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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학교 “못 쓰겠다” vs 교육부 “법적 대응”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15년 전쟁’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던 정부가 11월28일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2002년 이념 논쟁과 편향성 논란으로 시작된 역사교과서 전쟁은 그 끝을 향해 달리는 듯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 국정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느라 졸속 제작됐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집필기준과 집필진 공개를 꺼리면서 밀실 논란까지 일으켰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교과서”라며 우수성을 강조했지만 역사학회와 일선 학교에선 여전히 반발하는 양상이다. 당장 내년부터 학생들에게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11월28일 공개됐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내년 시행 여부를 둘러싸고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연합뉴스

‘우편향’ 문제 피할 수 없다

 

기존 검·인정 역사교과서를 대체하겠다며 내놓은 국정교과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단연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근·현대사에 집중돼 있다. 반대 진영에선 친일·독재에 대한 분량을 줄이거나 무미건조한 용어를 사용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성과 분량이 늘어난 점에 집중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전국역사모임 등 7개 역사 관련 단체로 구성된 역사교육연대회의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초적인 사실 오류가 적지 않다며 “국정교과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꼽은 대표적인 오류는 안중근과 안창호에 대한 서술이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190쪽에서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학계에선 동양평화론은 미완성 논책으로, 자서전이 아니라고 본다”며 “또 안창호의 통합 임시정부 직책에 대해 ‘내무 총장’이라고 서술했지만, 당시 직책은 노동국 총판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교과서’라는 오명도 뒤따랐다. 그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고교 역사교과서 261쪽부터 267쪽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23번이나 언급된다. 262쪽과 245쪽에선 각각 5번과 7번 거론된다. 이승만 정부가 2쪽, 4·19혁명과 장면 내각이 2쪽, 전두환 정부가 1쪽인 것에 비해 박정희 정권은 9쪽에 달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나 새마을운동에 대한 내용도 3쪽에 달했다.

 

친일파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 과정에 대해 왜곡한 것 등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국정교과서는 군인·경찰·관료(사법 관료인 판사·검사 포함) 등을 친일파 대상에서 빠뜨렸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된 안익태에 대해서도 민족문화 수호운동의 사례로 꼽기도 했다.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도 눈에 띈다.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절충안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대한민국 건국을 서술하지 못하는 꼴이 됐다”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린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인 뉘앙스로 바뀌었다. 국정교과서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자유선거에 의해 수립된 국가였고 이승만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반공의 이념적 토대 위에서 국가의 기틀을 세웠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1953.10)을 체결해 대한민국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 등 한·미 동맹을 공고히 했다”고 서술했다. 기존 교과서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 고착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활동에 부정적이었으며 제주 4·3사건 당시 무리한 진압작전으로 무고한 희생을 가져왔다”는 평가와 대조된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측은 해명자료를 통해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남북 분단)에서 헌법 가치에 맞는 국가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헌법 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했다”며 “정치, 군사, 헌법, 경제 등 맡은 바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해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국편 측은 “헌법을 위반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관을 반영했으며 독립운동과 독립유공자들의 역사적 의미와 공로를 축소하며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박정희 정부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도 “기존 검정교과서도 다른 시기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학생들이 박정희 정부의 공과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교원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는 국정교과서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일·독재 미화’ 비선 검토진 참여

 

논란의 불씨는 자연스레 ‘누가 썼느냐’로 옮겨붙었다. 교육부가 공개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집필진은 모두 31명이다. 대다수 역사학자들이 참여를 거부한 상황에서 집필진이 꾸려져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관변·보수성향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의원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사 집필진 7명은 정치학자 2명, 경제학자 2명, 법학자 1명, 군사학자 1명, 현장 교사 출신 1명으로 구성됐다. 현대사 집필진 7명 중 현대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 가운데 뉴라이트 계열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4명이나 됐다.

 

그나마도 국편 직원들이 초고를 다시 쓰다시피 수정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국편에선 국정교과서의 저작권은 자신들에게 있고, 법적으로 저작권자가 집필진의 동의를 얻어 수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과거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는 개입한 적이 없다는 점 때문에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다. 이태진 전 국편위원장도 “(과거에) 외부에 공개하기 전까지 위원장도 못 봤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공개한 현장검토본 이전에 만들어진 원고본(초고)과 개고본(1차 수정본)이 모두 삭제됐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경기도 과천시 국편에 긴급 현장조사를 나갔던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는 “국편이 국정교과서 원고본과 개고본 파일을 모두 삭제했으며, 국정교과서 편집과 인쇄 계약을 맺은 지학사 쪽에도 별도계약을 통해 원·개고본 일괄삭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계획적 증거인멸을 묵과할 수 없다.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를 살펴 소송 및 감사원 감사 등 국편에 대한 법적 조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비선 검토진’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시사저널이 도종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등 역사과 국정교과서 내·외부 전문가 위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편은 각 시대별로 4명의 전문인력이 내부 검토에 참여했다. 학설상 이견이 많고 해석에 논란이 있는 영역에 대해선 외부 전문가 13명으로부터 검토를 거쳤다. 이 가운데 현대사 분야의 외부 전문가는 총 3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A씨(변호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5·16은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세계 어떤 혁명보다 빛나는 성취를 이룩했기에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광장민주주의가 판치면 무법천지 양육강식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밝혀 비판을 받았다. 또 다른 외부 전문가 B씨(전 청와대 정무비서관)도 “박근혜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세력은 박정희 시대에 생겨난 반체제 인사들과 이들의 저항 논리를 이어받은 386세력, 학생운동권을 발판으로 꾸준히 충원되고 있는 젊은 좌파들, 그리고 주사파로 불리는 종북세력 등”이라고 밝힌 보수 인사였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1월28일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 적용 놓고 극심한 혼란 불가피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으로 내년부터 일선 학교에 배포하려던 교육부의 계획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국정화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조차 “국정교과서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교원 단체는 물론 시·도 교육감들마저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국 시·도교육청 17곳 중 국정교과서에 반대 입장을 밝힌 교육청이 14곳이다. 경북과 울산교육청은 찬성, 대구교육청은 보류 입장이다. 

 

서울시의 경우 모든 중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쓰지 않기로 했다. 교과서 사용 대상인 1학년 교과과정에 역사 과목을 빼기로 한 결과다. 중학교 3년 과정 중 학교장 자율로 교과과정을 편성할 수 있는데, 2017학년도에 1학년 역사 과목을 편성했던 학교들조차 전부 철회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은 “다양한 자료와 토론을 통해 비판적 역사의식을 길러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그 자체로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당장 내년도 새 학기부터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정교과서와 현행 검정교과서를 혼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교육부는 “검토한 적 없다”고 반박한 상황이다. 현행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국정도서가 있을 때에는 이를 사용해야 하고, 국정도서가 없을 때에는 검정도서를 선정·사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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