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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으로 싸우더니…3월 조기 추경 합의로 봉합
“역풍 불라, 이쯤에서 그만”…화해 모드로 급속 전환
“갈등 지속 시켜봤자 서로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 분석
강 시장-시의회, 전쟁 선포…“화풀이성 예산삭감” vs “혼자만 정의로운 척”
양측 사이는 지난해 본예산 심의 때부터 틀어졌다. 시의회는 지난달 14일 열린 본회의에서 증7조1102억원의 예산안을 의결했다. 증액 없이 감액(2089억원)만 있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심의 결과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상 초유의 증액 없는 예산 삭감은 ‘감정싸움’의 소산이었다. 시의원들은 지역구 민원을 이유로 이른바 ‘쪽지예산’을 요구했고, 광주시는 민선 8기 시장 공약과 관련된 사업 예산을 제시하며 협의에 나섰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맞교환 협의가 불발하면서 집행부는 자치구 민원사업 등 광주시의회 요구 예산을 받아주지 않았고, 광주시의회는 ‘증액 없는 삭감 예산’ 의결로 맞섰다. 예산 삭감 이후 양측은 가시 돋힌 설전을 주고받았다. 강기정 시장은 “예산심의권 남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무창 시의회 의장은 “원칙을 지켰다”며 맞섰다. 지난달 14일 오전 광주시의회 본회의장. 이날 열린 제312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연단에 오른 강기정 광주시장은 시의원들 면전에서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광주시의회가 예산을 무더기 삭감한 터였다. 강 시장은 “의원 여러분들이 요구한 예산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광주시 집행부가 충분히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풀이식 예산 삭감을 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강 시장은 발언 도중 울먹이기까지 했다. 책임은 온전히 의회에 있고, 피해는 온전히 시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강 시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에 대한 피해는 온전히 시민께 전가될 것이다. 더 원칙 있는 시정을 잘 펴가겠다”고 뼈 있는 말을 던진 뒤 연단을 내려왔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폐회사에서 쪽지 예산 요구나 반영 여부가 아닌 시의 탓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정 의장은 “삭감 권한 있는 시의회 입장에서 쪽지 예산 없이 원칙을 지켜냈다는 점을 양지해주기를 바란다”며 “상임위 심사 때 집행부 간부 공무원들이 동의하고 합의한 사업들이 예결위 심사에서 부동의로 뒤집혀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지 못한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일부 시의원들은 “강 시장의 독선과 아집이 부른 참사다. 본인만 정의로운 척한다”고 맞받아쳤다.싸울 때는 언제고…전략회의 후 만찬 ‘화기애애’
이때만 해도 시청 안팎에선 양측 간에 감정의 골이 워낙 깊은 탓에 냉각기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관계 개선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각자 위치에서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가면 된다”고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양측은 지역경제 위기 극복에 뜻을 모으는 것을 명분 삼아 관계 개선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지난 27일 오후 시의회 대회의실에서 강기정 시장, 정무창 시의회 의장, 각 상임위원장, 윤영덕 국회의원, 안도걸 시 재정경제자문역 등이 참석해 ‘제2차 광주전략회의’를 했다. 광주전략회의는 시장, 시의회 의장, 교육감 등이 모여 지역 핵심 현안을 논의하는 플랫폼이다. 양측은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쌓인 앙금을 털어내고 조기 추경에 합의했다. 앞으로는 예산 편성·심의 단계에서 협의도 정례화하기로 한발짝 나아갔다. 양측은 회의에 앞서 강기정 시장과 정무창 시의회 의장, 문영훈 행정부시장, 김광진 문화경제부시장, 시의회 상임위원장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화해 모드는 회의를 마치고 시청 인근 식당에서 열린 만찬에서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만찬에는 강 시장과 정 의장은 물론이고, 비서실장과 정책보좌관 등 정무라인도 참석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시장과 정 의장이 인사말을 할 때 참석자들이 일제히 시장과 의장의 이름을 연호하는 등 분위기도 뜨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만찬에 참석했던 광주시 관계자는 “언론에서 갈등이 봉합됐다는 표현을 썼던데, 봉합이 아니라 완전한 화합을 이룬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양측은 내친김에 30일 본회의에서 정무창 의장의 개회사와 강기정 시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서로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냈고 본회의 직후 전체 의원 간담회와 의회운영위원회를 통해 조기추경 시기(3월 13일~22일)까지 확정해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측이 증액 요구한 사업 예산이 모두 삭감돼 ‘너 죽고 나 죽기’식이라는 혹평까지 나왔던 불과 43일 전에 비해 180도로 선회한 태도다.엇갈린 평가…“만시지탄” vs “개운치 않은 뒷맛”
양측이 전격적으로 화해를 이룬 배경은 명분에서 서로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태는 승자없는 진흙탕 싸움 꼴이 됐고 시정을 총괄하는 강 시장으로서도 독선적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시의회 입장에서도 지역구 민원성 예산 요구가 꺾이자 시정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난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시장공약 예산과 지역구 민원성 예산 등 실리를 잃은 양측 입장에서는 모두 아쉬운 상황이었다. 양측의 화해가 드라마틱한 만큼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엇갈린다. 만시지탄이라는 입장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는 평가가 동시에 온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지역발전을 위해 어느 때보다 협치와 상생협력이 필요할 때 수레 두 바퀴인 광주시와 시의회가 삐걱대 시민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는데 잇따른 회동 등을 통해 감정의 골이 메워지고 지역발전을 위해 맞손을 잡아 다행이다”며 양측의 화해 분위기를 크게 반겼다. 반면에 그동안의 갈등이 일단 봉합된 부분에 대해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광주시와 시의회가 예산을 대리전 도구로 삼음으로써 사유화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지난 ‘너 죽고 나 살기식’ 예산 전쟁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는 실종(失联)됐다. 집행부와 시의회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떠넘겨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허망하게도 시민들의 기억 속에는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어떤 잘못을 어떻게 했는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딱하다. 승자는 없었다. 제대로 된 논란도 물론 없었다. 해명도 없었다. 시민이 빠진 채 일방적인 ‘그들만의 예산전쟁’ 선포와 종전 선언만 있었을 뿐이다. 양측의 전격 화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갈등은 풀렸지만 변덕 모드에 춘래사춘(春來似春)은 미지수
또한 ‘쪽지예산은 옳지 않다’는 강 시장의 소신이 예산심의권과 절충을 도출해내는 능력 부족으로 좌초된 것은 아쉽고 씁쓸한 결말이다. 강 시장은 취임 후 이른바 시의원들의 요구에 따른 ‘쪽지 예산’, ‘민원성 예산’ 편성 관행을 고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정히 명분이 그러하다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칭찬받을 일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광주의 예산삭감 사태는 시정을 움직이는 두 수레바퀴인 시와 시의회가 금도를 넘은 정치공방만 되풀이하다 허탈하게 마감된 셈이다. 언제 싸웠느냐듯이 뒤돌아서서 맞손을 잡는 화해 제스처는 수가 틀리면 언제 사이가 다시 틀어질지 모른다는 충분한 의심을 남기면서다. 광주시와 시의회 간에 사상 유례없는 ‘예산 삭감’으로 빚어진 갈등이 조기 추경 합의로 풀렸지만 향후 양측 관계 정상화에 ‘확실히 봄이 온 것’(春來似春)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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