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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작지 않은 ‘행복의 방법’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취지는 좋네요.” 

“인터뷰 한번 하시죠?” 

“아니요. 전 행복하지 않거든요.” 

 

행복한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답을 구하려면 ‘행복한’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 이태원의 한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 한아무개씨(30)는 만날 때마다 늘 웃음을 짓고 있었다. 멋진 수염을 기른 그의 목소리엔 항상 힘이 넘쳤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본인은 아니란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별로 없어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행복이 헌법적 가치로 보장된 권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법률이 그것을 충족할 방법까지 안내해주진 않는다. 

 

누군가에겐 돈이 행복의 조건이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20년 사이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연구는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외모’와 ‘가족’을 행복을 결정하는 1차 요인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이들 조건이 모든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건 아니었다. 



'행복의 조건' 부족해도 행복한 사람

 

이효진(44) 예인건축연구소 대표는 태어난 지 18개월 때 얼굴에 끓는 물을 뒤집어썼다. 진단 결과는 얼굴 전체 3도 화상. 피부조직이 괴사되는 최악의 단계다. 게다가 그가 28살 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외모와 가족 등 학계에서 보는 행복의 요소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대표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나도 빨리 세상을 떠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극복해 왔다. 외모에서 부족한 점을 극복한 지는 오래됐다. 최근 화상치료 기술이 좋아져서 레이저 시술로 피부조직을 복원하는 게 가능하단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냥 이 모습으로 살기로 했다. 지금도 내 외모에 충분히 감사하기 때문이다.”

 

감사. 이 대표와 만나서 나눈 1시간여의 대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다. 그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남편과 아이들이 채웠다”면서 “지금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8살 딸과 7살 아들을 두고 있다. 

 

하루는 아들이 5살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정말 잘생겼어.” 그 말을 들은 이 대표는 아들을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그는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데 내가 외모에 더 욕심 부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 조건을 다 갖춰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감사하지 못하면 한평생 위쪽만 쳐다보면서 끊임없이 비교하게 될 따름이다.”

 

6월8일 오후 서울 방배동 예인건축연구소에서 이효진 소장을 만나 행복의 조건과 태도, 행복으로 다가가는 방법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종현 기자



“감사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비교만 할 뿐” 

 

의문이 들었다.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며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울까. “핀란드 사람들은 욕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 평범한 것에도 쉽게 만족한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 같다.” 한국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핀란드 출신 따루 살미넨(42)의 말이다. 

 

핀란드는 행복지수를 말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라다. 올해 유엔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조사에서 핀란드는 156개국 중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혔다. 

 

따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핀란드엔 서울의 강남이나 한남동처럼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많지 않다”며 “그래서 빈부격차가 특별히 드러나지 않고 부자를 딱히 부러워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저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얻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 배경엔 문화적·경제적 차이도 깔려있을 수 있다. 따루에 따르면, 핀란드에선 개인주의가 일반적이어서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데 거리낌이 없다. 또 갑자기 회사에서 잘려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복지 제도가 탄탄해 ‘플랜B’를 마련할 여유가 있어서다. 게다가 주 38시간이란 짧은 근로시간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준다.  



세계 행복지수 1위 핀란드…“안정적이고 욕심 없어”

 

“어떻게 보면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안전망이 견고해서 사회에 굴곡이 심하지 않으니까. 남들과 비교하는 데 관심이 없다 보니 경쟁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다. 그런데 그 자체가 어떻게 보면 행복일 수 있다.”

 

결국 주변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행복을 찾는 방법에 다가가는 도중 또 다른 장벽을 만난 느낌이다. 이에 대해 묻자 따루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 진심으로. 한국은 정말 다이나믹한 나라 아닌가.” 

 

그는 10년 이상 한국에 머무르다 2014년 핀란드로 돌아갔다. 결혼과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따루는 “핀란드의 행복지수가 높은 점을 의아하게 보는 사람도 많다”며 “경제적으로 불행을 겪는 사람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이 행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란 뜻으로 풀이된다.

 

핀란드에 거주 중인 따루 살미넨이 이제 막 한살이 된 딸 아르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 따루 살미넨 제공


 

감사도 연습해야…삶에서 작은 의미도 중요

 

따루는 “한국 사람은 본인이 불행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에서 정말 행복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춤은 그의 행복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춤을 출 때만큼은 힘든 기억도 다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따루의 막걸리 사랑은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막걸리를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단다. 따루는 “환경을 떠나 본인이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고민하는 게 우선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이효진 대표는 행복을 위해 ‘감사 훈련’을 해 보라고 조언했다. 하루에 딱 하나라도 좋으니 감사하다고 느낀 대상을 찾아 기록하라는 것. 그는 “나는 전체 화상을 입었지만 눈이 멀쩡하고, 왼손을 다쳤지만 오른손은 멀쩡한 데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새 가족이 생겼다”며 “주변에 사소하지만 감사할 부분이 넘쳐나기 때문에 불행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사소하지만 소소한 행복.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를 ‘소확행(小確幸)’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서울대가 뽑은 2018년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이기도 하다. 

 

나아가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인철 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엔 소확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확의(小確意)도 있다”고 주장했다. 작지만 확실한 의미란 뜻이다. 최 교수는 “가벼운 운동이나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미의 의미를 이렇게 넓히면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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