‘물러터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벌 제도나 교도 행정 등은 사형이 시행될 당시에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제의 대안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이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여당도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모양새다. 흉악범인 사형수들이 교정시설에서 ‘놀고 먹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흉악범들에게 교도소는 ‘호텔’이 아니라 죽기보다 무서운 ‘감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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