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문제 ‘원칙’ 강조하더니…유명 연예인·유튜버에게만 금전보상 제시 정황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 랜드로버가 차량품질 및 보상방식을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고가(高價)의 랜드로버 차량에서 잦은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는 제보가 줄을 잇는 가운데, 유사한 품질 문제가 발생해도 소비자의 ‘지명도’ 등에 따라 보상이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또 랜드로버가 차량의 ‘심장’ 격인 엔진에서 세 차례나 결함이 발생한 차량을 공식인증 중고차로 되팔려 한 정황도 드러나면서, 랜드로버가 한국 소비자를 ‘호구’(虎口)로 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8월 품질 문제 점화…11월 ‘집단소송’ 여론 들끓어
랜드로버 품질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 건 지난 8월이다. 당시 한 종합편성채널이 1990년대 활동했던 인기가수 A씨가 자동차 딜러에게 폭언 등의 ‘갑질’을 했다고 보도했다. 지목된 A씨는 혼성그룹 ‘잼’ 출신의 황현민씨. 황씨는 자신을 향한 원성이 들끓자, 언론 인터뷰와 SNS를 통해 “잦은 차 품질 문제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 벌어진 일”이라고 토로했다. 자신이 행패를 부린 것은 맞지만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차가 도로에서 멈춘 것만 수차례인데 랜드로버가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실제 두 달여가 흐른 뒤, 랜드로버는 전격적인 리콜(시정조치)을 단행한다. 국토교통부는 10월8일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에서 수입해 판매한 5개 차종 1만6022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조사 결과 ‘디젤엔진 크랭크축 소착 결함’으로 시동꺼짐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대상 차량은 2010년식부터 2016년식까지 3.0 디젤엔진이 장착된 레인지로버와 황씨가 탔던 디스커버리4 등의 모델이었다. ‘결함에 시달렸다’던 황씨의 주장에 힘이 실린 셈이다.
이후 황씨는 랜드로버코리아와 판매위탁사 등을 고소한다. 자동차제작자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 그 결함 사실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 공개하고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는 자동차관리법 제31조 제1항, 같은 법 시행규칙 제41조 제1항 등을 어겼다는 것이다. 또 랜드로버가 품질 문제를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황씨는 그 근거로 랜드로버의 시동꺼짐 현상 등의 결함이 보고된 것이 2016년 1월부터로, 당시 동일 증상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해외보도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즉, 2년간 같은 논란이 반복됐는데 랜드로버가 아무런 조사·조처를 내놓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결국 논란은 ‘집단소송’으로 옮겨 붙었다. 30만 명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인 성명준씨가 10월31일 올린 ‘랜드로버 더는 못 타겠습니다’라는 영상이 발화점이 됐다. 랜드로버 차량을 산 지 4일 만에 발생한 주행품질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으며, 후방카메라 작동오류로 사고까지 났지만 판매사와 본사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게 영상의 주 내용이다. 해당 영상은 130만 회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랜드로버 품질 문제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이후 성씨는 ‘끝까지 가겠다’는 영상을 추가로 올린 후, 황현민씨와 손잡고 같이 싸울 수 있는 차주들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유명인만 별도 보상?…딜러사 “합의, 이상한 일 아냐”
랜드로버 피해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성씨. 그러나 상황은 11월 들어 급변했다. 영상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랜드로버가 성씨에게 접근해 합의를 종용했다는 얘기가 랜드로버 차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실제 성씨는 지난 11월28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지쳤다”며 집단소송을 진행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랜드로버와 합의했냐’는 질문에는 “(합의를) 결정한 것이 없고 보류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랜드로버가 먼저 보상을 제시한 것은 맞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답변이 곤란하다”며 확답을 피했다. 이후 성씨는 12월5일 ‘랜드로버 관련 책임질 수 없는 언행을 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는 영상을 올린 후, 문제 차량을 팔았으며 랜드로버 사태와 관련해서는 추가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고 알렸다.
만약 성씨가 랜드로버로부터 보상 제의를 받은 것이 맞다면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간 랜드로버가 밝힌 공식 입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소비자들이 품질 문제를 제시할 때마다 랜드로버는 ‘차량 구입 후 1년 내 중대한 품질 문제가 동일한 이유로 3회를 초과해 발생했을 경우’만을 보상 및 환불 대상 차량으로 규정해 왔다. 예를 들어 1년간 엔진 고장이 3번 발생하더라도 같은 원인이 아니었다면 무상수리 외에는 어떠한 금전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성씨의 경우 차량 품질 하자가 엔진 외 여러 갈래에서 발생했다. 그럼에도 랜드로버가 먼저 연락을 해 환불 및 신차 가격에 상응하는 금전보상 등을 약속했다면, 명백하게 국내 소비자를 신분과 상황에 따라 차별해 대우한 셈이다.
