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시국 이승만 대통령 하야 정국 연상케 해
허망한 것이 권력이다. 손에 다 잡힌 듯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아무것도 잡힌 것이 없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어제까지 강고했던 기반도 오늘 금이 간다. 물리력으로 방어해 보려 하지만 민심을 이기는 것은 없다. 역사가 그렇게 말한다. 장면·윤보선·허정 등이 실토한 미공개 정치 이면 비사 《사실의 전부를 기술한다》(1966년, 희망출판사)를 참고해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4·19혁명의 기운이 계속 살아 꿈틀대던 1960년 4월22일 변영태 전 외무장관과 허정 전 서울시장은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다. 이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3·15 부정선거의 주범인 이기붕 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에게 내각에 들어와 사태 해결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기붕은 4월24일 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 대통령은 이 정도에서 수습되길 기대했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4월25일 대학교수 수백 명이 14개 항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가두행진을 했다. 이른바 ‘교수단 데모’였다. 국회에선 여·야를 망라한 특별대책위원회가 소집돼 ‘△이승만 대통령은 즉시 하야(下野)한다 △3·15 정·부통령 선거는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 등 4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이날 허정은 결국 외무장관을 맡았다.
4월26일 새벽, 허정은 경무대로 달려갔다. 경무대 본관 회의실에는 김정렬 국방장관, 이 대통령의 비서 박찬일씨와 곽영주씨, 프란체스카 여사 등이 있었다. 김정렬은 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항공과를 졸업한 그는 1949년 10월 공군이 창설되자 초대 공군참모총장을 맡았다. 김정렬은 1957년부터 국방장관으로 있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최인규나 홍진기 같은 심복이 있었지만 김정렬을 가장 신임했다.
김정렬·허정 장관 “이승만 하야해야” 주장
허정도 김정렬과 의견을 같이했다. 이 대통령이 하야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였다. 이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이 대통령 귀에 대고 결심을 하라고 속삭였다. 한참 말없이 듣고 있던 이 대통령은 “그럼 내가 물러나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라는 하야 성명 문안을 불렀고, 박찬일 비서가 종이에 받아썼다. 4월26일 오전 10시쯤이었다.
4월27일 이 대통령은 “나 이승만은 국회 결의를 존중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물러앉아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여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는 대통령직 사임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임기 4개월을 앞둔 시점에 그는 하야했다.
김정렬과 허정, 두 장관은 당시 이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할 정도로 용기가 있었다. 권력 내부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 특히 김정렬의 경우 이 대통령의 남다른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음에도 하야할 것을 권했다. 그렇게 해야 나라가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많은 피를 불렀고 나라의 혼돈은 계속됐을 것이다.
김현웅 법무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11월21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표를 냈다.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같은 시기에 사표를 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와 관련해 도의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특히 김 장관보다 최재경 민정수석에게 더 눈길이 쏠렸다. 11월18일 임명장을 받은 그가 임명장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검사 시절 특수 수사통이었고 후배들로부터 신망을 받았던 그는 위기에 처한 박 대통령을 도울 ‘구원투수’로 주목됐다. 특히 향후 펼쳐질 국정조사와 특검 정국에서 민정수석으로서 그의 역할은 박 대통령에게 실로 큰 힘이 될 터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11월25일 최 수석의 사표를 반려했다.
‘지지도 5%’로 상징되듯이 민심은 이미 박 대통령을 떠났다. 권력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현재 박 대통령이 의지하고 있는 축은 두 개다. 그러나 두 축 모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순실 게이트’ 외부 충격파가 본격적으로 내부를 강타하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이것은 향후 또 다른 격변이 정치권에 닥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계재편의 큰 흐름이다.
우선 집권당인 새누리당을 보자. 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가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갈수록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 그리고 정두언·정태근 전 의원 등이 탈당했다. 김무성 전 대표 등 비주류 의원들은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어 별도 체제를 가다듬으며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여차하면 딴살림을 차릴 준비를 하는 형국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주류와 비주류는 제 갈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김 전 대표는 “정 안 된다고 판단할 때는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며 탈당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다.
나머지 한 축은 청와대 민정이다. 국세청·검찰·경찰·국정원 등 각종 정보를 다루고 공무원에 대한 감찰, 사정 기능 등을 총지휘하는 컨트롤타워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레임덕 국면에서 정권의 기강을 잡는 데 사정 기능과 정보를 활용하는 민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정권 내부 체계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 해석
그러하기에 최재경 수석의 사표 제출은 수리, 반려 여부를 넘어 이미 공직 사회 안팎에 강한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정권의 내부 체계가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그냥 기능적인 행정은 유지되겠지만 내용상 통치 기능은 마비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 특검과 국정조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펼쳐지는 탄핵 국면에서 최 수석이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지 않다.
사실 앞서의 이승만 대통령 상황과 비교해 볼 때도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상황이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니다. 이 대통령은 하야 직전까지 장관 인사권을 행사했다. 물론 허정 장관 사례에서 보듯 다들 입각하지 않으려고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은 인사권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할 정도로 구석에 몰린 상태다.
이런 상황이기에 내각과 청와대에서 후속 사표 제출이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관가(官街)에서 소속 부처 장관들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국가를 생각한다면 장관들이 도미노처럼 사표를 내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김정렬·허정 장관처럼 직언을 하는 장관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박 대통령이 쓴소리를 할 만한 강단 있는 인물들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