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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가 변수…일선 조직원들 불만 토로하기도

경찰은 민생치안 최후의 보루다. 사정기관 가운데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민중의 지팡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찰은 국민에게 ‘가깝고도 먼 지팡이’였다.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은 어느 정도 불식시켰지만 아직도 ‘견찰’ ‘짭새’라는 부정적이 이미지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다. 일선 치안현장에서는 인권침해, 강압수사 등의 논란이 종종 야기되기도 한다.

물론 경찰도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 친근한 캐릭터도 만들고, 이미지도 개선했다. 국민에게 다가서고 봉사하는 경찰이 되기 위해 ‘치안 서비스’ 개념도 도입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경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24일 민갑룡 제21대 경찰청장(54·경찰대 4기)이 취임했다. 전임 이철성 청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돼 2년 임기를 채웠다. 민 청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첫 청장 임명자다. 그만큼 현 정부와 코드와 철학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민 청장의 첫 행보는 권위 타파에 방점이 찍혔다. 그의 취임식은 과거 대강당에서 하던 것과는 달리 경찰청 1층 현관 로비에서 지휘부와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10여 분간 짧게 진행됐다. 과거 청장들이 보여줬던 권위와 형식을 과감하게 깨트리겠다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취임사를 통해 “임기 동안 오로지 국민과 현장만을 바라보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경찰청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민 청장은 취임과 동시에 산적한 현안과 마주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골자로 하는 수사구조 개혁과 자치경찰제 도입 등 당장 해결해야 할 업무가 수두룩하다. 그래서인지 역대 경찰청장 중 ‘일복이 가장 많은 청장’으로 불린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 일에만 몰두한다”고 전했다. 실제 민 청장은 취임과 함께 정시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보통 오전 7시에서 7시30분 사이에 출근하는데, 현안이 많다 보니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새벽까지 업무에 몰두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조직의 수장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조직문화가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다. 일선 경찰서 단위에서는 조직 내의 갈등이나 불협화음이 간간이 경찰서 담장을 넘고 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12월4일로 취임 130일을 맞은 민갑룡 청장, 지금까지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높다. 별다른 구설 없이 사회 이슈에 맞게 잘 대처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임기를 감안하면 큰 현안들의 성패에 따라 기대와 우려가 크게 엇갈릴 수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연내 입법 미지수

현재 경찰의 최대 현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이다. 수사권 조정의 경우 이미 정부 조정안이 나왔지만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다. 지난 6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경찰에 1차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보면 경찰이 1차 수사를, 검찰이 2차 또는 보충적 수사를 담당하도록 했다. 현재는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면서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검찰이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조정안에서는 이런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1차 수사를 끝낸 경찰이 검찰에 송치하면 내용을 검토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한해 검찰이 보완하거나 경찰에 보충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관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큰 틀에서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조정안에 대해 “검찰이 수사와 기소,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면서 벌어진 폐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월14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개최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공청회’에서는 정부 조정안에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였다.

물론 권한이 대폭 축소되는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 입장이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검찰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없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경의 시각차가 크다 보니 국회 입법 과정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개특위의 활동시한도 올해 말까지 정해진 상태다. 정부안을 두고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해 연내 수사권 조정안 입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민갑룡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상반기 특위에서 대체적인 논의가 있었고 정부 조정안 마련 과정에서 쟁점에 관한 논의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 결단만 남은 상태라고 본다”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만약 민 청장의 뜻대로 올해 안에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입법화되면 오랜 경찰의 숙원사업 하나를 해결하는 게 된다. 그만큼 민 청장의 조직 내 위상과 입지도 탄탄하게 굳힐 수 있다. 법치민주화와 수사구조개혁을 강조해 온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연말까지 국회를 통과하면 민갑룡 청장은 역사에 남는 경찰청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삐걱거릴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치경찰제 도입’은 국가 치안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대한 현안이다. 큰 틀에서는 지금의 국가경찰체제를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이원화하는 것이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에 따르면, 생활·안전, 교통, 지역경비 등 주민밀착형 사무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교통사고, 음주운전, 공무수행 방해 등 민생치안 사건의 수사권을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로 이관한다.

