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씨가 미국에서 창업해 전설이 된 비디오 대여점 이야기
사라진 비디오 추적 형식 빌려 VHS 시대 추억 소환
비디오 가게 딸’ J가 나는 늘 부러웠다. 온갖 영화를 공짜로 보다니. 신작 비디오를 가장 먼저 수혈받다니…. 누군가는 ‘비디오 가게 딸의 지인’인 나를 부러워했을 수도 있겠다. J 아버지는 딸의 같은 반 친구라는 이유로 연체료를 탕감해 주곤 했으니까. 신작 비디오가 구작으로 넘어가는 시기엔 벽에서 떼어낸 영화 포스터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비디오 대여점이 동네 ‘핫 플레이스’로 호황을 누리던 1990년대 이야기다. 《후뢰시맨》 《바이오맨》류의 특촬물로 비디오 세계에 눈을 떴던 나는, 홍콩 무협 마니아 아빠, 할리우드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 사나이들 의리에 환호했던 오빠, 그리고 부모님 몰래 부랴부랴 돌려 보던 빨간 띠지의 성교육물(?)들 덕분에 장르에 대한 편식 없이 다양한 영화를 무섭게 섭취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봤던 시기였을 것이다.
영화로 가는 또 다른 문, 그러니까 음지의 세계로 안내해준 건 대학생이던 사촌 언니였다. 언니 방에는 늘 비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VHS 테이프들이 있었다. 둘밖에 없는 방에서 언니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거, 해적판이야. 복제 테이프.” 개중엔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떠돌던 그 유명한 《러브레터》 불법 복제 테이프도 있었다. 얼마나 복제에, 복제에, 복제에, 복제를 거친 것일까. 너덜너덜해진 테이프는 상태가 몹시 나빴다. ‘오겡끼데스까’ 대사가 흘러나오는 구간은 하울링 현상이 낄 정도로 늘어짐이 심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오~오오오으으게에에끼이이히…”, 돌이켜보면 그건, 또 다른 의미의 영화적 체험이었다. 하나의 VHS 테이프 안에 온전히 자기만의 개성을 뿜으며 앉아있는 영화. 디지털에선 느끼지 못하는 어떤 유한함. 물성으로 전해지는 그 무엇이 그 안에 있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호환과 마마라는 표현을 대중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비디오 경고 멘트다. 그러나 ‘호환·마마’보다 마음이 가는 건, ‘한 편의 비디오가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실현됐다고 믿는다. 그 시절,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위용을 뽐내던 VHS 테이프들은 지금의 시네필과 영화인들을 키운 거대한 원동력이 됐을 테니 말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VHS. 그러나 ‘DVD’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고,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이라는 대체재 앞에서 운명을 다했다. 비디오 가게들도 빠르게 하나둘 동네에서 방을 뺐다. 많은 시네필이 그랬듯, 나는 폐업하는 비디오 가게를 돌며 VHS 테이프들을 저렴하게 사 모았다. 그러나 애지중지 보관하던 VHS 테이프는 어느 순간 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 VCR 플레이어가 고장 나 처분한 후로는 돌려볼 일이 없어졌고, 공간도 너무 차지해 고민을 안겼다. 이걸, 어쩌지? 때맞춰 울린 엄마의 잔소리. “쓰지도 않을 물건, 정신없이 뭐 그리 품고 있니.” 쓰지도 않을 물건이라는 오명이 붙은 VHS 테이프는 그렇게 버려졌다. 동시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VHS 테이프는 거짓말처럼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펑.
