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과 무능’ 상징어…홀로 식사하고 머리 손질한 사실 드러나
2014년 4월16일, 평온한 바다를 가던 배가 느닷없이 침몰했다. 배의 이름은 세월호. 사망자 295명, 실종자 9명 등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고, 믿을 수 없는 사망자 숫자였다. 그러하기에 국민의 마음에는 지금도 분노와 미안함이 병존한다.
꽃다운 목숨들이 바닷속으로 사라질 때 최고 통치자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 대통령은 왜 적극적으로 구조를 지휘하지 않았나. 무슨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무능했던 것인가. 사고 발생 2년7개월이 넘었지만 미스터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은 더 이상 미스터리만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 하는 사실 관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것은 박근혜 시대를 상징하는 시대의 단어가 됐다. 박근혜 정권의 불통과 무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두 건의 주목되는 보도가 있었다. 먼저 지난 7월까지 청와대 조리장을 지낸 인사와의 인터뷰를 ‘여성동아’가 보도했다. 이 조리장의 증언은 이렇다.
“세월호 사고 당일 관저에 딸린 주방에서 정오와 저녁 6시에 각 1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 아침 식사는 당선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보필했던 비서가 조리장들이 준비해 둔 재료 등으로 직접 준비한다. (대통령은) 식사는 평소처럼 했다. 사고 당일 오후 5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한 후 관저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혼자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분이다. 술은커녕 간식도 잘 안 하신다. 박 대통령은 건강식에 관심이 많다. 지방 출장이 있어도 식사는 대체로 혼자 하길 원했다. 그래서 대부분 차에서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같은 걸 준비하곤 했다. TV에 대통령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당일에도 일상 영위한 대통령
박 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거의 관저에서 식사를 하고 그것도 혼자 한다는 것이다. 즉, 식사 시간이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관저에 머물 때도 TV를 보는 것을 즐긴다 하니 민심을 어떻게 파악해 왔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세간에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 TV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는 말이 돌았는데, 전 조리사의 증언을 보면 이런 말을 그저 소문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근혜식 소통’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증언이다.
12월7일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렇게 증언했다. “일이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도 되고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뵙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주일에 한 번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이다. 가까이 있는 비서실장도 이 정도였으니,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정무수석 재임 11개월간 한 번도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도 이해가 된다. 대통령은 참모들과 밥을 먹으며 소통하는 대신 홀로 식사하는 것을 즐겼다. 세월호 사고로 수많은 목숨이 죽어가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와대 수석들에게 “대면 보고가 꼭 필요한가요?”라고 물었던 장면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 당일 오후에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아무개씨가 박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친동생 정아무개씨와 함께였다. ‘한겨레’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90분 정도 머리 손질을 했다”고 보도했으나 청와대는 “20분 동안 손질을 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미용사는 15시22분에 (청와대에) 왔다가 16시47분에 갔다. 정씨가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일을 하니 오후 3시22분에 청와대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오후 2시 반 이전에는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당일 2시50분에야 370명 구조가 오보라는 것을 알았고, 오후 3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 준비를 지시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대통령이 실제로 중대본을 방문한 것은 5시15분이다.
위기대응 원칙과 거꾸로 대응
전직 조리사와 미용사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했다는 점이다. 식사나 미용에서 달라진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아침에 하던 머리 손질을 오후에 했던 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나 할까. 전직 조리사는 말한다. “당시 주방에서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식사 일정에 갑작스러운 변동이 있는 일이 없던 터라, 예정대로 관저에서 1인분 음식을 준비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전직 조리사와 미용실 원장 정씨의 증언으로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적은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져 가는 흐름이다. ①당일 대통령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②오전에 전화와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다 ③정오에 홀로 식사를 했다 ④오후 2시 넘어 미용실 원장을 호출했다 ⑤3시~4시30분 사이에 머리를 손질했다 ⑥5시15분에 중대본을 방문했다 등이다. 시간 흐름으로 미뤄보면 시술을 했다거나 프로포폴을 맞았다거나 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관저에 머물면서 TV를 통해 현장 소식을 접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왜 적극적으로 구조를 위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세월호 7시간’은 위기에 있어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상징어이기도 하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꼽는 위기관리 3원칙은 ‘긴급성, 일관성, 개방성’이다. 빠르게 대응해야 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말해야 하며, 미디어와 열린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대응은 이와 정반대로 갔다. 그러니 의혹이 증폭되고 꼬리를 물 수밖에 없었다.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모호한 답변이었다. 그 이후부터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온갖 의혹이 생겨났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빠르게 당일 대통령 행적을 공개하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2년4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야 언론 취재로 머리를 손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마지못해 인정했을 뿐이다. 그저 숨기고 밝히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 것이 청와대 대응이었다. 현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7시간’은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도 들어 있다. 탄핵안은 “국가적 재난을 맞아 즉각적으로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집중 투입해야 할 위급한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최고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며 헌법 10조인 생명권 보장 조항을 위배했다고 기록했다.
야권에서는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세월호 7시간’을 거론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논란에서 나아가 ‘왜 대통령은 적극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가’로 논점이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불통과 무능을 보여주는, 정치적으로 야권에 매우 유리한 정치적인 키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한 대통령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대통령은 역사에 대한 의식이 있기나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