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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라인 배제’ ‘靑 태도 돌변’ ‘유영하 갈등설’ 추측 난무

침몰하는 난파선(難破船)에서 뛰어내린 걸까. 김수남 검찰총장 압박을 위한 고도의 술수(術數)일까. 대통령의 권력을 보좌하는 사정라인의 양대 축이 동시에 사표를 낸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특별검사 수사와 국정조사, 탄핵 표결이라는 3대 파고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최후의 방패막’이 사라지면서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57·사법연수원 16기)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54·17기)은 각각 11월21일과 22일 나란히 사의를 표명했다. 둘 다 ‘공직자의 도리’를 사직 이유로 내세웠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의 표명 시점은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직후였다. 그러다 보니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사람의 동반 사의 표명을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누군가는 김수남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조직을 향한 압박용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또 다른 쪽에선 후배 검찰의 수사 내용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와의 갈등설도 불거졌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은 각각 11월21일과 22일 나란히 사의를 표명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 ‘피의자’ 지목에 돌연 사의 표명

 

사정라인 붕괴의 발단은 11월20일에 있었던 검찰수사 결과 발표다. 검찰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했다. 박 대통령은 즉각 변호인과 대변인을 통해 ‘사상누각’ ‘정치공세’ ‘인격살인’ 등의 표현을 써가며 검찰을 맹비난했다. 자연스럽게 사정라인을 총괄하는 김 장관과 최 수석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둘의 처지는 달랐다. 지난해 7월부터 자리를 지켜온 김 장관과 달리 최 수석은 11월18일 임명장을 받은 직후였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지목되는 초유의 상황에 맞닥뜨린 두 사람의 시각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둘의 사의 표명 이유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

 

김 장관은 보고체계에서 배제된 데 대한 불만이 표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검찰수사 상황은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된 뒤 민정수석을 통해 청와대로 보고된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특별수사팀은 그러지 않았다. 불과 며칠 만에 대통령은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추락했다. 또 공범으로 적시됐다. 검찰로부터 어떠한 언급도 받지 못한 김 장관으로서는 충격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김 장관의 경우 임명권자가 범죄 피의자가 된 상황에서 자신이 계속 장관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평소 술자리에서도 과묵하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최근에는 지인들에게 전화해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많이 구했다고 한다.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몰아치는 검찰의 수사 상황 역시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한 데 이어 대면조사 연기를 놓고 대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 중간수사 결과를 놓고 “박 대통령 녹취파일을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이 횃불이 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까지 던졌다. 검찰은 11월29일까지 박 대통령의 대면 조사를 재차 요청한 데 이어 삼성그룹 승계 의혹, 면세점 특혜 의혹까지 전방위적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지속적인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국면에서 책임자로서 무력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사퇴 배경 둘러싼 3대 시나리오

 

최재경 민정수석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임명장을 받은 지 불과 나흘 만이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인 조선을 구하기 위한 ‘이순신’과 같은 마음으로 난파선에 뛰어들었다. 그랬던 그가 너무 빠르게 사표를 던졌다. 청와대의 설득에도 장시간 사의를 번복하지 않았다. 때문에 최 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이 알려지자 ‘김수남 검찰총장 압박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수사라인을 장악할 수 없다면 수사 수뇌부를 붕괴시킨다는 내용이다.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으니 검찰총장 또한 사표를 제출하라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었다.

 

검찰 압박용 카드였다면 사실상 ‘자충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두 사람의 동시 사의표명이 알려진 11월23일 “검찰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는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쪽에서는 “대통령까지 연루된 초대형 수사가 한창인 때 수장의 거취 문제를 거론하는 건 부절적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또한 11월24일 “김수남 검찰총장이 나가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뜻이라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또 하나 추가된다”고 경고했다.

 

최 수석의 사퇴 배경을 청와대의 태도 돌변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이미 여론을 파악하고 청와대에 입성한 그는 일종의 ‘해결책’을 들고 갔을 것으로 보인다. 최 수석은 검찰이 대면조사의 필요성을 밝혔기 때문에 피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입성 후 그가 맞닥뜨린 박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다. 특히 임명 무렵부터 청와대의 기류는 강경하게 바뀐다. 검찰 조사를 미루고 탄핵 정국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결국 청와대와 검찰이 충돌했다. 한 언론에 보도된 “내 동료, 후배 검사가 수사한 내용을 부정할 수 없다” “평생 검사로 살고 싶은데 지금은 내 가치관과 맞지 않다” 등 최 수석의 발언 내용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서 유영하 변호사와의 갈등설까지 등장한다. 평소 최 수석의 언행을 고려하면 유영하 변호사의 검찰 반박문 중 ‘사상누각’ ‘상상과 추측’ 같은 강경한 표현은 상상할 수 없다. 민정수석과 전혀 상의하지 않고 검찰 조직 자체를 부정해 버린 셈이다. 비록 동갑이지만 사법연수원 7기수 후배인 유 변호사가 청와대를 장악한 상황에서 민정수석으로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가 입성한 직후 민정수석실은 유영하 변호사의 자료 작성을 지원했다. 대통령이 사비(私費)로 고용한 변호사의 업무를 ‘보좌’하는 처지로 전락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우병우 사단’으로 구성돼 있는 민정수석실이 최 수석에게 무력감을 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최 수석이 청와대와 검찰 내에 존재하는 ‘우병우 사단’을 걷어내려고 하다 역공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 수석은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지인들과 가진 자리에서 우 전 수석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수석이 당초 고사하던 민정수석 자리를 수락한 것 역시 우 전 수석의 그림자를 지우는 게 사정라인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막상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내년 초로 예정된 검찰 인사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최 수석이 임명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서 “(최 수석이) 큰 결심을 하고 청와대에 들어왔지만 변하지 않는 청와대의 분위기에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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