각 시도에는 현 지방경찰청에 해당하는 자치경찰본부가, 시·군·구에는 경찰서에 해당하는 자치경찰대가 생긴다. 이를 위해 국가경찰의 36%인 4만3000명을 점차적으로 자치경찰로 넘긴다. 내년부터 서울·세종·제주 등 5곳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2022년에는 전국의 17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아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우선 현직 경찰관들에게 자치경찰제 실시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이 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 혼선과 권한 다툼, 자치경찰이 시·도지사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오는 권한 남용과 부작용 등도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 청장은 “자치경찰제 실시는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국민이 치안 서비스를 체감하려면 무엇보다 ‘현장 치안’이 중요하다. 취임 후 민 청장이 방문한 첫 현장은 불법촬영(몰래카메라)을 규탄하는 대규모 여성 집회가 열리는 혜화역이었다. 그는 여성을 노리는 범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를 위해 지난 8월에는 전담 대응기구인 ‘여성대상 범죄 근절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성폭력과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했다. 음란사이트와 웹하드 등을 통한 불법촬영물이나 음란물 유포행위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는 등 말 그대로 ‘발본색원’에 나섰다.

여성뿐 아니라 아동,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안 서비스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피의자의 인권을 강화해 조사 때는 수갑이나 포승을 풀고, 조사가 길어지면 2시간마다 10분씩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등 피의자 인권보호책도 내놨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모든 피의자나 피해자 또는 참고인 등 사건 관계인에게 ‘메모장 교부제’도 실시한다. 피의자가 자신의 진술과 조사 내용을 스스로 기록하고 인권침해 여부를 점검할 수 있다. 노트는 경찰서에 비치돼 있어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민 청장은 ‘경찰이 약자를 위한 공권력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실하다. 예전 같으면 소홀히 할 수 있는 것들도 꼼꼼하게 챙긴다”며 “특히 시민 의인들을 높이 평가한다. 경찰의 행동이 의인들처럼 일상화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도 민 청장의 개혁행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내 경찰서의 팀장급 간부는 “경찰 조직은 변화에 민감하다. 기존의 고정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는 실정”이라며 “지금까지 민 청장이 추진하는 개혁은 급진적이지도 보여주기 식이거나 일회성도 아니어서 큰 거부반응은 없다”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왼쪽)이 8월1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방문해 문무일 검찰총장과 면담을 가졌다. ⓒ 연합뉴스


“내부 조직은 곪아가고 있다”

현재 일선 경찰서 대부분의 서장(총경)이나 과장(경정)은 경찰대나 고시, 간부후보생 출신들이다. 이들 중에는 수사업무를 경험하지 못한 간부들이 상당수다. 고시 출신 같은 경우 곧바로 경정을 달고 입직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사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경찰서 내에서 수사 지휘상의 갈등이 적지 않다.

수사에 정통한 한 경찰 간부는 “청장 하나 바뀐다고 조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민 청장이 경찰개혁은 잘 추진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부 조직은 곪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찰서의 팀장이나 계장급은 수사업무만 20년 이상 경험한 베테랑들이다. 수사는 책상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험에서 쌓은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사를 해 보지 않은 서장이나 과장들이 직위를 내세워 자기주장만 강요한다. 팀장이나 계장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귀담아듣는 것이 아니라 버럭 화를 내거나 다른 부서로 보내버리는 방식으로 보복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범인을 제때 잡지 못하고, 사건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누가 보겠는가. 결국 시민이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경찰의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걸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경찰서 간부는 ‘신상필벌’이 확실하지 않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경찰관은 진급에 살고 진급에 죽는다. 특진이나 진급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잡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허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진 대상자 끼워넣기도 여전하다. 업무와 성과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뒷말이 무성하다. ‘누구에게 힘을 썼느니’ ‘누가 뒷배경’이라느니 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너도나도 여기저기 힘 있는 곳에 줄을 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조직을 죽이는 것인데 인사평가에 대한 투명성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의 한 간부는 “청장께서는 항상 귀를 크게 열어두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쓴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달라질 것이다.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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