그 많던 비디오는 어디로 갔는가
잊고 있던 그 시절 추억을 일깨운 건, 다큐멘터리 《킴스 비디오》(Kim’s Video)다.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본점을 뒀던 ‘킴스 비디오’는 1980~90년대 미국 영화광들의 성지로 불렸던 전설적인 비디오 대여점이다. ‘김씨네 비디오 가게’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창업자는 한국인 김용만씨다. 1986년 뉴욕의 세탁소 한쪽 공간에서 잉태된 ‘킴스 비디오’는 11개 체인점에 300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로 한때 승승장구했다. 《대부》의 마틴 스콜세지, 《브로크백 마운틴》의 리안, 《조커》로 유명한 토드 필립스, 그리고 (600만 달러나 연체했다는) 코엔 형제 등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 가게가 전설로 불린 데는 5만50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VHS 테이프 양도 양이지만, 발품 팔며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희귀 영화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해적판들의 역할이 컸다. 희소성 가득한 컬렉션은 영화라는 꿈을 먹고 사는 이들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불법 복제 테이프를 대여했으니, 법적 분쟁은 피할 수 없는 부분. 김용만씨는 저작권 소송을 쉴 새 없이 당했고, FBI로부터 가게 수색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럼에도 가게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김용만씨가 지닌 나름의 논리 때문이었다. 그가 불법으로 유통한 영화들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배급사의 상업적 이윤 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고에 영원히 방치될 처지에 놓인 영화를 대중에게 배달하고자 했다. 실제로 ‘킴스 비디오’를 통해 대중을 만날 기회를 얻은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복제를 통해서라도 해방시켜준 김용만씨의 행보에 지지를 보냈다. 그러니까 킴스 비디오는 단순한 비디오 대여점 이상이었다. 그곳은 영화 라이브러리였고, 아카이브 현장이었으며, 영화 놀이터였다. 해적질이 그 어떤 영화 기관도 해내지 못한 방대한 양의 영화적 아카이브를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인 동시에 흥미롭다.
전 세계 많은 비디오 가게가 그랬듯 ‘킴스 비디오’ 역시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가게는 2009년 폐업했다. 일부 직원은 넷플릭스로 자리를 옮겼다. ‘킴스 비디오’ 회원이었던 데이빗 레드몬과 애슐리 사빈 감독은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 많은 VHS 테이프는 어디로 갔는가. 영화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떠밀려 사라진 비디오들의 행방을 뒤쫓는 한편, ‘킴스 비디오’의 영혼이었던 김용만 대표를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갱스터, 공포, 스릴러 등 온갖 장르적 분위기를 본격적으로 입는다.
전반적으로 추적의 형태를 띠고 있는 영화지만, 엄밀히 말해 ‘극적으로 재구성된 추적’에 가깝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했던 VHS 테이프들의 행방은 뉴스를 조금만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영화가 미스터리하게 접근해 가는 김용만씨의 이력 또한 과거 신문에 적잖이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킴스 비디오》가 미스터리 추적 형식을 빌린 것은 ‘킴스 비디오’ 역사와 VHS 테이프 행방에 드라마틱한 면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5만5000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뉴욕대학교나 도서관이 아닌,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의 작은 도시 살레미라는 건 너무 엉뚱하지 않나. 두 감독은 비디오가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알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 추적을 이어 나간다.
이게 끝이 아니다. 살레미로 날아간 감독들은 먼지 쌓인 채 방치되고 있는 VHS 테이프를 다시 뉴욕으로 가져오고자 벤 에플렉 영화 《아르고》 속 작전을 모방한다. 《아르고》는 1979년 이란에 억류됐던 미 대사관 직원 구출 작전을 그린 영화. ‘아르고’라는 제목의 가짜 SF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를 세워 CIA 요원들이 이란 현지에 영화 스태프로 위장해 들어가 인질들을 구출했던 작전을, 데이빗 레드몬과 애슐리 사빈 감독은 《킴스 비디오》에 접목해 비디오 구출에 나선다. 이 얼마나 무모하고 기발한 발상인지. 이 작전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이 영화의 마법이 있다. 살레미에 있던 비디오들이 다시 뉴욕의 품으로 안기는 모습에서 감동이 전해지는 건, 세상 한편에 밀려나 있던 그 시절이 함께 돌아오는 듯한 묘한 착각을 안기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누워 클릭 하나로, 1.2배속으로, 알고리즘이 선별해 주는 영화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낡고, 손때 묻고, 화질도 들쭉날쭉인 존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신들을 발견해줄 시청자를 기다리는 모습이 왜 그리 근사하게 보이는지. 영화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을 그려낸 《킴스 비디오》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