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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임정 시절 탄핵돼

2004년과 2016년. 한국 현대사 탄핵 소추안 발의는 올해가 두 번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탄핵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91년 전에 있었던 ‘탄핵소추사건’이다. 이로 인해 중국 상해 임시정부(임정) 시절 대통령 이승만은 탄핵됐다. 따지고 보면 한국 현대사의 첫 ‘탄핵’ 사례는 이승만 대통령인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임정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1919년이다. 그리고 그가 탄핵된 해는 1925년이다. 6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선 이승만은 1919년 9월 상해에서 임정 때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당시 국무총리는 이동휘였다. 하지만 임정의 ‘이승만 체제’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임정 초기 ‘위임통치사건’으로 이승만에 대한 불신이 켜졌다. ‘위임통치사건’은 이승만을 비롯한 외교독립론(외교를 통한 독립을 이루자는 사람들)을 주장하는 측이 1919년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위임통치를 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임정 내 이승만을 비롯한 ‘외교독립론자’와 ‘무장투쟁론자’ 사이의 관계는 악화됐다. 

 

이후에도 이승만은 미국에 대한 ‘위임통치’를 사과하라는 임정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채호는 1919년 4월 임정 시기의 ‘국회’인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역적“이라면서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었다“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 연합뉴스

게다가 이승만의 ‘부재’도 논란이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됐음에도 1년 째 상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임정의 인사들이 이런 이승만의 태도에 크게 반발하자, 1920년 12월 처음으로 배를 타고 상해 임정에 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임정 각료들과의 갈등은 지속됐다. 이 때문에 1921년 5월 이승만은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임정 인사들은 다시 이승만을 불렀지만 그는 대통령 자리만 움켜쥔 채 돌아오지 않았다.

 

자금 문제도 있었다. 당시 임정은 독립군 군자금, 임정 청사 임대료 등에 쓸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승만은 구미위원부를 중심으로 재미동포에게 자금을 걷었지만, 이 중 임정에게 돌아가는 돈은 매우 적었다. 본인의 활동비로 다수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도 임정과 마찰이 있었다. 

 

결국 임정에서는 1923년부터 ‘이승만 탄핵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임정은 대통령의 역할이 없다고 판단해 1924년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녕이 대통령을 겸하도록 결정했다. 임정의 결정을 본 이승만은 “독립자금을 임정에 보내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임정의 ‘탄핵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이승만을 탄핵했다. 다음은 당시 탄핵 의결서의 내용이다. 

 

“이승만은 외교를 구실로 하여 직무지를 마음대로 떠나 있은 지 5년에, 바다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난국수습과 대업의 진행에 어떤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허황한 사실을 마음대로 지어내어 퍼뜨려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해하였고, 의정원의 신성을 모독하고 공결(公決)을 부인하였으며 심지어 정부까지 부인한지라.

정무를 총람하는 국가 총책임자로서 정부의 행정과 재무를 방해하고 임시헌법에 의하여 의정원의 선거를 받아 취임한 임시대통령이 자기 지위에 불리한 결의라 하야 의정원의 결의를 부인하고 심지어 한성조직의 계통 운운함과 같음은 대한민국의 임시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라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 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 뿐더러 순국 제현을 보지 못할 바요, 살아있는 충용의 소망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탄핵심판서 (1925년 3월 25일)-

 

임정은 이승만을 면직시켰고 동시에 박은식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승만이 대통령에 오른 지 약 5년 반이 지난 뒤 벌어진 일이었다. 

 

* 이승만 탄핵심판-김구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조한성)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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