실제 취재 결과, 성씨와 같은 대리점에서 SUV를 구입한 후 잦은 품질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또 다른 고객 A씨는 수차례에 걸쳐 차량이 입고됐음에도, 무상수리 외에는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약속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서울 한 지점에서 랜드로버 차량을 구입한 후, DPF(디젤 미립자 필터) 및 디스플레이 이상 등을 수차례 겪었다는 B씨 역시 “(성명준씨) 사과 영상을 보고 성씨가 아니라 랜드로버한테 화가 났다”며 “딜러사에서는 차량에 문제가 있어도 본사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환불 등이) 어렵다고만 했었는데, 실상은 지명도에 따라 소비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랜드로버가 소비자의 행태나 이름값에 따라 ‘제멋대로 보상안’을 마련한 것은 앞선 황현민씨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황씨가 행패를 부렸다는 당일, 해당 딜러사인 C사의 대표 P씨 역시 황씨에게 신차 가격에 준하는 보상을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C사 관계자는 12월5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합의 과정에서 (비용을) 최소한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며 “딜러사 능력에 따라 합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소비자 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에는 “우리나라는 나쁜 말로 얘기하면 목소리 큰 사람한테 보상을 많이 해 준다. 우리나라는 ‘떼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라며 황씨가 유명인이 아닌 ‘블랙 컨슈머’여서 이 같은 보상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 이상車’ 재판매 논란도…“랜드로버가 불신 자초”
랜드로버가 보상안을 제시하며 유명인들의 문제 차량을 중고차로 되팔려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법을 떠나, 자사 수리센터에서 수차례 수리를 거치고도 문제가 재발했던 차량을 되파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얘기다. 결국 ‘품질 하자 발생-문제 차량 처리-소비자 보상’ 전 과정에 걸쳐, 랜드로버코리아와 판매사가 소비자 응대에 있어 지나치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는 “황현민씨와 관련한 논란은 법리 문제가 걸려 있어 답변이 곤란하다”며 “(소비자 보상에 관해서는) 규정이 있다. 다만 (차별 보상이 이뤄졌다는) 관련 내용은 알고 있지 않아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판매사들이 “보상 문제 등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고 본사와의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수입차 제조사가 품질 문제에 있어 보다 무거운 부채의식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가 고장 났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소비자도 대리점도 아닌 제조사다. 수입차의 경우 관련 문제를 자꾸 회피하려 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래서는 소비자 불신만 초래할 것”이라며 “본사 차원에서 소비자 분쟁 규정 등을 명확히 바로 세우고 품질 문제는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황씨는 랜드로버코리아와 판매위탁사 대표 등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하면서, 랜드로버코리아 판매위탁사 고객지원팀장인 J씨와의 녹취록 일부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황씨가 엔진 고장이 3차례나 있었던 차는 ‘폐차’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자 J씨가 중고차로 팔면 된다고 맞서는 대목이 담겼다.
이에 대해 황씨를 변호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정양훈 변호사는 고소장에 '피고소인 C사(랜드로버 판매위탁사) 등은 랜드로버 판매업체로서 자동차의 안전운행을 위협하는 심각한 결함사실을 인식한 경우 판매를 중단한 후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시정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며 '그러나 피고소인들은 결함사실을 숨긴 채 하자가 발생한 랜드로버 자동차를 차주로부터 입수하여 문제를 은폐한 후 자동차를 중고차 시장에 판매하였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7월25일 황씨와 J씨 간 전화통화 녹취록 중 일부다.
황 내가 싫다 그랬어요. 있는 그대로 합시다. 그리고 랜드로바에서 저 똥차를 중고차로 매입해서 뭐 할라고 그랬어, 당신들? 폐차시키려고 그랬어? 대답해 봐.
J 음…
황 대답해봐, 당신 고객지원팀장이잖아.
J 예.
황 대답해 봐요. 저거 중고차 매입해서 어떻게 할라고 그랬어요?
J 흠(한숨소리)
황 대답해 봐요. 그걸 또 소비자한테 팔라 그랬어요? 중고차로 왜 매입을 해, 저거를? 폐차를 시켜야 되는 게 맞는 거잖아요? 당신 정비했다면서요? 그 자부심으로 살았다면서요?
J 네, 네.
황 어떻게 하셨어. 저거 어떻게 할라 그랬어요?
J 수리가. 아,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대표님 말씀이 맞지만,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수리하는 게 맞습니다 대표님.
황 그래서 다시 팔라 그랬어요?
J 예, 수리 완벽하게 해서 저희들이 다시 팔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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