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에 도움 주면 약속 이행한다더니…화장실 들어가고 나올 때 달랐다
최근 오너 일가 2세의 해외원정 도박으로 몸살을 앓은 세종공업에서 또 다른 잡음이 나오고 있다(제1518호 ‘[단독] 세종공업 2세, 회삿돈 100억 횡령해 해외원정 도박’ 참조). 진원은 오너 일가가 인수한 골프장. 인수를 돕는 조건으로 특정 인물에게 골프장이 보유한 가압류채권을 양도한다는 약정을 맺은 것이 발단이다. 문제는 그의 도움으로 세종공업 오너 일가가 골프장을 손에 쥔 뒤에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런 가운데 가압류채권이 제3자에게 넘어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양측은 법적 분쟁마저 벌이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舊 주주 비위 증거 제공 시 가압류채권 약속
문제의 골프장은 충청남도 서산시에 위치한 서산수골프앤리조트(舊 청남건설·서산수CC)다. 서산수CC는 2014년 8월부터 회생절차를 밟았다. 회원들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결과다. 세종공업 오너 일가는 제이엔제이글로벌을 통해 서산수CC를 회생 중 인수·합병(M&A)하기로 했다. 제이엔제이글로벌의 최대주주(100%)는 중국의 ‘상하이 제이엔제이 트레이드(SHANGHAI J&J TRADE CO., LTD)’다. 박세종 세종공업 명예회장의 부인 서혜숙 세종공업 회장과 두 아들이 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공업이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다. 출자구조에서도 골프장의 존재는 드러나 있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서산수CC는 세종공업 오너 일가가 개인적으로 인수한 것이다. 주력사업과 무관한 골프장에 투자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2세 승계와 무관치 않다는 견해가 많다. 세종공업 후계구도는 박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길 세종공업 부회장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차남 박정규 세종공업 총괄사장에게는 계열사인 ‘세정’이 주어졌지만 세종공업과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형제간 상속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박 총괄사장의 몫으로 골프장을 인수했다는 것이다. 박 총괄사장은 해외원정 도박과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9월 구속 기소됐다.
세종공업 오너 일가는 당시 서산수CC의 담보채권을 확보, 최대주주가 돼 회생절차에 이어갔다. 회생계획안에는 회원권 원금과 이자의 49%를 출자전환해 40%는 현금 변제하고 11%의 이용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인수는 녹록지 않았다. 회생계획안이 가결되려면 회원 채권 67%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비대위가 회생절차를 폐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대위엔 전체 회원 401명 중 201명이 참여했다. 채권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61.35%였다. 인수를 위해선 비대위의 동의가 핵심이었던 셈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제이엔제이글로벌은 채권단협의회장인 윤아무개씨에게 도움을 구했다. 채권단협의회는 비대위와 대척점에 있던 회원들의 단체다. 제이엔제이글로벌은 윤씨 측과 회원들의 회생계획 동의 등을 위임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후 윤씨는 문아무개 제이엔제이글로벌 대표, 서혜숙 회장과 협의를 진행하며 회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윤씨는 비대위 집행부와 청남건설 구(舊) 주주 간 결탁 정황을 발견했다. 비대위가 회생절차 폐지 입장을 지키는 것도 이 때문으로 파악됐다.
윤씨는 이와 관련한 결정적인 증거를 보유 중인 김아무개씨를 만나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그러자 김씨는 조건을 달았다. 골프장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경우 서산수CC가 보유한 경상남도 거창 골프장 부지의 가압류채권을 3000만원에 양도하라는 것이었다. 윤씨는 문 대표에게 김씨의 요구조건을 전달하고, 이를 이행하겠다는 확약을 받았다. 서 회장으로부터도 가압류채권 양도 약속을 이행할 테니 협조해 달라는 뜻을 전달받았다.
인수 편의 위해 제3자에게 가압류채권 양도
김씨는 이와 관련한 확약서를 받은 뒤 윤씨에게 비대위 집행부와 청남건설 구 주주 간 이면약정서를 제공했다. 여기엔 비대위 집행부가 회생절차를 폐지토록 해 청남건설 구 주주의 골프장 경영권을 회복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대가로 비대위 집행부는 5년간 골프장 운영권을 보장받고, 매년 5억원씩 총 25억원을 제공받기로 했다. 비대위 집행부가 회원들의 권익을 외면한 채 사익만을 추구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던 것이다. 이런 약정대로라면 회원들에게 막대한 피해는 물론, 제이엔제이글로벌의 서산수CC 인수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면약정서는 제이엔제이글로벌이 서산수CC를 인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윤씨가 이면약정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비대위 집행부는 백기 투항했다. 제이엔제이글로벌 회생계획안에 동의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안은 인가됐고, 회생절차는 지난해 6월 종료됐다. 서산수CC는 현재 퍼블릭 골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세종공업 오너 일가는 상당한 이익을 누리게 됐다. 실제, 서산수CC의 시세는 제이엔제이글로벌이 투입한 자금(450억원)의 두 배 가까이 급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김씨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가 가압류채권을 양도하라고 수차례 요청하고 내용증명까지 보냈음에도 제이엔제이글로벌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런 가운데 김씨는 가압류채권이 제3자에게 넘어간 사실을 인지했다. 제이엔제이글로벌은 서산수CC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 사모펀드와 소송을 벌였다. 소송은 법정관리 졸업의 발목을 잡았다. 회생법원이 소송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회생절차 종결을 유예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이엔제이글로벌은 사모펀드에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가압류채권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제이엔제이글로벌 관계자는 "김씨가 서산수CC 인수 과정에서 기여한 바가 없다고 판단해 가압류채권을 양도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해 말 제이엔제이글로벌을 상대로 위약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가압류채권을 양도하지 않거나 제3자에게 처분하는 경우 20억원을 위약금으로 지급한다는 확약서 조항을 근거로 해서다. 제이엔제이글로벌은 재판 과정에서 “가압류채권 양도 및 위약금 약정은 윤씨의 권한을 벗어난 것이고, 자신들은 가압류채권을 처분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지도 않았다”는 취지의 변론을 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제이엔제이글로벌이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양측의 법적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제이엔제이글로벌 관계자는 "1심에서 대응을 허술하게 한 탓에 패소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심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실 관계를 밝혀 1심 판결을 뒤집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