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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고금리에도 가계부채액 수직 상승
전문가들 “정책 당국 간 일관성 있는 공조 노력 필요”
9월 주담대 증가액 2조4000억원대로 확대
실제로 9월말 기준으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84조6374억원을 기록했다. 8월말(680조8120억원) 대비 3조8254억원이나 증가했다. 지난 5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세다. 증가 폭 기준으로도 8월 월간 증가 폭(1조5912억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늘어난 가계대출을 종류별로 세분화해 살펴보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2조4611억원 증가한 515조460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3개월 동안 주담대는 6월 1조7245억원,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이번 주담대 증가 폭은 1년9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라던 8월 기록도 경신했다. 5대 은행 신용대출 역시 1년10개월 만에 반등했다.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109조4950억원으로 8월말(108조4171억원) 대비 1조원 넘게 증가했다. 대출 배경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 흐름을 볼 때 전체 은행권 가계대출은 당분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8월 중 금융시장’에 따르면 지난 8월말 전체 은행권 가계대출은 6조9000억원 증가해 잔액만 1075조원에 달하며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8월 증가 폭(6조9000억원)은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25개월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증가 폭은 4월 2조3000억원, 5월 4조2000억원, 6월 5조8000억원, 7월 5조9000억원, 8월 6조9000억원 등으로 불어나는 추세다. 앞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전세보증금 반환용 주담대 수요가 가계대출 관리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세 시세가 기존 보증금보다 낮은 이른바 역전세가 급증하면서 모자라는 보증금을 메우려는 집주인의 대출이 올해 하반기 이후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계대출은 고금리에 부동산 시장 한파가 지속되면서 7조8000억원가량 감소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 경제 부실화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축소 흐름을 멈추고 다시 증가세로 본격 돌아선다면 장기적으로 금융 안정은 물론 경제 안정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전세보증금 반환 수요가 연착륙 관건
특히 대내외 복합위기로 고금리, 고물가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가계빚 부실이 금융기관 등으로 전이돼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득 등 여러 경제 기초 여건을 고려할 때 집값이 여전히 높은 수준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가계빚 증가는 경제·금융위기의 잠재위험을 키운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21년 8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까지 3.0%포인트 끌어올렸지만 정작 통화정책 효과는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동결을 유지하며 상당 기간 고금리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부동산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는 매달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핵심 원인으로는 금리와 부동산 정책 간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해온 반면 정부는 부동산 시장 및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오히려 가계대출을 늘리는 엇박자 정책을 펼치면서 금리 인상 효과가 희석됐다는 의미다. 가계부채를 낮춰야 한다는 당국과 한국은행의 입장에도 일부 정책은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하는 등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 규제 완화다. 최근 가계대출은 신규 아파트 매매가격과 거래량이 살아나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수도권 일부 아파트 가격은 전고점에 근접하거나 경신하며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정부가 전매제한 기간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푼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올해 1월3일 규제지역 및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 해제, 전매제한 기간 완화,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 폐지, 중도금대출보증 기준 폐지 등 규제를 완화했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 않고 저금리로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가계대출 상승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은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가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약하고 금융 불균형 해소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정부 정책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부채질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연체율 상승 등 부실 가능성도 커져
최근 공개된 한국은행 제13차 금융통화위원회(7월13일 개최) 의사록을 살펴보면, 금통위원들은 높은 가계부채 규모에 대한 우려감을 드러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05.0%로 주요국 중 스위스·호주 등을 제외하면 가장 높다. 한 금통위원은 “현재 부채의 디레버리징(규모 축소)이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며 “부채의 디레버리징을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 향후 장기적인 금융 안정을 확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일부 위원은 “최근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세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그간 디레버리징이 매우 완만한 속도로 진행된 가운데 최근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남에 따라 금융 불균형 해소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시장 기대감 커지면서 금융 당국 규제 효과도 “글쎄”
사상 최악의 고금리에도 가계부채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면서 금융 당국 역시 고민에 빠졌다. 금융 당국은 50년 주담대 축소 등 일부 규제에 나선 상황이다. 50년 만기 주담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고 정책 주담대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의 대상도 축소해 서민과 실수요층에게만 공급되도록 보완책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DSR 산정 때 중장년층의 미래소득 감소 가능성을 반영해 만기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DSR 산정 시 만기는 원칙적으로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는데 은퇴 후 소득 흐름에 따라 상환능력을 따진 후 대출 만기 설정에 반영하겠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 의존도가 큰 40세 차주는 60세 정년을 감안해 만기를 20년으로 제한하는 방식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스트레스 금리, 미래소득 변동 가능성 반영 등 대책이 규준에 담겨 있었지만 실효성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편이 무분별한 대출을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시장 기대가 커진 만큼 이 같은 추세를 멈춰 세울 수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향후 긴축 효과 발생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관측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추진 속도를 조절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포함한 경제 여건을 지켜볼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금리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설령 대출금리가 오르더라도 결국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대출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도한 가계부채는 장기 성장세를 저해하고 자산 불평등을 확대하는 등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디레버리징을 지속하기 위한 정책 당국 간 일관성 있는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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