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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김정은, 폭군 이미지 벗고 국가지도자 꿈꾸는 데 한계

2018년 한 해는 누가 뭐래도 김정은의 시기였다. 각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싱가포르에서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2012년 집권 이후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으며 굳어진 호전적인 폭군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북한 최고지도자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앞으로 서울 답방 약속 이행이나 추가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이런 ‘신분 세탁’은 가속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사실 김정은이 보여준 변화의 모습은 극히 상징적이고 이미지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판문점과 싱가포르 센토사섬 등 세계의 이목이 쏠린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 정교한 선전·선동을 구사함으로써 국제여론과 사람들의 인식을 상당히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평양이 멀다 하면 안 되갔구나”라며 유머러스한 코드의 화법을 구사하거나 “우리 도로 사정이 불비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그동안 그에게 가졌던 폭군의 인상을 망각할 수 있었다. 최근 광화문광장 등에 등장한 ‘백두칭송’ 운운하는 단체의 행보는 그 극단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고(故) 김정남 ⓒ 연합뉴스


5년 전 고모부 장성택,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하지만 김정은의 이런 변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잔혹한 지도자’로 기억하게 만드는 잔상은 여전하다. 이달로 5주년을 맞는 장성택 처형은 그중 하나다. 고모부인 장성택 당시 노동당 행정부장을 무참히 살해함으로써 김정은에게는 ‘권력을 위해서는 친인척도 죽이는 걸 서슴지 않는 잔혹한 지도자’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젊은 지도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면서 개혁·개방 가능성에 외부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잔혹한 숙청은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을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린 후계자 김정은을 위해 후견인 역할을 맡긴 인물인 장성택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북한 권력 안팎에서의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권력 최고 실세로 김정은 시대 들어 승승장구할 것으로 점쳐지던 장성택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평양 핵심 고위간부층 내부에서는 김정은 공포정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됐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도 처형하는 모습을 본 뒤 간부들 사이엔 ‘우리는 파리 목숨’이란 생각이 퍼졌다는 것이다. 측근 노간부들도 김정은의 비위 맞추기에 몰두해 김기남 당시 노동당 비서는 “오묘하고 신비로우십니다”란 말을 김정은에게 쏟아내고 있다는 첩보까지 우리 당국에 입수되기도 했다. 숙청의 두려움에 사의를 표한 한 조직지도부 고위간부는 사표가 반려된 뒤 처벌당했다고 한다.

장성택 처형의 경우는 형식적이더라도 ‘사법 절차’를 거쳤다.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통해 반역죄로 사형을 집행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2017년 2월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의 경우는 이복형을 은밀한 테러 형태로 살해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한때 권력승계 1순위로 점쳐지던 인물이 평양 당국이 파견한 공작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점에서도 국세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백주에 사건이 벌어진 데다, 치명적 독극물 ‘VX’를 이용했다는 점도 파장을 키웠다. 무엇보다 이복동생인 김정은 위원장의 암살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비판여론은 높아졌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김정일 후계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암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결혼·동거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난 것만 3명의 여성에게서 모두 합쳐 3남2녀를 낳았다. 후계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고 밀려난다는 건 곧 몰락을 의미했다. 김정일의 여인들과 그 소생들이 죽음을 무릅쓴 권력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던 이유다. 생전에 김정남이 남긴 글에서는 호두 속과 같이 어지러운 김씨 일가의 속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 일본 언론인과 2011년 3월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제가 유학을 떠난 뒤로 저의 이복형제들인 정철·정은·여정이 태어나면서 부친의 애정도 그들에게 쏠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완전 자본주의 청년으로 성장해 북한에 돌아간 때부터 부친께서는 저를 경계하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친의 기대 밖이었을 것입니다”(고미 요지 저,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중에서) 라고 토로하고 있다. 

 

2013년 12월12일 양손이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잡힌 채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법정에 서 있다. ⓒ 연합뉴스


이복형 김정남 독극물로 잔인하게 살해

잔혹하고 은밀하게 이복형을 살해하고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고모부를 잔혹하게 처형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말 이후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국제사회를 향해 화해와 대화·협력의 손짓을 하고 있다. 1년 넘은 이미지 변신의 노력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에 우려를 제기하며 오랫동안 감시의 눈길을 보내온 국제단체와 인사들은 김정은을 겨냥한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유엔 총회 인권 담당인 제3위원회는 11월15일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억압적 조치의 즉각 중단과 개선을 촉구하는 대북 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회원국 가운데 어떤 나라도 표결을 요청하지 않은 상황이라 컨센서스(전원 동의) 형태로 채택이 이뤄졌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우선시해 온 문재인 정부도 61개 공동제안국의 일원으로 채택에 동의했다.

이런 움직임은 올 한 해 김정은 위원장이 공들여온 대남, 대미 유화 분위기 조성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대외 전략·전술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권 상황에는 특별한 진전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듯 지난해 결의안의 기조나 문구가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대북 인권결의안은 “북한에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현재까지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중대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범 등을 가둔 강제수용소의 즉각적인 폐지와 정치범 석방, 인권침해에 책임 있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책임규명 등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인도에 반하는 범죄 행위에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선별적 제재와 같은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의 결론과 권고사항을 검토하고 책임규명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 대목이다. 사실상 김정은을 지목한 것이다.

올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유화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하지만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비판과 지적은 그 문턱이 낮아지지 않은 듯하다. 그 중심에는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한 장성택 처형과 김정남 암살이란 두 생채기가 또렷하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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