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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좁은 지역에 집중호우로 홍수 대비 어려워져”
이상기후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지구온난화
극한호우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극단적인 비’를 뜻한다. 기상청이 올해부터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에 사용한 용어다. 시간당 50mm, 3시간에 90mm를 동시에 충족할 경우에 쓴다. 공식화된 개념은 아니고, 일정 기준 이상의 극단적 폭우가 내릴 때 피해를 줄이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7월14일, 전북 군산시와 경북 문경시에는 하루에만 372.8mm와 189.8mm의 비가 내려 해당 지역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일강수량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북 전주시에 251.5mm, 부안군에 194.5mm, 충남 서산시와 금산군에도 각각 208.1mm와 195.1mm의 폭우가 쏟아져 ‘7월 일강수량 최고치’를 경신했다. 극한호우라는 말이 딱 맞는 폭우다. 한국 땅에 이처럼 강한 비가 내린 원인은 북태평양고기압 때문이다. 한반도까지 뻗은 북태평양고기압은 여름철 위험 기상을 알리는 지표다. 보통 장마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한랭다습한 오호츠크해 기단 사이에 형성된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그런데 지난 6월 시베리아 지역의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이상고온현상이 발생해 북극 기온이 평년보다 크게 올라가면서 북극 얼음이 녹아 수증기를 다량 포함한 찬 공기가 발생했다. 이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를 향해 내려와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에 머물도록 해서 강한 정체전선을 만들었다. 이 정체전선에 6월 이후 중국 남부까지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수증기가 지속적으로 다량 유입되면서 많은 비가 내리기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 이는 ‘대기의 강’ 현상이 기후변화로 더욱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대기의 강은 바다 위에 형성된 거대한 수증기가 마치 한 줄기 강처럼 대기 중 좁은 길을 타고 흘러 육지 상공으로 이동해 엄청난 강우를 일으키는 ‘수증기 이동’ 현상이다. 근래 들어 이 대기의 강이 자주 흐르고 있다. 2020년 54일간 이어진 ‘최장 장마’ 당시에도 우리나라에 수증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증기 공급은 엘니뇨와 기후변화에 따른 태평양과 대서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이 주된 영향을 미쳤다. 바다의 기온이 오르면 수증기 증발량이 많아지고, 결국에는 비구름을 강화시키는 효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동태평양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까지 가세해 한국의 올여름 장마는 시작부터 폭우를 쏟아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주목받는 까닭은 지구온난화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지구 전체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대기의 에너지가 세지고,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라 높아진 에너지는 대기를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만든다. 이전에 수증기 이동 속도가 자전거 정도였다면 지구온난화로 더워진 대기의 속도는 중형차와 같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비구름을 만들고, 강한 비를 뿌린다.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NCEP)는 7월5일 하루 세계 평균기온이 17.18도로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1880~2012년 지구 평균기온은 0.85도 상승했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도 지난 6월 424ppm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하면 50% 이상 높아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국의 폭우 피해도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정태성 기후영향분석팀장은 “기후변화로 한국이 온난화해지면서 비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내리는 게 아니라, 고온다습한 기온으로 특정 시간에 좁은 지역에 격렬하게 쏟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그 결과 홍수 대비가 더 어려워졌다”고 강조하고 있다.지구온난화, ‘거주불능 지구의’ 암울함 보여
불행히도 기후위기는 ‘기후재난’으로 일상에 침투하는 강도가 세질 거라는 전망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더 확장하고, 강한 비를 내릴 위험이 더 잦아져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극한호우가 내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지구가 더워지면 대기가 품을 수 있는 수증기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극한호우 기준에 부합하는 비가 2013년 48건에서 2017년 88건, 2020년 117건, 지난해 108건 등 연평균 8.5%씩 늘고 있다. 경북대 지리학과 강남영 교수의 ‘기상 현상 예측 연구’에서도 기후 구조가 바뀌고 있음이 드러났다. ‘기후 예측 모델’로 북서태평양 태풍의 반응 양상을 관찰한 결과 2013년 이후부터 기후적 관계를 벗어나는 특이값이 관측됐다. 이는 전 지구의 기후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지구의 기후는 항상 변해왔다. 1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6도나 낮았다. 하지만 지금의 온난화 문제는 기온이 올라가는 그 자체가 아니라 속도다. 산업혁명 이후 100여 년 동안 0.85도 오른 기온은 과거 지질시대라면 수천에서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났던 온도 상승이다. 이로 인해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수백, 수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자연재해를 10~20년에 한 번씩 겪고 있고, 1980년 이래 위협적인 폭염과 홍수가 발생하는 빈도가 50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금의 더위는 미래를 미리 맛보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만 나타나던 폭우·폭염·홍수가 오늘 당장 어떤 나라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세계 전역이 기후변화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기후재앙은 이제 전쟁에 버금가는 현실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이 땅을 연이어 두들겨온 기후 시스템은 ‘거주불능 지구’라는 암울함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후변화에 과연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그것만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길이다. 불행히도 극한호우는 내년, 내후년에 더 심해질 전망이다. 그에 따른 대비를 철저히 세우지 않으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나 예천 산사태의 아픔을 매년 겪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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