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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시민들 분노 자제한 채 평화시위 인내심 발휘

 여전히 촛불집회는 축제 분위기에 가까웠다. 11월26일 5차 촛불집회에는 서울에만 130만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16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앞으로는 오늘보다 날이 점점 더 추워져 참가인원이 줄어들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까지는 결코 집회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은 오전부터 진눈깨비가 흩뿌렸고 날은 추웠다. 오후 7시, 대부분의 집회 참가 시민들은 서서 대통령 퇴진을 외쳤고, 일부는 눈이 녹아 젖은 아스팔트 위에 앉아 촛불을 높이 들었다. 직장인부터 학생, 유모차, 휠체어, 수녀, 승려, 외국인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손에서 촛불을 놓지 않았다.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추운 밤이지만, 집회 열기는 뜨거웠다. 일부는 청와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11월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5차 촛불집회에 눈·비가 온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자리를 함께한 시민들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함께 박근혜 퇴진·하야를 요구하며 구호도 외치고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기고 있다. ⓒ 이종현 기자

 자유 발언대에 오른 한 시민이 외친 "하야하기 좋은 밤"은 일대에 유행어처럼 번졌다. 또 가수 안치환은 자신의 히트록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후 8시 정각부터 1분 동안 전깃불을 끄는 것으로 시위에 동참했다.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렸다. 현 상황을 암흑에 비유하며 촛불로 어둠을 걷어낸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한 40대 남성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춥지만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한 60대 여성은 "여자라서 꼼꼼하게 국정을 살필 줄 알고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는데 그 대통령 때문에 온 국민이 이 추운날 고생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하야해야 갈등과 고생이 끝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역 앞에서는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행동' 등 보수단체가 모여 '하야 반대'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1만명(경찰 추산 1000명)은 손에 '하야 반대' '법대로 하라'는 등의 팻말을 들고 대통령의 퇴진을 반대했다. 한 종교계 인사는 "대통령 퇴진 요구는 마녀사냥이고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는 "대통령 하야를 외치려거든 북한에 가라"는 발언을 하는 등 일반시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 총 280개 중대, 2만5000명을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사거리 등 집회장소 인근 곳곳에 배치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대통령 한 명 때문에 우리도 매주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1~4차에 이어 이날 5차 집회 역시 시민들은 마치 축제를 즐기듯 새로운 집회 문화를 선보이며 평화시위 기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분노한 시민들과 경찰간 가벼운 충돌이 일기도 했고, 일부 참가자들은 웃음 대신 격앙된 어조로 계속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도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40대 주부 박수연씨는 "아무리 목청껏 외쳐도 반응조차 않는 청와대를 보면서 점점 분노가 느껴진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지금껏 5차례 집회를 모두 현장에서 취재해 온 한 방송사 기자는 "갈수록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분노가 쌓여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린 11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경찰과 시민이 대립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평화적 시위 방법으로 대통령의 자발적 퇴진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인내심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촛불의 물결이 굽이치는 광화문 광장과는 전혀 딴 세상이 되어버린 청와대 쪽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에서 실망을 넘어 점점 분노의 기운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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